마흔, 시한부를 마주하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이렇게 서툰가...

by 오뉴월




모두, 시한부를 사는 것을 종종 생각하자는 취지의 글이다. 무척 길지만 울림이 있기를 바라면서 조심히 친구의 이야기를 꺼본다.


우리 부부에겐 잊을 수 없는 친구가 하나 있다.
남편과 동갑에 취미도 비슷했던 나는
남편 친구들과도 관계가 좋았다.

​세영 씨도 그 친구들 중에 한 명이다.

자신은 결혼을 못 할 확률이 높아서 무조건 이 여자다 싶으면 물불 안 가리고 결혼부터 해버릴 거다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던 금수저 친구.

그의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아는 동네 유지에, 땅 끝이 안 보이는 배 과수원, 그리고 축산업으로 누렁소가 100마리도 넘는 집안의 장손이고, 세영 씨는 그의 외아들이었다.

시골에서 재수하며 그림 공부하러 입시미술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던 시절,

​나이는 한 살 많지만 친구로 지내던 세영 씨는
본인의 우려와 달리 우리 부부보다 일찍 결혼을 했다.
큰 애도 우리 애보다 한 살이 많다.

​아버지 후광으로 잘 지내는 것 같던 부부가 아주 사이가 안 좋아지고 나서야 별거 중이라는 얘기를 했다.

이유는 시댁의 갑질과 남편의 무능함이라고 말하며 아내가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가버렸다고...

​연신 맥주캔을 들이키는 세영 씨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아주 큰 것 같았다.

졸업 후 조금씩 아버지 축산 일이나 과수원 일을 도우면서 웹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월급만큼 줄 테니 아버지 일을 돕는 게 어떻겠냐 제안을 했고, 결국 이 재산 다 자신의 몫이 될 텐데 하는 마음으로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농장 일을 하게 된 세영 씨.

생각과 달리 아버지는 세영 씨가 본격적으로 일을 돕자 아예 손을 놔버리시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일용직으로 붙여주며, 가르치면서 스스로 해보라 셨다고 한다.

​디자인 회사에서 받던 월급만큼만 입금해 주시고 그 큰일을 맡기시니 일이 힘에 부친 날은 "아버지, 월급이라도 좀 더 주셔야지요!!" 하며 투정 섞인 하소연을 하자,

"결국, 다 니 몫인데 젊은 놈이 돈, 돈하지 마라!"시며 먹고 살 정도는 주지 않냐면서 도리어 역정을 내신다고 ... 아내는 생활비에 쪼들리니 남편을 닦달했을 테고.

싸우다 지쳐 해결되지 않으면 안 들어오겠다며 짐을 챙겨 나가버린 상황..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지 짐작도 못할 지경이었다.
같이 맞장구치며 아버지께 이래봐라, 저래봐라 방법을 연구해 보고 조언을 하면서도 우리는 내심 세영 씨 아버지의 재력이 부러웠다.

​모자란 소견으로 대충 따져봐도 백억 대 부자였기 때문에 늘 금수저, 금세영, 금둥이 하며 대놓고 부러워했는데 그 아버지가 의외의 복병이었다니..

​만날 때마다 그런 하소연을 하며 안타까운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결국 시댁에서 이혼을 종용, 오히려 집 나간 며느리를 다시는 안 볼 테니 서류도 정리하고 끝내라 시며 서류 정리 안 끝내면 아들도 본가에 발 들이지 말라는 아버지의 호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영 씨의 고된 농장 일은 계속되었고
아내와의 갈등,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안 보고 사는 게 쉬운 게 아니라며
쓴웃음을 지으며 맥주에 오뎅탕을 먹으며
"하루 세 끼를 맥주로 배를 채운다. 요즘은.."

​이 말에 우리 집 특급 요리사 배우자님이 후다닥 김치볶음밥에 계란후라이를 얹고 참기름에 통깨 마무리까지 올려 식탁에 올리자 허겁지겁 밥을 첨 먹는 사람처럼 떠 넣더니 원래 밥이 이렇게 맛있었냐고 한다. 천석꾼 만석꾼 세영 씨가..

​그 후로도 많이 괴로울 때마다 우리 집에 술 한잔하자고 오던 세영 씨가 그날은 아주 기분이 좋아서 들렀다. 본가와는 접촉 안 하고 아내와 재결합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며 그나마 그것마저도 감사하다며 딸내미 얼굴을 보고 세 식구같이 밥을 먹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했다.

​몰랐던 행복, 일상의 빛이 무지개빛이라고 .
자기가 너무 한 곳에 매몰되어서 아내와 아이를 힘들게 했다며 농장일 줄이고 외부 일을 더 하면서 생활비를 더 줄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재결합 기념으로 삼십 년 넘게 고생했던 축농증 수술로 뻥 뚫린 세상 살기로 했다면서 수술 예약도 잡아 두었다며 목소리부터 희망에 차 떨리는듯했다.

