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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Sep 07. 2024

이혼일기(78)

양육권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도록 힘이 세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인간의 사랑은 얄팍하기 그지없다. 그저 순간과 찰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이상 인간의 어떤 사랑도 믿지 않는다.

 아이가 작았을 때.

내가 시험은 보고 발표는 나기 전이었으니 아마 18개월쯤 되었을 때 같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영 상태가 별로고, 콧물을 흘렸다. 엄청 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주말을 무사히 나려면, 비가 주룩주룩 오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집 앞의 소아과에 다녀와야 했다.

 그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나는 나설 준비를 한다. 밥을 먹겠다고 자리에 앉으면서 전혀 도와줄 생각은 없는 빈 말투로 비가 오는 데 아기를 어떻게 데려 가려느냐고 해서.

 그래도 가야지 어떡해. 유모차 태우면 얘는 비 안 맞을 수 있어. 가까우니까 갔다와야해.

 나서려는 나와 아기를 흘끗 보고 밥을 먹는다.

 그의 차는 항상 시댁에 대어져 있다. 차를 엄청 아껴서 비바람 맞는다고 지상에는 대지도 않는다. 지하주차장 널찍한 자리에 대놓고 필요한 때. - 아기를 데리고 시댁에 가야할 때. 에만 가서 가져온다. 그러니 시댁에 한번 가려면 차를 가지러간 그를 기다려야 하고, 시댁에서 돌아오면 시간에 관계없이 그는 차를 도로 갖다 놓으러 시댁에 간다. 가서 어머니 앞에 두고 맥주도 먹고 자기 마음대로 오면 아이를 재우는 것 까지도 아주 온전히 내 몫이다. 늘 그랬었지만.

 내가 전적으로 한다고 해도 아기를 돌보는 일은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재우려고 누웠을 때 갑자기 물이 필요하거나, 손수건이 필요할 때. 재우려고 틀어놓은 백색소음이 끊어졌거나 할 때, 아주 간단하지만 누군가가 있다면 정말 수월해지는, 그 알량한 일들 조차 할 사람이 없으니 그냥 혼자 다해야 한다. 재우려고 누웠다가 뭔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 일어나면 아이 재우기는 리셋이 되어,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


 그는 자신의 아내이자 그런 아이엄마를 도와야한다는 생각은 아주 없다. 아이를 재우고 일어나 이리저리 어지러진 집안 정리까지 해놓으면 그제야. 엄마랑 맥주마시고 만족스럽고 신나는 얼굴로 들어오곤 했다.

놀랍지도 않다.

 유모차의 레인커버를 꼭꼭 씌우고, 나는 윈드브레이커의 모자를 뒤집어 쓰고 달리듯 밀어 횡단보도를 건너 병원이 있는 건물의 엘레베이터를 잡고 유모차를 넣고, 병원이 있는 층에 도착해서 유모차를 빼고, 아이를 꺼내 안고 등으로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면서 아기를 안고 대기석에 앉아 꾸벅 꾸벅 졸았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졸 수 있어서 병원에 가는 게 반가울 때가 많았다. 항상 있는 일이다.

 약국으로 가서 약을 받고 다시 아이를 태우고 횡단보도를 건너 울퉁불퉁한 인도를 따라 집에 돌아오니 이미 비에 쫄딱 젖어 있다. 말발굽은 고장난 지 오래라 현관 문을 발로 잡고 유모차를 들이는 나에게 그는 애는 괜찮냐고 묻는다.

 아빠역할을 하려는 것이지. 지도 병원에 가는 데 전혀 돕지 않은 것이 민망하긴 한 것이다. 그러니 대단히 아이 걱정을 하고 있었던 듯 나를 보자마자

 00이는 괜찮대? 어떻대?

하고 다그치듯 묻는다.

