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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Aug 24. 2024

이혼일기(76)

개입

 이제 6살이 된 아이는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집에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자기도 어린이집 말고 키즈카페나 캠핑이나 어디 다른 데 좀 가고 싶다고 하면 출근해야하는 엄마는 매번 할 말이 없다. 항상 미안하고 항상 찜찜했다. 가끔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빠를 만나지 않는 토요일 엄마인 나와 새로운 장소에 가면 신나서 뛰어노는 아이를 보며 기쁘면서도 늘 속이 상했다.

 그리고 사실, 6살의 아이를 둔 엄마인 나도 그렇다. 이제 혼자서 무언가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몸에 배어버렸다.  집과 회사 말고, 우리 아가 손 잡고,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재밌는 곳, 새로운 곳에 데려가서, 좋아하는 모습을 며 함께 기쁘고 싶었다.

 요즘 서울형 키즈카페가 잘 되어 있다던데....요금도 공짜나 다름없고 가깝고 새로운 공간은 분명히 좋아할텐데... 평일은 퇴근하면 이미 끝나버려 갈 수가 없.

 어떻게 하면 데려갈 수 있을까.. 뒤통수에 밀어넣고 일주일 내내 방법을 찾다가

그럼 토요일에 아빠를 만나고, 그에게 조금 일찍 데려오라고 해서 내가 데려가야겠다.

무엇보다 내가 아이랑 같이 놀고 싶었다.  정신없는 현란한 배경의 한시간에 2만원짜리 키즈카페 말고, 이렇게 은은한 인테리어에 마음도 쉴 수 있는 아기자기하면서도 활동적인 공간에서 눈맞추며 함께 놀면 얼마나 좋을까.

 궁리를 하다 토요일 오후 5시 타임을 예약했다. 그가 아이를 데려오는 시간은 8시이지만 집에서 떠나려면 7시 조금 넘어 일 것이다. 가려는 키즈카페는 그의 집에서 5분 거리이니 고작 2시간 못 보는 것일테고, 정해진 일정을 바꾸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인데, 그 몇시간이 굳이 안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목요일, 그 주 토요일에 아이를 만나겠다는 그의 문자에. 이번 주는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하는 키즈카페가 있는데, 평일이 시간이 안되어 토요일에 데려가려고 하니  오후 5시까지 그의 집 근처 육아종합지원센터로 아이를 데려다달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그랬더니 오는 답문자가,

 그래 알겠어. 일단 이번엔 데리고 갈게. 그런데 이제 더이상 내 면접교섭권에 개입하지 말아주면 좋겠어.

 얘 또 뭐래냐.. 지금...?

... 키즈카페는 내가 데려갈거야. 넌 그 시간까지 거기로 데려다만 주면 돼.

- .. 알겠어. 이따봐.

 한참 후에야 저런 문자가 온 것을 보니, 본인보고 데리고 가서 놀게 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본인이 데리고 가는 것은 싫다는 말이지...

 그래 내가 인간적으로 그건 이해해줄게. 하지만 한참동안 화가 가라앉지를 않는다. 이 자식에게 어떤 날선 말을 어떤 잔인한 방식으로 할까.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 면접교섭권에, '개입'이라.

 솔직히 지난번, 아이에게 키즈카페를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내심 안심을 했었다. 그래 너도 아빠니까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려고 그래도 애는 쓰는 구나. 정말 다행이다. 그 정도라도 정말 다행이지.

 하지만 기대는 역시나처럼 무참히 무너졌고, 그 이후로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기로 마음 먹었었다.

 아마 첫 시작은 공연이었을 것이다. 작년 5월, 나와 아이가 자주 가던 목동 공연장에서 유아극이 있었고, 그 공연을 미리 예매해놨다가 아이 아빠에게 데려가라고 했다.

 평일에는 출근을 하고 토요일마다 아이가 아빠에게 가니 도무지 무슨 특별한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런 것 없이 그냥 너 알아서 데리고 있으라고 하기엔, 매번 고급 아파트라고 자랑했던 시댁에나 데려가서 뭉갤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손자가 아니므로 솔직히 그 할머니는 특별히 쟤가 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의 말을 모두 믿는 것는 아니지만, 눈치가 빤한 아이는. 할머니가 자기를 보고 에이 귀찮아! 했다는 류의 말을 가끔 전하기도 했다.

 아빠와 있을 때 아이는 어떻게든 잘 있을 것이고 일정을 만드는 것은 니 욕심이라고 지적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핏줄이라 아이는 맡기겠으나, 여분의 영역에서  아이가 우선이 아니라 본인이 우선인 사람임이 여러가지로 증명된 이상. 엄마로서 그 정도 욕심은 부려야 하고 또 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나에게 고맙다고까지 했다. 그는 아이와 그런 여가를 보낸 적이 없고, 또 그런 공연을 알아볼 주제도 되지 않으니. 그리고 그 때에는 어떻게든 이혼을 엎고 예전처럼 돌아가겠다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라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아니었겠지.

 익숙치 않은 길을 아이를 데리고 가는 걱 부터가 험난했을 것이고, 늘 시간 약속에 늦는 그 성향에 또 공연이 시작하고서야 들어갔으니- 아이가 이야기해주었다. 초조하기도 했을 것이다.