​며칠 뒤, 수술 잘 되었다면서 코에 거즈로 잔뜩 감싼 채 영상통화를 했다.
퇴원하면 같이 밥 먹자고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다고, 기대하라며 들떠서 끊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믿을 수 없는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렸다.

​수술 전 혈액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좀 높으니 정밀검사를 권했고, 정밀검사에서는 이미 급성으로 진행된 간암이 발견되었다는 소식과 아내의 뱃속에 6주 된 둘째가 생겼다는 소식...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
아무도 먼저 말도 못 하고
각자 삼켜야 하는 말들만 공중을 맴돌았다.

세영 씨 본인은 말기 암이라는 것까지는 모른다고 소식을 전해준 사촌 동생이 엉엉 우는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렀다.
사촌 동생과도 가깝게 지낼 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세영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
그 말만 반복했다.

나도,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세영 씨의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3개월 시한부라는 진단도 의사에게 본인이 들었다고 연락이 왔다.

괜찮다고.. 자기는 반드시 이겨낼 거니까
자기 앞에서 울지 말라고...

​매일 새벽 해도 뜨기 전에 농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산으로 향했고, 평소 좋아하지만 시간이 없어 못했던 낚시와 드라이브로 컨디션을 조절했다.

​암에 좋다는 자연식과 운동법, 갖가지 정보를 보내주면서 억지로라도 웃으며 응원했다.
매일 산보를 가서 찍은 인증 사진과 산딸기, 산머루, 오디 열매를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자꾸 건강해지는 것 같다는 말과 달리 하루하루 수척해지는 얼굴이 보였다.

매일 거짓말을 했다.
"오늘 얼굴색 너무 좋아 보여!!"

"좋은 거 있음 같이 먹자!! 혼자 먹지 말고!!"

"빨리 나아서 두 가족 단체 사진 찍자!!"

그렇게 삼 개월의 시간을 선물받았지만,
세영 씨는 1년을 넘게 진짜 자유롭게 원하는 삶을 살았다.

열대야가 유독 심하던 여름 날 밤,

세영 씨가 위독해 대학병원으로 갔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출발했다.

마지막일 것 같다는 동생의 말과 달리 세영 씨는 수액도 맞지 않은 채 우리를 반겼다.

수척해진 얼굴은 지금 얼마나 몸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지 보여주는 듯 미세하게 떨렸다.

" 니들 올 줄 알았으면, 김치볶음밥 좀 해오라고 부탁할걸..."

​그동안 스스로 식이조절로 안 먹었을 뿐,
의사는 드시고 싶은 거 마음껏 드시라고 했다는데 ...

​남편은 내일 김치볶음밥 꼭 만들어 오겠다며
당분간 병원에서 푹 좀 쉬라며 격려하고 돌아오는 길에 몹쓸 부고 문자가 날아들었다.

​마흔의 사내.
둘째는 태어난 지 백일.
급여 더 달라는 자식이 미워 등 돌린 아버지.

​가슴이 먹먹하고 허무함에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에 와서 정장을 챙겨 입고 다시 빈소로 향했다.

​그 짧은 시간, 사경을 헤매다 갔을 수척한 얼굴이 떠올라서 운전을 할 수 없다는 남편이 이해가 되었다.

정말 길지 않은 두 시간 남짓이 믿을 수가 없었다.

​"하루만 더 살지. 내가 김치볶음밥 해간다고 했는데.. 하루만 더 살지..."

​마흔, 아직 친구의 죽음을 마주하기에 우린 너무 이른 나이였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냥 우리 친구 세영이가 불쌍하기만 했다.

빈소가 차려진 곳에는 아직 사진도 올라오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 먼저 모여들었고, 먹먹한 슬픔을 누를 길이 없어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모두들 마음껏 목놓아 친구를 보냈다.

​세영 씨의 마지막은 컵라면에 물 좀 부어달라는 부탁이었다고 한다.

일 년 넘게 너무 싱겁게 먹었더니 짠 게 너무 먹고 싶다고.

내일 김치볶음밥 먹을 생각에 신난다고 말하면서 컵라면을 후루룩 해치우고 그렇게 갔다고 말하는 사촌 동생의 말끝에 "하루만 더 살지 했던 남편은 아까 올 때 만들어 올걸..." 하며 오래 자책했다.

​친구는 가고, 둘째는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했을 나이다.
해마다 삼복더위가 찾아오면
수척한 얼굴로 웃으며 온갖 열매는 따보이며 자랑하던
세영 씨가 생각난다.

세영 씨, 잘 있나요?

다음 생에는 우리 오래 친구합시다.

김치볶음밥도 자주 같이 해먹으면서, 사진도 자주 찍고요...

오늘도 세영 씨 가던 날처럼, 무척 덥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