..... 이럴 때는 말이야. 비를 맞고 아이를 데리고 다녀온 내 안부를 물어봐야 하는 거야. 그게 순서야. 애가 어디가 숨넘어가게 아픈 상황이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애를 우선적으로 챙기면, 그러는 나를 챙기는 게 인간적인 예의야.

 차가운 얼굴로 대답하고, 외면해 버린다. 이런 바른 말조차 고깝게 받아들일 것을 알고 있다. 더이상 상종하고 싶지 않다.
.
.
.
.
 육아에 정작 필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 라고 생각한다. 그저 인간에 대한 예의로 우리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유아기까지 아이들은 충분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게다가 내 핏줄이라니, 그저 보통의 예의만 가지고서도 희생과 헌신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다면, 아이에 대한 사랑은 이기심 앞에서 흩어져 버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부모의 사랑이라도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와 예의라는 받침이 없다면 공허하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저 애지중지하는 것 만으로는 책임질 수 없는 복잡하고도 묵직한 무게가 달린 문제이다. 달랑거리는 감정보다는, 어떤 일에든 변하지 않는 일관성 있는 바르고 성실한, 태도. 가 결국은 절실했다.

  아이가 자라며 가장 가까운 부모를 겪어내고 지켜보면서 세상에서 당연히 발휘해야할 배려를 익히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 부모가 아이에게 그런 흐름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육아" 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 따위 1도 없는 저 인간이 지금 나에게 양육권을 주장하고 있다니.

 내가 그의 육아휴직에 대해 분노할 때마다, 그는 그럼 아이를 본인에게 보내라는 헛소리를 한다.

 전혀, 포인트를 집지 못하는 것이다.

1. 육아휴직이 본인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2. 내가 그에게 분노하는 것은 아이키우기가 힘들어 짜증을 부린다고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덜 자란 인간성
3. 양육에 대한 기본적 이해. 곧 생生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는 저 오만함

 이제 만 5살이 안된 여자아이를 정말 본인이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일까.

 본인이 키울 수 있다면서,


왜 공연 데려가는 것도 키즈카페 가는 것도. 수영장 가는 것도 안하려고 하는 걸까. 그런 곳은 데려가지도 않고 그냥 먹이고 어린이집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에 그렇다면 호기심 많고 에너지 넘치는 우리 아이는 얼마나 불쌍한 생활을 하게 될까.

 이게 많이 바라는 것인가... 저 맥락없음에, 아무리 뜯어봐도 논리적이지 않음에. 치미는 화를 누르느라 기운을 다 써버린 하루.

 씨알도 안 먹힐 거야. 말도 안되는 소리야. 우리 아기는 나와 행복하게 살거야.

되뇌여 보지만, 새가슴인 나는 아직도.

그의 양육권 주장에. 그가 아이의 아빠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 주여. 근거없는 감정과 생각에 휘둘리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ㅡㅡㅡㅡㅡ

어제는 아이가 목욕하다가 뜬금없이.

엄마 아빠가 엄마는 일본말도 잘한대. 해봐. 

응?

그리고 엄마, 아빠는 키즈카페 갈 돈이 없대. 돈을 다 써버려서 키즈카페에 못 데려간대.

....응 그렇구나. 그럼 엄마랑 같이 가면 되지. 근데 아빠는 부자인데!

근데 돈이 없대.

응 그게 아빠는 부자이긴 한데 월급이 많지 않아서 그래. 

뭔가 제 장점을 아이에게 말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정말 돈이 없긴 없겠구나 싶어 조금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육아휴직하고 160만원 정도 나오면 50을 저에게 보내고 있으니까요. 그렇더라도 넉넉하진 않겠지만 맥주 한번 안마시면 아이 키즈카페 갈 돈은 생길텐데 말이죠.

 하지만 굳이 저런 이야기까지 아이에게 해야했을까... 하는 정말 이 자식을 어쩌면 좋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상처와 부족함 마저도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주실 거라 믿으며, 아이와 제 인생 모두. 예수님께 걸어봅니다.

 오늘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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