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성품을 바꿀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하면 타인의 말에 더 잘 귀 기울일 수 있을까 고심하고는 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나의 상태에 따라 이 능력은 천차만별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본인이 내키지 않는데도 억지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은 피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니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만큼 공감에 빠르게 도달하는 방법은 없었다. 어느 순간 너무 주변에 휩쓸린 나를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럴 때는 책을 읽으며 생각 정리를 하는 편이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책 한 권을 골라 집었다.
“천 개의 공감”이라는, 제목이 주는 다소 신선하게 느껴졌던, 이 책은 마치 라디오 사연을 읽어주는 코너처럼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도 선호하는 형식인데 곳곳에 관련 명언이 배치되어 있어 조금 더 깊은 여운을 준다. 한 장 한 장 읽어갈수록 자신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어 새로운 느낌도 들었다. 공감하기에 앞서 내면을 다스리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책을 읽으며 나름의 생각이 정리된 것에도 있겠다.
타인의 싫은 점은 자신의 내면이다.
잘 이해가 가질 않았던 구절이다. 상대는 나의 거울과 같다는 말일까. 살아가며 누구든 다 좋아할 수는 없다.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미치도록 싫은 이들도 존재한다. 그저 어렸을 때는 이 싫음의 감정을 표출하며 나와 성향이 다른 이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낸 적도 있었다. 마음에 감정이 쌓이도록 놔두질 않았던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분노를 한없이 보이는 것도, 또 너무 마음에 담아두는 것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확실한 점은 특정 대상을 향한 원망이나 화가 제대로 분출되지 않았을 때 “투사적 동일시”라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타인을 마냥 오해하는 본인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의 내면 차이를 인지하고, 타인의 시각에서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타인을 향했던 본인의 불공정한 모습을 조금씩 인정한다. 더욱이 이를 반복적으로 행하라고 거듭 강조하는데, 이는 한 번씩 경험할 때마다 순간의 감정이 조금씩 완화되어 당사자를 성장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내면에 갇힌 감정을 걷어내는 데에는 이만한 기법이 없는 것 같다.
마음의 병은 그 어떤 질환보다 깊고, 단단히 박혀 치유되기 힘들다. 어쩔 땐 그 아픔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숨기기도 하는데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아도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듯싶다.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곪아서 악화하는 것처럼 마음의 병 또한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치유의 핵심이 “직면하기”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강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괜찮아?”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한다.
물어보는 이도, 대답하는 이도 괜찮지 않은 상황임에도 정말 괜찮다며 받아치는 왜곡된 현실이 달갑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게 괜찮지 않다고 하면 이를 물고 늘어질 게 뻔하니까. 하지만 때로는 괜찮지 않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또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며, 나아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일 테니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된다면 머지않아 조금은 편안해진 자아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