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미니 Jul 06. 2024

이혼일기(72)

손가락 기도

어제부터 머리가 많이 아팠는데 오늘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경험 상 이런 때에는 별 방법이 없다. 두통약을 먹는 것도 부담스럽고 먹는다고 나아지지도 않는다. 피곤해서 아픈 것이다. 몸이 너덜너덜해서 아픈 것이기 때문에 단번에 뭘 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마음 편히 쉬어야 하는데 이미 아이를 키즈카페에 데려가기로 했으니 그럴 여유는 없었다.


주일 오후 아이를 데리고 관사로 건너가야 하는데 부슬부슬 오는 비 마저도 부담스럽다. 아프지 않길 기도하며,


오늘 잘 해낼 수 있어요. 무사히 가게 하심을, 머리가 맑아지고 나아질 것을.


미리 믿고 감사합니다 주님.


계속 되뇌이며 조심조심 운전을 한다.


오늘따라 낮잠투정을 엄마 밉다로 시작하는 아이에게, 눈 감고 일어나면 우리는 정말 재밌는 키즈카페 갈 거라고 달래면서 긴장이 잔뜩 들어 강변북로를 타고, 관사 근처로 와서는 바로 주변 쇼핑몰에 있다는 키즈카페를 찾아간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차선 바꾸는 것도 쉽지 않고, 지하로 내려가는 주차장도 아직 너무 무섭고, 차들이 빡빡한 곳에서 주차자리를 찾는다 해도 그 사이로 쏙 넣는 것도 일이다. 게다가 요즘은 왜 이렇게 비싼 차들이 많은지 행여나 긁을까봐 덜덜 떨며 간신히 차를 대고


 낮잠에서 설핏 깬 아이를 안고 나와서 넓은 쇼핑몰 도대체 어디에 키즈카페가 있는 지,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다 다시 원자리로 돌아와도 길을 못찾으니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건물 밖으로 나와 다른 건물로 들어가서야 또 간신히 키즈카페를 찾아 아이와 함께 입장을 해서.


 점점 아파오는 머리를 붙들고 이리저리 아이를 따라다니며 장단을 맞춰주고 함께 놀기를 2시간. 배가 고프니 머리는 더 아픈데 키즈카페에는 과자같은 탄수화물 외에 특별히 먹을 만한 것이 없다.. 두통과 허기짐을 참으며 또 열심히 길을 찾아 이번에는 피곤햐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주차 정산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지하 주차장을 돌아돌아 나와 비오는 길을 더듬어 집으로 간다.


 이제 두달이 되어가는 초보에게는 모두 다 버거운 일들.


하지만 그래도 무사히 해냈다. 참 다행이야. 정말 감사하다.


 여러번 틀었다 뺐다 하며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가, 냉장고를 여니 군고구마가 하나 있어서 한손으로는 차가운 군고구마를  뜯으며 아이의 저녁을 차리고, 짐을 정리하고 앉았는데.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진짜 많이 아플 각인데. 진짜 범상치 않은데. 생각하다보니 정말 토하기 시작한다. 일이 커지고 있네.


 내가 성하지 않다보니 아이는 자는 타이밍을 놓쳤다. 잘 시간을 놓쳐 피곤한 아이는 내내 짜증을 부리고 엄마인 나는 아이를 통제할 기운도 그 장단을 맞춰줄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아서.


 다 토해내고서도 아픈 머리를 붙들고 누워있고, 아이는 그런 나에게 책을 읽어달라 영상을 더 보겠다 갖은 떼를 다 쓰며 때리고 울고 화를 내고 있는. 


지옥같은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또 어떻게 지나가야 할까. 


 결국은 일어나 아이에게 생전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내버렸다. 자기 싫다고 고집피우는 아이를 힘으로 눕히고 엉엉 우는 아이에게 빨리 안자면 엄마 집 나가버릴 거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 머리를 잡고 끙끙 거리다가 엄마에게 놀라 누워서 숨도 못 쉬도록 우는 아이를 한손으로 끌어 안는다.


 엄마가 미안해. 아가. 근데 엄마 너무 아파. 아픈 날도 있는 거야. 엄마가 힘들 땐 아가가 엄마를 이해해줘야해.


 내가. 더. 힘들어. 엄마는. 나만큼

 안 힘들어. 다시는. 이러지 마. 다시는.


......그렇구나.. 아가...우리 이제 손가락 기도하고 잘까.


 교회에서 배운 손가락 기도는, 다섯 손가락을 좍 펴고 하나씩 접으며 하는 것이다.


엄지를 접고 하나님.

검지를 접고 오늘의 감사를 하고  

중지를 접고  회개를 하고 

약지를 접고, 내일의 바람을 말하고

새끼손가락을 접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약지를 접고.


내일은 아프지 않고 건강해져서 우리 아가 잘 돌보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희를. 돌봐주세요.


무섭게 하는 엄마가 싫어 등을 돌렸는데도 화가 가 가시지 않아 끅끅 거리면서도,


손가락 기도라는 말에

작은 손을 뻗어 엄지를 접고. 하나님. 따라하는 우리 아기를, 돌봐주세요.


ㅡㅡㅡㅡ


너무 힘들어보이는 이야기만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달리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니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라 그러겠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요.


저 날은 정말 힘들었어요. 정말 너무 아파서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많은 것들을 잘 해야했습니다.  결국 다음 날도 회사를 못 갔어요. 키즈카페 하나 데려가지 않은 애 아빠에 대한 분노를 삭이느라 더 아팠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워킹맘이 된지 3년차가 되다보니 슬슬 체력의 한계가 오는 것 같기도 하구요.


 뭐라도 해서 건강히 잘 지내보려고 합니다. 글이 힘든 내용이라 그렇지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도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혼일기(7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