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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Apr 18. 2024

이혼일기(60)

진짜... 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모든 불화의 원인은 나의 능력없음. 이었다.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내내 들어야했던 이유는 내가 경제력이 없으므로 본인과 어머니에게 얹혀 살고 있기 때문이었고,

친정 부모님이 저렇게 당당히 요구하는 것은 내 생활의 일정 부분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다니니 회식이나 야근 시의 아이 돌봄을 부모님께 부탁드렸었고, 결정적으로 나는 운전을 못한다. 주말에 관사와 친정을 오갈 때마다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움직였다. 그렇게 어느 부분이라도 남의 팔에 내 일부를 내어주고 산다는 것은,

몹시 불안정한 일이었다.

아무리 피를 나눈 부모일지라도, 사람은 본인의 계산대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내 안위가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걸려 있으면 그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고 그 상황에서 내 주장은 아주 무의미해져 버렸다.

 그러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아무도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상황이어야만 했다. 그 상황을 만드느라 많은  눈물과 고민과 행동이 있었다. 정말 많은 품이 들었다.

1) 세탁기 설치 시기를 놓치고 주말마다 친정에 가서 빨래를 해왔었다. 그 덕에 금요일마다 챙겨가는 짐이 트렁크로 가득이고, 주일에 돌아올 때마다 챙겨오는 짐이 또 한 짐이었는데.. 친정에 못 가게 되었으니 먼저 세탁기와 건조기부터 설치해야했다.

 천천히 알아보면 좋았겠지만 당장 시간이 없어서 일하는 틈틈이 당근을 뒤졌다. 언제 이사나갈 지 모르니 섣불리 새 것을 살 수도 없고, 그럴 돈도 없다. 바로 이번 주 안에는 빨래를 해야한다. 차도 없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빨래를 이고지고 빨래방에 가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다. 좋은 조건을 몇번을 놓치고서야 이사나가는 옆동네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중고로 20만원에 사서, 또 20만원 가까이 주고 설치를 했다. 중간에 직장에는 몇번이나 아쉬운 소리를 하며 외출을 하고, 조퇴를 하고, 아이를 돌보며 내내 채팅을 하고.

 누군 지 잘 모르는 사람과 운송 계약까지 하며 큰 덩치의 중고물건을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갖췄다.

2) 아이의 학습지와 미술학원에는 내가 당분간 몸이 안좋아 못 가겠다는 이유로 두어달 후를 기약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내내 마음이 아팠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혼도 하고 있고, 그 와중에 부모와도 헤어지는 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 동네 챙피해서 못살겠다.. 를 되뇌이며 열심히 변명거리를 찾고 만들어 냈다. 괜히 학습지 선생님과 미술학원 원장님과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 그냥 저냥 담담한 학부모의 위치였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또 천성이 그렇지를 못해서 선생님들과 너무 다정하게 소소한 수다도 떨고 지냈었는데,  갑자기 관계를 중단하는 것도 내내 죄책감이 들었다.  

3) 이제 드디어. 운전을 시작해야 하는 때이다.

잘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못할 것 같아 미루고 미루어 두었던 일을 정말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왔다.

친정은 안가도 교회는 가야했다. 처음엔 여기서 2시간 거리의 친정동네에 있는 교회를 도대체 어떻게 가야하는 지를 모르겠어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택시비는 편도 4만원. 돈도 돈이지만 택시를 타고 1시간여를 달리는 것도 정말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당장 이번 주 토요 새벽예배를 가야하는데.. 궁리하다가, 관사 근처가 시작점인 심야버스가 생각이 났다. 심야버스의 막차는 3시 40분. 관사에서 그 터미널 까지는 택시로 7분. 새벽에 아이를 업고 나가서 택시를 타고 심야버스 막차를 타면 2시간 후인 5시 반 교회 앞 정거장에 내린다.

 새벽 3시,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일어났다. 이렇게 까지 해서 예배를 가야하는 가. 생각을 했지만, 어쨌든 내 중심을 잃으면 안된다. 못 갈 때 못 가더라도, 일단 오늘은 가보자. 매주 드리던 예배와 성가대 연습을 못하면 또 어떤 감정 폭풍이 몰아쳐올 지 모르는 일이다.

 자는 아이를 두꺼운 옷으로 싸고 안은 후에 택시를 부른다. 아직 입김이 나오는 1월 말 자느라 축 쳐진 아이를 안고 기도를 읊조리며 밖으로 나가 택시를 타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버스 터미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과연 제시간에 오는 걸까.. 여기가 맞는 장소일까.. 머릿 속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하며, 안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되지... 생각하는데, 저 쪽 코너를 돌며 밝은 빛을 반짝이며, 내가 타야하는 버스가 나타났다.   

 아이를 안고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아직 깜깜한 새벽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타고, 심야버스답게 취객들도 많고, 이런 노선이 있는 줄도 몰랐던 지난 시간들을 지나서 버스는 한강을 가로질러 서울의 끝에서 끝으로 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서 그래도 어쨌든 나는 보호받고 있다. 주님 은혜로 직업을 가졌고, 아이와 함께 있고. 소속된 공동체가 있다. 교회를 가면, 일단 성전으로 가면, 버려진 것 같이 참담한 나를 받아주고 위로해줄 것이다.

 마치 고향을 찾아가는 스칼렛 오하라처럼 비장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아이를 한번 더 끌어안고 고른 숨을 내쉬는 코에 내 볼을 대어본다.

 가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연습을 하고. 오후에는 아이를 아빠에게 보내고 나서, 운전연수를 받으면 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진짜,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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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아닐까 여러번 생각했지만,  만신창이임에도 매순간 움직일 수 있도록 이끄셨던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금은, 운전해서 다니고 있어요 ;-)

오늘도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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