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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Dec 08. 2024

삶이 한없이 사소해 보일 때면  022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사소한 것들/앤디 앤드루스>

10월의 나무가 누레지고,

11월의 바람에 나무는 벌거벗기 우고,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 Barrow'강은 빗물에 몸이 불었다.


빗물에 불어난 '배로'강  부풀어 떠오른 임산부의 시했다. '클레어 키건 Claire Keegan'의 얇은 소설은 렇듯 하고 한 풍경으로 시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장에서 진한 여운을 한가득 끌어안고 맨 처음 이곳으로 되돌아오면  풍경들이 르게 와닿는다. 


우리의 삶이라는 실체가 벌거벗기운 나무처럼 황량하고, 짙고 검푸른 강물처럼 암울하지만 따사롭고, 위로가 되는 무엇인가를 품고 있음 작가는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 람들은 겨운 간이 흐른 후에 "그랬구나, 그랬었구나"라 뒤늦은 감사와 평온함을 느끼, 자신이 처한 삶을 향한 시선이, 관점이 자연스레 바뀌는 경험을 올리게 하려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인생이란 화려한 것보다는 사소한 것들 속에 그 의미를 두고 있음설은 통해 지속적으로 암시하고 되뇐다. 


"변변찮은 삶에서 수없이 와닿는 사소한 것들,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삶을 이루어 왔음"을, 그리고 사람에게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어떠하든 그 의미를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몫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있음" 말이다.      


얇고 간결하지만 많은 의미들이 정제 함축 코 얇지 않은 소설이다. 작가 결한  속에 수많은 의미들을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이 절제하고 참아냈을까. 인적으로 간결한 글과 얇은 분량(121쪽)으로도 이토록  운과 다양한 시선을 성하게 아낸 작가의 내공 인상 다.


인생의 의미가 왜 하필이면 <사소한 것들> 속에 담긴 이유는 뭘까?

그녀가 그토록 강조한  <사소한 것들>의 실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람은 늘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쳐지듯 삶의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한다. 소설 속 주인공 펄롱은 빈주먹 아니 빈주먹보다 못하게 태어났다. 그의 엄마는 열여섯 살 때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펄롱이 태어나는 날 혈육들은 등을 돌렸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미시즈 윌슨'은 두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살갑게 보살펴줬다. 그녀의 보살핌으로 학교를 졸업한 펄롱은 석탄 야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특유의 성실함과 일머리로 그는 석탄야적장을 운영하는 사장이 되고 다섯 딸을 둔 어엿한 가장이 된다.

 

지금 현재 그에게 유일한 바람은 경제난 등 혹독한 시기들이 닥쳤지만 그럴수록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다.


펄롱처럼, 평범한 우리 인생들은 모두 그렇게 해내겠노라 결심을 굳히며 살아간다. 가진 것이라도 소중히 지켜내려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계속  것을 다짐하면서 살아낸다.


그런 결심의 대가로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불합리함과 옳지 못한 것들을 못 본 척 지나치거나 타협해야 다. 그럴 때마다 갈등하는 펄롱을 향해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현실적인 아내 아이린, 펄롱을 진심으로 아끼는 이웃 미시즈 케호 등)은 늘 이렇게 말하며 그를 자제시키곤 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들은 다 한통속이야. 어느 한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 하고도 원수가 되는 거야."


들의 말을 되새기며 부둣가를 걷는 펄롱의 앞에 펼쳐진 강물은 내리는 흰 눈을 삼키며 언제나처럼 검게 흘러내렸다. 세상을 악착같이 살아내려 할수록 펄롱의 마음은 왜 점점 더 편해지고 그의 인생은 한없이 방향을 상실한 채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걸까?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한다.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다.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내와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평온한 일요일 밤이지만 펄롱은 다시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 이유를 살피던 펄롱은 어느새 또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지내던 과거를 생각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한다. 정든 옛 부엌에서 크리스마스의 어머니와 추억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 그는 한번 지나간 것은 결코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펄롱은 오래전 자신과 엄마를 보살펴준 미시즈 윌슨,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그리고 그녀의 친절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임신한 엄마가 결국 검은 배로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가치를 부여한 소중한 것만 지키기 위해 집착하는 동안 삶 속에서  마주치는 소중한 들을 그저 <사소한 것들>로 치부하는지도 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생이란 우리가 말이나 행동으로 하지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은 사소한 것들, 그것들이 한데 엉키고 섥켜 하나의 삶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소함이 지닌 가치의 또 다른 측면을 베스트셀러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의 작가인 앤디 앤드루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 즉 관점이란 정말 사소한 것이지만 여러 팩트를 단 하나도 바꾸지 않으면서 결과는 극적일 정도로 놀랍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들과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사람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황에 대한 관점은 우리의 마음에 <평정심>을 생기게 한다. <평정심>은 선명한 생각으로 이어지고 선명한 생각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낳으며 기회와 문제의 차이도 구분하게 해 준다. 국은 사소해 보이는 관점의 변화가 인생의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힘 있는 수녀원의 부당함에 맞서 펄롱은 갇혀있던 소녀를 구해낸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최악의 상황들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변해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끝으로 요즘 읽고 있던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의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에서의 글귀가 생각난다. 그는 야단법석을 떨지 않고 세상일을 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미천한 사람이라고 했다. 인류를 도끼로 수술하는 게 자신의 신성한 의무라고 아는 자칭 영혼의 조종자를 혐오했다.

  

세상은 화려하고 요란하고 힘 있는 사람들, 소위 일류들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소리 없이 묵묵하게 사소함을 쫏아 살아가는 수많은 이류인생들을 통해서 돌아간다는 그의 말이 가슴 절절하게 와닿는다.


모든 변화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삶의 화려하고 요란함보다는 사소함을 쫏아 더욱 집중하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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