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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Apr 20. 2024

이혼일기(61)

부활주일


주여.. 저를 도와주세요.

가족의 날선 독한 말들로부터 제 마음을 지켜주시고, 새벽의 캄캄함이 저를 집어 삼키지 못하게 하소서. 어떤 나쁜 기운에도 제압당하지 않게 하시고.

무엇보다 주님, 제게 주신 이 아이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그의 영혼과 육체의 한터럭도 흠집나지 않게 하시고... 이 아이의 인생을 주님이 책임져 주세요.

모든 죄를 사하시고, 모든 죽은 것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보혈이. 제 기도가 그 생애의 심장이 되어 인생의 구석구석, 혈관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가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우리 아기의 인생은 나와는 다른 즐겁고 밝은 인생이기를.

아직은 추운 겨울, 가방을 메고 두터운 패딩을 둘러싼 아이를 안고,

정차한 버스 계단을 조심조심 내딛어 내리며.

횡단보도에 서서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며

성전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빙판길을 미끄러져 가면서도

미카엘 천사가 나타나 우리를 호위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주 하나님은 나를 외면하실 분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외로운 엄마의 기도를 업수이 여기실 분이 아니다. 내 눈물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절대로 땅에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때와 달리 아이를 안고 새벽에 들어선 나를 보고 궁금해하는 교회 지체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중간 중간 오열하다시피 울었고, 말을 못 잇기도 했지만,

- 이제 곧 날이 따뜻해질테니까요. 벌써 2월이에요. 2월은 짧고 금방 따뜻해질 거에요.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봄이 올거에요. 그럼 훨씬 수월해질테니, 정말 괜찮을 거에요.

희망을 잃지 않았던 마지막 말들을 기억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재앙이라 여겼지만, 내 속사람인 성령님은 내가 너에게 주고 싶은 것은 평안이니, 부족한 입술을 열어 기어이 미래와 희망을 고백하게 하셨다.
.
.
.
.
4주간 운전연수를 받았다.

원래 2시간씩 4일을 연속으로 받는다던데, 평일은 시간이 나지 않아서 토요일 아이를 아빠에게 보내고 연수를 받았다.

차도 없어서 추가요금을 내고 강사선생님의 차로 배웠다. 면허를 10년도 전에 따서 엑셀과 브레이크 위치도 모르던 바보가, 그래도 가르쳐주시는 대로 시야를 멀리보고 핸들을 돌리며 열심히 배웠다.

연수를 받는 틈틈이 중고차를 알아보았다.

막막함에 혼자 성질을 부리며 운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냐고, 내가 이 모양으로 된 것이 내 탓 뿐이냐며. 하나님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화도 내고, 찢어진 마음으로 돌아서서 회개도 하며.

허허벌판 같이 아무 것도 모르고 막막하던 상태에서 경차로 마음을 굳히고, 차 종을 정하고, 들쭉 날쭉 왔다 갔다 했던 예상가격을 정하고.

아마 백번도 넘게 중고차 판매 앱을 들락날락하던 부활주일 아침.

매끈한 달걀같이 작고 아담한 차 한대가 나타났다.

ㅡㅡㅡㅡ

진짜 봄입니다.

이제 봄을 지나 여름을 걱정해야하는 시기가 왔어요.

제 고난도 슬픔도 괴로움도.

한시즌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기운을 내어 다시 주신 봄날을 누리고, 다음을 대비해야겠어요.

오늘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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