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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캐스트 Jan 01. 2024

보이스피싱을 당해본 적 있나요?

Part22. 내가? 내가 당했다고??

23년 액땜은 이미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았었나 보다. 불과 이틀 전, 그것도 연말을 이틀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요즘 우리 부부의 최대 관심사는 재테크와 돈이다. 저축보다 지출이 더 많은 신혼 1년을 보냈기 때문에 2년 차부터는 다시 불려볼 생각이다. 남편은 직업적인 도전을, 나는 재택근무로 남는 시간에 소소한 부업을 우선 시작해 볼 계획이었다.


얼마 전 회사 송년회에서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 사담을 나누던 중에 나처럼 재택근무로 남는 시간에 부업을 해볼까 고민하는 동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동료가 단순 타이핑, 문서 작업 알바도 있다며 알아볼 예정이라고 했다. 사실 광고성 블로그 외에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띠용 싶었다.


알바몬에 오랜만에 로그인을 하고 '재택' 키워드로 조건 검색을 하니 생각보다 많은 공고가 존재해 놀랐다. TM, 블로그 외에도 동료 말처럼 단순 타이핑, 문서작업 알바부터 쇼핑몰 상품 등록, 검수작업까지 다양했다.

그중 실제 괜찮아 보이는 사이트, 업무 내용, 공고의 상세 내용들을 골라가며 나름 검수(?)를 하고 몇몇 개에 지원을 했다.



요샌 다 카톡으로 바뀐건가 싶던 때..

지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에도 몇 통의 문자들이 왔다. 공통된 내용은 지원에 합격했고 카카오톡으로 문의를 달라는 것이었다.


응? 카톡으로 문의?

한 개의 업체도 아니고 여러 업체에서 모두 카톡채널을 보내오다 보니, 10여 년 전 무조건 전화연락을 받고 면접을 보던 내가 늙었나 보다 싶었다. 요즘은 '전화포비아'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전화를 기피하니까 생긴 신종(?) 문화인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상했다. 카톡 문의가 없으면 전화라도 올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카톡채널을 추가하고 연락하라는 메세지만 보내왔다. 어디 업체인지도 말하지 않은 문자도 있어서 광고인가 보다 하고 무시했다.



문제의 그놈...ㅂㄷㅂㄷ

그렇게 몇 주가 지나도록 제대로 된 연락 없이 지내던 때였다. 지원한 업체 중에서도 가장 하고 싶던 원서 교정, 타이핑 알바를 구하던 출판사에서 문자가 왔다.

그동안 받았던 광고스런 문자와 다르게 (이땐 다르다고 생각했다..) 업체명과 담당자명, 업무내용, 그리고 똑같이 카톡으로 문의를 요구했지만 휴대폰번호를 안내한 것이 반가웠다. 당시 공고내용도 하는 업무에 대해 상세히 적어놓지 않은 다른 업체에 비해 굉장히 상세히 적혀있었고 빨간 글씨로 유의사항도 적혀있었다.


*유의사항

저희는 다른 공고들처럼 수당을 많이 드리겠다고 광고하지 않습니다. 기존에 일하시는 분들도 하신 만큼 건당 수당에 따라 받아가고 계시며 성실하게 꾸준히 하실 분들만 지원 부탁드립니다.



그럼에도 카톡으로 문의하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 우선 친구추가만 해놓고 다시 한번 업체 사이트와 공고를 확인해 봤다. 여전히 홈페이지는 출판과 디자인을 하는 업체의 정돈된 사이트처럼 보였다. 공고는 삭제가 되어 있어 지원마감이 되어 삭제했나 싶었다.




평소의 귀차니즘이 왜 여기서는 발동이 되지 않았을까.

남은 올해 연차를 내며 집에서 쉬고 있던 12월 29일, 하지 말아야 할 연락을 하고야 말았다.



카톡 시작은 평범했다.


"아이디어 회의한 녹취록과 원본 원서를 보내드리면 그대로 워드파일로 작업해 주시면 됩니다. 건당 25,000 ~ 40,000원까지 수당은 때에 따라 달라집니다. 계약서 보내드릴까요?"


음 딱 퇴근 후 잠깐 작업하면 되겠네.

계약서도 큰 특이사항은 없었다. 관련해서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을 물어본 후 계약서를 작성했다.


사실 이때도 긴가민가하며 작성한 계약서를 보낼까 말까 고민을 했다. 아무리 이력서를 냈다 하더라도 흔한 전화 한 통도, 면접도 없이 바로 계약서를 쓰고 업무를 맡긴다고..?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라떼와 너무 다른 상황에, 너무 오랜만의 알바, 그리고 재택부업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헷갈렸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갖고 나름 찾아본답시고 나이스정보에 기업정보도 찾아봤고 사업자등록증도 확인한 후 계약서를 보냈다.



"급여 계좌와 신분증 보내주세요."


