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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Apr 06. 2024

이혼일기(59)

링딩동

눈물은 깨어있는 시간 내내 그렁그렁하다. 그래도, 울면 안되니까 꾹 참는다. 때로는 누군가 다정한 말을 건네주면, 핑 고여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 같은데, 그 때는

링딩동 을 부르면, 정말 고맙게도 눈물이 쏙 들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방법은 결혼식을 할 때 배웠었다.


식 도중에 감상에 빠져 울 것 같을 때, 누군가 링딩동을 속으로 부르면 안 울 수 있다고 해서 기억해두었던 것인데, 이혼할 때도 쓰다니 참 요긴하기도 하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데 한달동안 7개의 회식이 잡힐 때에도, 잠이 부족해서 짜증 내는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아침 일찍 깨워 떠메고 출근할 때에도, 너무너무 피곤해서 당장 침대에 쓰러지고 싶을 때에도,


주문처럼 열심히 외우고 나면, 고맙게도 눈물이 사라진다. 지금 사라진 눈물은 집에 가서 아이 재우고 다 쏟아내야지. 다짐한다.


간간히 링딩동을 부르며 회의에 참석하며 보고를 받으며 이리저리 휘둘리듯 있다 보니 전화가 와 있었다. 변호사님 번호였다.


맞아.. 오늘, 변론 기일이었다.


22년 7월에 소송을 제기한 이후로 처음 열린 변론 기일이다. 그전에 한번 있었던 것은 쟁점 정리와 진술 청취 등을 위한 변론준비기일이었고 변론기일은 진짜로 서로의.주장에 대한 판사의 심리가 이루어지는 날이다.


22년 7월에 소 제기


12월 조정


23년 1월에 조정


7월에 변론 준비기일 ,


11월 12월 가사조사를 받고


12월 양육환경조사 


24년 3월 변론기일 


소송은 이런 기간을 두고 진행되었다.


물론 내 사건이, 의견합치가 안되어 더 길어지고 있는 것일 거다.


변호사님, 전화를 놓쳤어요. 변론기일 끝나서 거신 거죠..? 제가 기운이 없어서 그런데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전화말고 카톡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상대방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부부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원고는 부부상담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판사가 열람불가인 조사관의 가사조사서를 스크린에 띄우면서, 양측 모두 명백한 이혼사유가 없으니 원고가 위자료를 취하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습니다.


피고에게 파탄가정보다 이혼가정이 아이에게 더 낫다고까지 판사가 설득했음에도 굽히지 않아 부부상담 대신 조정기일을 잡았습니다. 아마 1심에서 패소해도 항소할 것을 우려하여 조정기일에 피고를 설득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 구나.


부부상담을 요청하는 상대방의 서면은 이틀 전에 받아보았다. 난데없이 부부상담이라니 얘도 진짜 애를 쓴다..


우린 신혼 초에 이미 3번의 상담을 받았었다. 그런데 또 무슨 상담이 의미가 있을까. 아직도 임신을 해서도 상담을 위해 걸어서 가던 성산동에서 합정동길을 가게 되면 마음이 서늘하다. 아무 것도 정말 아아무도 내 편이 아닌 것 같던 그 때 그 아득한 공황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네 그럼 출석해야 겠네요.. 저 근데 오늘도 피고가 직접 나왔나요?


아니오 오늘은 변호사만 나왔습니다


이제 이런 이혼 이슈는 링딩동이 필요하지도 않다. 처음엔 그렇게 무섭고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하기만 하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나 이렇게 어려운 일 속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본인들이 원하는 액수를 원하는 반응을 보이며 주지 않았다고 화내는 부모가 더 이상하고 서러울 뿐이다. 나를 탓하는 문자와 손녀가 보고 싶은 문자를 번갈아 보내며 도대체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사태가 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들 나한테 왜 이럴까. 왜 이럴까. 나 뭐 잘못했다고 이렇게들 가혹하게 괴롭히는 걸까.


아니 괴롭히는 것 같을까...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리에 앉아 도착한 메일을 열었다. 발신자는 매일 그가 맡은 업무를 메일로 보고해주던 아직 얼굴도 잘 모르는 직원분인데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른 기관으로 발령이 났다.


늘 그렇듯, 감사합니다. 하고 덧붙여 그간 고생 정말 많으셨어요...!


보낸 메일에 대한 답메일이었다.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업무에 힘드실텐데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해주셔서 늘 감사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고 다른 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다시 링딩동.


내가 느끼지 못할 뿐, 알아주고 인정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내 노력과 마음씀이, 마냥 이용되고 있지만은 아닐거야.


그래도, 울지 말자.


------


좋은 사람, 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주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있고, 아무 자격이 없는데도 받아들여지고 있음에


감사해야지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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