 여자아이니 화장실 문제도 있고, 본인이 더위를 타니 5월의 한낮은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아이의 기호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지. 아빠면 그래도 해야하는 일이지. 50이 다된 성인이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다. 그 모자라는 인격에 성질이 몹시 났을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전처럼 만만했다면 짜증이라도 쏟아냈을 텐데, 이제는 그럴 대상이 없으니 얼마나 죽을 맛이었을까.  

 상관없다. 나는 우리 아기만 공연을 즐길 수 있으면 된다. 지금은 소송 중이고, 아이는 몹시 예뻐하므로 여러가지가 본인에 불리해질까봐 애한테까지 성질 부릴 수는 없는 상황이니,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두번째로  공연을 예매했으니 보러가라는 말에는, 가기 싫다고는 못하고 아이가 엄마랑 보고 싶을 거라는 둥, 엄마없이 있는 아이가 안쓰럽다는 둥- 아내없이 있는 니가 안쓰럽겠지. 그냥 싫다고 하는 것이 재판에 불리할까봐 둘러대는 소리였을 것이다.   이상한 변명과 핑계를 줄줄 대더니만

 결국은 저러고 면접교섭권에 개입이니 어쩌니 하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가져와서 또 자기합리화를 한다.

 그냥 솔직히 힘들었다고 말해. 아직은 혼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미숙하다고 말해. 그럼 이해는 할 수 있다. 내가 이제까지 그 정도의 인간적인 아량이 없었다면 너 같은 거와 같이 살지도 않았을거야.

 바로 이런 점이. 늘 본인에게 유리한 로직을 만들어내고 갖다 붙이며 끊임없이 나는 맞고 나는 잘났고; 우겨대는 그 모습이 이혼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자기합리화가 배어있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다. 한순간도 함께 공유할 수가 없는 부류. 라고 생각한다.

여름.

유난히 덥고 습하고 힘든 여름.


모두가 그렇듯 물놀이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있지 못하고 또 아빠에게 보낸 토요일, 그의 집에서 걸어서 가는 정말 가까운 곳에 임시 수영장이 열렸다는 소식을 보고.

 또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문자를 보낸다.

나라면, 오랜만에 보는 딸. 근처 마트에서 수영복 사 입혀서 여기에 갈 거야. 물놀이 너무 좋아해 항상 하고 싶어해. 나랑만 가서 아빠랑 가는 건 다를거야.

너 수영 잘한다며 개새끼야. 하나도 잘하지도 못하더만 암튼 너는 니가 잘한다고 생각하잖아. 근데 애기데리고 수영장 갈 생각을 한번을 못하면서 그것도 아빠라도 생각하냐. 

차마 쓰지 못하는 화를 참고

내가 평일에 일하느라 애기데리고 수영장을 못가. 휴일마다 최대한 가려고 하지만 체력이 딸려. 너 놀잖아. 애도 안 보면서 육아휴직하고 놀잖아! 게다가 집 근처잖아 멀리 가라는 것도 아니잖아!!!!! 일단 마트 가봐 수영복 얼마 안해!!! 

혹여라도 양육권에 영향을 미칠까봐 일하느라 아이에게 뭘 못 해줬다는 미안함과 안타까움도 입술 안에서만 씹어 삼키고.

최대한 신사적으로 보냈는데.

역시나 끈끈하게 땀에 절은 상태로 돌아온 우리 아가는.

엄마 거기 수영장이 있던데 되게 재밌게 생겼드라.


-.... 그럼, 아빠한테 좀 가자고 하지 그랬어..

 

멀컹거리는 목안의 무엇을 삼키며 어렵게 꺼낸 말에 아이는 무심한 듯 대답한다.


아빠는 못 간데.

- 응 그랬구나. 우리 아가. 아빠는 아직 우리 아가 데리고 어디 가시는 게 쉽지가 않대. 그럴 수 있잖아. 그러니까 엄마랑 다른 곳 가자. 알았지?

꾹꾹. 내 가슴, 우리 아가 가슴. 더는 해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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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면. 그의 저딴 모습을 안 겪어도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이가 있으니 결국은 평생 마주해야 하는 문제 같습니다.

사실 저런 일정을 넣는 것은 2달에 한번 꼴이 될까말까에요. 거의 매번의 토요일은 그대로 둡니다. 그리고, 그가 육아휴직 중이 아니라면, 양육권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저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특별한 개념정의는 없지만 면접교섭권의 "개입" 이라는 것은 수시로 면접교섭 중에 아이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어디냐 아빠는 뭐하냐 물어보는 것 같이, 아이의 복리를 해치는 것이 주로 나와요.

 매주 이러지 않아요. 그리고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고 그냥 둘이 싸웁니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을테니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그만이지 어쩌겠어요.


하지만 애 없이 육아휴직하는 주제에. 해본 적도 없는 육아를 할 수 있다모 양육권을 주장하는 주제에.


공연가고 키즈카페 데려가라는 소리에 개입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의 입장에선 일주일에 한번 아이를 보는 것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선 매 토요일을 자신을 이뻐하지도 않는 할머니네 가서 말도 안되는 장난감 늘어놓고 있다 계란찜에 비빈 밥  먹고 오는 꼴이에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정리가 되겠죠. 어떻게든 면접교섭도 2주에 한번으로 줄이고. 아이에 대한 것도 어떻게든 정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솔직히 별다른 수가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보이지 않는 우리 주님이 보이는 세계를 쥐고 계시다는 것. 잘 알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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