평소에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도 특히나 개인정보에 굉장히 민감해하는 성향이다. 스팸문자부터 흔한 광고메세지도 받는 게 싫어서 함부로 어플을 다운받거나 가입하지 않는다. 광고성 동의는 무조건 NO를 선택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 너무 일사천리였지만 그땐 이미 나름 알아볼 만큼 알아봤기에 살짝의 찝찝함 말곤 홀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래 나도 알바비 처리할 때 필수정보로 받았던 거니까. 그 와중에도 신혼집 주소지가 아닌 본가 주소지가 적혀 있는 신분증을 보내긴 싫어서 여권 사진을 찍어 보냈다.


"보내주신 여권 사진은 삭제해주시고, 다른 신분증 보내주세요."


여권도 통상적인 신분증이라 이유가 궁금하긴 했지만 나 또한 예전에 알바생들을 관리할 때 여권을 받아본 적은 없어서 의심을 거두고 면허증 사진을 보냈다. 이미 읽은 카톡 메세지 삭제는 상대방에겐 삭제가 안된다는 것도 모른 채 오히려 삭제하라는 별것 아닌 말에 믿음이 갔나 보다. (바보자식..)




"사용하시는 통신사와 PASS 어플 유/무 (없으면 다운받아 주세요), 아래 정보 작성 부탁드려요.

-배송받으실 주소 :

-배송받으실 분 성함 :

-배송 특이사항 : "


배송은 데이터칩 등록한 청취전용기기를 보내준다고 했다. 거기까진 그렇다 쳐도 갑자기 통신사와 PASS어플을 물어본다고?


본인인증이 그니까 왜 필요한건데

본인인증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혹시나 실례일까 싶어 최대한 정중히 말한 내가 바보 천치 같다. 늦어도 5분 안에 바로 답장을 하던 그놈은 40분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카톡 요구는 무조건 거르세요..

왜 이게 이제야 생각이 났을까. 알바에 지원한 이후 알바 관련 메세지가 많이 와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메세지였다.


1. 카톡 또는 텔레그램 추가 요구
2. 부정확한 채용 담당자 정보
3. 공고와 무관한 제안

생각해 보니 알바몬에서 이미 경고했던 3가지에 모두 해당했다.. 바로 알바몬에 문의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신이 왔다. (빠른 확인 감사합니다 알바몬님..)




지원마감으로 인한 공고 삭제가 아닌 불량공고로 삭제 조치였으며 이미 해당 업체는 자진탈퇴를 했단다.




나 당한 거구나.



그렇게 나름 민감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왜 그렇게 무지한 행동을 했는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이미 주민번호, 계좌번호, 신분증이 털렸다.


화가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내 정보를 이용할 이 악당에게 최대한 정중히 다시 카톡을 보냈다. 그렇게 말하면 이용하지 않을 거라는 바보 같은 마음으로..



연말 송년회 모임을 가던 길 이 카톡을 받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뒷목부터 복숭아뼈까지 닭살이 돋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상욕을 할만큼의 뻔뻔함과 진짜 내가 당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만한 상황에도 멘탈이 털리지 않았는데 이때만 해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그야말로 공황상태였다.


떨리는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은 나를 진정시키며 내가 보낸 정보만으로는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거라 위로했다. 전화를 끊은 남편은 여러 블로그 주소들을 보내주었다.


참고) https://m.blog.naver.com/fingfing00/223298400195

1) 사이버수사대 신고 접수
2) 금감원에 개인정보 노출 신고
3) 엠세이퍼에 개통 제한 신청
4) 기존 신분증 폐기 및 재발급 신청


업체명만 다르지 나와 같은 일을 겪은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행히 나는 본인인증 단계에서 멈춰 별다른 피해가 없었지만, 끝까지 진행한 분들은 본인명의로 전화가 개통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위 4가지를 모두 진행했다. 사이버수사대 사이트에서의 신고는 임시 접수 단계로, 14일 이내에 직접 경찰서에 방문하여 신고를 완료해야 한다. 연초부터 반차 쓸 일이 생겨 기쁘구나..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되고, 죄가 인정되면 형사처벌을 원하나요?"


신고접수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예스를 눌렀다. 뿌리뽑진 못할지언정 더이상의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받은 피해도 없는 사람이 너무 오바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무조건 본인 탓을 하기 때문이다. 왜 더 알아보지 못했지, 왜 의심하지 못했지, 왜 속았지.. 왜 나는 의심이 갈 때 미리 찾아보지 않았는가. 구인공고로 보이스피싱을 할 줄이야.. 다 나 자신을 탓하게 된다.


이럴 때 옆에 든든한 내편, 남편이라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큼이나 놀라고 바보천치 같은 내게 화도 났을 텐데 날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당할 정도면 그 누구도 당했을 만한 일이고, 이쯤에서 끝내길 잘했다고... 별것 아닌 이 말들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오늘은 글이 길었다. 지금은 제대로 각성이 되어 다음주 경찰서 갈 일만 기다리고 있다. 연말에 액땜한 만큼 올해엔 제발 평범한 일들만 있기를 힘을 가득 담아 외쳐본다.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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