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함께 참석한 두번째 조정기일에서 상담결정을 받았을 때. 전철역까지 걸어오며 변호사님은 기운이 빠진 듯 이야기했었다.
- 이렇게 부부상담을 하라는 경우가 많지는 않아요. 근데 하게 되면 대부분 소를 취하하시죠. 근데 또 안타까운 것은 그런 분들 중 90프로가 다시 찾아오세요. 이게 한번 불거진 갈등이 봉합되기란 쉽지가 않은 거거든요. 우리 법원은 왜 이렇게 이혼을 안해주려 하는 지 정말 이해가 안가요.
하지만 법원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상담 결정은 넋놓고 있다가 한대 얻어 맞은 듯 기분이 몹시 나쁘고 충격이 컸지만, 가정이 깨지는 것은 최대한 막아보는 것이 최소한의 법관의 양심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우리는 둘다 바람이나 도박이나 학대 등의 민법 840조의 명백한 이혼 사유가 없는 케이스이기도 하다.
더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을 벌이고 있지만 공존할 수 없음의 이유는 어디까지나 도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만약에, 만약에 시험에 붙지 못해서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냥 참고 살았겠지..
아마 그도 내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 더 함부로 대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개씩 내 자존감이라는 벽돌을 부수며 살다가,
더이상 파고 들어갈 땅 조차 없을 때에 다다라서 무슨 일이 터졌을 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보면, 법원입장에서는 이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이혼 전문 변호사들이 제일 밉상일 것이다. 세상의 가정을 해체시키고 돈을 벌며 자신들의 업무를 과중시킨다. 그 중엔 현저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부부의 일방을 돕는 정의로운 상황도 있겠지만 나처럼 애매한 경우도 수도 없겠지.
판사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웬만하면, 그 정도는 그냥 참고 같이 살지....? 하는 사례들 말이다.
만약 상담에서 이혼 의사가 철회된다면, 그건 애초에 될 수 없는 이혼일거야. 라고 결과론적 사고를 하면서도. 그게 내 경우에 해당된다면? 하는 질문에는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이혼 결심을 하고 있을 때에 누군가가 소송을 제기하면 남편들이 잘못을 깨닫고 달라져서 다시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솔깃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도를 가지고는 이혼을 시작할 수 없다.
그 정도의 목적으로는 실행할 수 없는 것이. 이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상대를 보아도 별달리 화도 안내고 아무 감정도 생기지 않고 그저 쟤를 내 인생에서 치워주었으면 하는 생각만 들 때 즈음에야 드디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소송이었다.
변호사의 말을 들으며, 나도 만약에 8회기의 상담이 끝날 즈음. 소를 취하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그러면 일단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멋쩍은 어투로 미안하다는 말을 할 것이고 우리 아가를 데리고 다시 신혼집이 있는 동네에 들어가서 살게 되려나.
2) 무엇보다 우리 아기가 좋아할까.
3) 그런데 내 회사는 어떻게 하나.
과연 쟤가 아이를 전담해서 보기나 할까. 발령이 나면 발령 나는 대로 순순히 따라다닐 사람도 아니고. 열등감을 지울 수 있는 사람도 절대 아니다.
분명 애 앞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싸우게 되겠지.
4) 아.. 그 정떨어지는 시댁과는 또 왕래를 하게 되는 건가. 어머님 이모님은 어떤 얼굴로 나를 볼까. 본인들이 양육권 가져오겠다고 빨간 입술로 아이를 보며 억지 웃음을 짓는 그 사진이 눈에 떠나지를 않는데.
5) 무엇보다 나는 주일마다 예배를 가야하는데 그거 순순히 좋은 마음으로 보내줄까. 아이도 같이 가야하는데 또 매번 으르렁댈 것이 뻔하다. 같이 있을 때 너무 핍박이 신해 나는 찬양도 흥얼거리지도 못하고 하다못해 cbs도 틀지 못했다.
소송의 막바지까지 왔는데도 여전히 망설이는 마음이 있다. 비율이 처음보다 훨씬 줄어든긴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 이혼은 무섭지만, 저 사람과 같이 사는 건 끔찍하다. * 압록강을 건너는 것은 무섭지만, 북한땅에 사는 것은 끔찍하다. * 치과는 무섭지만 치통을 견디는 것은 끔찍하다. * 운전은 무섭지만 장농면허로 사는 것은 끔찍하다..
인생의 수 많은 모순적이고 어려운 순간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이상한 게 아냐... . . . . - 상담사 : 아내분이 실업급여 부정수급으로 남편을 신고했다고 하던데요..?
나: ...?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남편: 만약 정말 정말 아내가 그런 게 아니라면 제가 사죄할게요.
나 :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구요. 지금 본인이 걸린 걸 제가 했다고 하는 거에요?
남편: 아니라면 정말 미안하고 제가 사죄합니다.
나 : 사죄 같은 거 안받아요! 필요 없다구! 지금 니 인생 그렇게 망가진 게 또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구나?
- 상담사 : 남편분 이야기해보세요. 아내가 신고했다고 저한테 말 하셨잖아요? 그게 그냥 추측이었어요?
남편 : 아니라면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사죄한다구요.
나 : 선생님. 저는 항상 이런 경계를 받으며 지냈어요. 제가 뭘 잘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못살게 굴어요.
아니 내가 신고했다고까지 생각하면서 나랑 왜 살아? 왜 나랑 살으려고 해? 그러면서 이혼은 왜 안한대? 내 월급 아까워서 그러지. 어디가서 나같은 애 못 만날 것 같으니 이제 와서 억지 부리는 거잖아?
1) 남편 : 정말 아니에요.. 저는 정말 아내가 잘되도록 응원했어요.
나 : 저사람 저렇게 말하는 데요 선생님. 저는 제가 차려준 아침 밥상 앞에 앉아서도 뜬금없이 우리 어머니 아니었음 너는 결혼도 못했어 라는 말을 수시로 듣고 살았어요.
- 상담사 : .. 남편분, 정말 그런 말을 했나요?
2) 남편 : 선생님. 저희가 산 세월이 5년입니다. 그 동안 별말이 다 나왔을 거에요. 그 정도 말도 못하나요.
- 상담사 : 네 하면 안되죠. 그런 말은 하면 안되는 말이에요.
남편분 의사소통 방법이 정말 잘못되었어요. 이런 상황이면 내가 그런 말을 해서 니가 마음이 다쳤다면 정말 미안하다. 사과할게.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같이 오래 살다보니 실수한 거야. 라고 설명을 해야하는 거지. 이렇게 당당할 일이 절대 아니에요.
답답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와는 도대체 대화가 불가능하다. 너무 다행인 건 상담사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1) 포인트와 같이 본인에게 조금만 불리한 이야기가 나오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내가 물어본 것은 왜 이혼을 안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본인을 신고해서 인생을 망쳤다면 그 부부는 이미 끝난 것 아닌가. 근데 왜 굳이 그녀와 살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건가.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질문이면 솔직히 사과를 하던가 본인의 잘못을 시인해야 하는데 절대 그러지 않고 화제를 날 열심히 응원했다는 것으로 돌린다.
2) 부부 간이니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저 뻔뻔함. 해야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의 기준은 모두 본인 생각이다. 부부간에도 지켜야할 선이 있는 것. 그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극도의 이기심.
오랜만이다. 정말 맞아 그와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지.
화요일 점심마다 점심도 못먹고 나와 택시를 타고 다시 헐레벌떡 회사로 들어가며 상담받은 가치가 있다.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