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진작부터 생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혼을 시작한 재작년에는 자기 생일인지 뭔지 별 감각이 없었는데 어느새 2년이 지나, 이제는 본인의 생일을 챙기고 기대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소송 초반, 감지되지 않는 두려움에 떨 때. 작은 우리 아가 발가락을 만지는 것이 더없는 세상의 위안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버렸다.
.. 생일 전날, 내일은 어린이집에서 생일파티를 할 거라고 벅차하는 아이와 침대에 누워 끝말잇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었다. 잠결에도 해야할 일이 있다며 알 수 없는 곳을 헤매는 내 자아를 간신히 끌고 와서, 무겁기 그지 없는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 생일 장식 패키지를 꺼냈다.
잠도 덜 깬 정신으로 고무 냄새에 진저리치며 풍선을 불고.. 행여나 삐뚤어질까 이리저리 재어보며 현수막을 벽에 붙인다 무료배송 조건 4만원을 채우겠다고 회사에서 급하게 주문한 것인데 해놓으니 꽤 예쁘다. 비록 공복에 풍선부느라 과호흡이 여러번 오갔지만 이 정도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항상 엄마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느라 버거워하는 아이인데, 꿈에서도 생일이라고 노래룰 불렀을까. 눈을 비비며 아이가 걸어나온다. 한참을 끌어안고 등을 문질러주다 원하는 드레스도 입히고 티아라도 얹고, 두달 가까이 손꼽으며 기다린 선물도 드리고.
출근 시간에 쫓겨 조급하고 둘 다 졸려 기운은 없지만 이 순간이 날아갈새라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우리 아가 천사가 친구인 줄 알고 손잡고 날아갈새라 치마자락이라도 손가락에 말아 쥐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처구니없는 걱정은 아침 공기에 사라지고 남은 조약돌같이 매끈매끈 예쁜 생일사진.
오늘은 큰 마음먹고 조퇴를 하겠다고 했다. 항상 바쁜 우리 부서는 사실 내가 없어도 업무 자체에 큰 지장은 없지만 -_- 이렇게 묘하고 어중간한 중간관리자 역할이라해도 없으면 직원들과 과장님이 꽤 불편할 것을 알아서 위아래 눈치를 보다보니 연가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 아가 위해서 엄마가 일찍 가야지! 아무리 그래도 드레스에 왕관까지 쓰고 6시반까지 혼자 남겨지는 것은 너무하잖아! 하며 3시에 조퇴하겠다는 결재를 올렸지만, 결국 20분이나 지나서야 헉헉 대며 회사를 나와 관사로 달려가 옷을 갈아 입고 간식을 싸서 차를 가지고 어린이집으로 갔다
엄마, 내 생일이니까 우리 놀이터가서 놀다가 가자.
아무리 생일이라지만 너무 일찍 온 엄마가 어리둥절한 아이의 소박한 바람에.
아가! 우리 오늘 롯데월드 갈건데?!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에 연꽃처럼 활짝 피는 그 얼굴을, 찍어놨어야 하는 건데.
서투른 운전이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 관사에서 롯데월드는 넉넉잡아 차로 20분 거리라 멀지는 않지만, 이제 5달 된 초보에게 잠실 한복판의 복잡한 곳을 간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모험이다. 아이는 뒷좌석에 앉아 선물로 받은 슬라임을 하며 신이 났는데, 나는 그렇지가 않네..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덩달아 신나는 척을 하면, 나도 마치 괜찮은 것 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아이키우며 절실히 배웠다.
할 수 있어 해보자. 한번 해봐야 운전도 늘지. 늘 그랬듯 우리 하나님이 나랑 같이 가실거야.
일하는 틈틈이, 블로그로 검색해왔던 길을 따라 조심조심 가다가, 결국은 차선도 한번 잘못 들고, 주차장도 잘못 찾아갔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찾아들어와 앞뒤로 왔다갔다 하며 무사히 주차를 하고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려 아이 손을 잡고 들어가서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재밌는 놀이기구는 두번씩도 타며 회전목마로 마무리했던 오늘 하루.
잘 시간이 다가와 피곤해서 괜히 떼쓰는 아이를 뒷좌석에 앉히고, 어두워진 거리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를 차에서 내려 못 다 먹인 밥도 먹여야하고, 씻기고 재워 내일 또 출근하고 등원시킬 걱정이 태산이라도 그건 어쨌든 나중의 일이니 밀어두고, 캄캄한 밤 운전이지만 어쨌든 한번 왔던 길이라 긴장감이 한층 덜하니.
앞으로도 걱정되는 일 투성이라도, 대부분 겪었던 일일 거라 처음처럼 당황하지는 않을 거라고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