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을 시작하고, 제일 마음에 드는 기간은 명절이다. 손빠르고 싹싹하게 돌아다니던 - 자랑같아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며느리가 없으니 얼마나 죽을 맛일까.
만약에 이혼을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그 집에 있었다면, 아마 전처럼 그들이 나를 부려먹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날마다 그는 또 나를 엄청 경계하며 몰아세웠겠지. 얘가 고시붙었다고 잰 체 하면 어쩌나, 우리 가족을 무시하면 어떡하나. 발톱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는 초라한 고양이들을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니 정말 기쁜 일이다.
명절 음식 만들기는 힘들지 않았다. 그냥 둘러 앉아 음식을 하는 그 시스템 자체가 나와는 아주 잘 맞는 것 같다. 스스로가 항상 쓸데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밥값을 하고, 사람 몫을 하는 것 같아 만족스럽기도 했다. 워낙 뭐라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무튼 덮어놓고 그것이 도둑질이라도 즐거워하는 성향이다.
하지만 제기에 음식을 담고 상위에 올리는 일을 하는 것은. 혼란스러웠다. 이건 하기 싫은 게 절대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근원적인 죄책감.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내가 이래도 되나.. 어릴 적부터 다닌 교회에서는 절하지 말라고 들었는데. 제사 지내고 차례지내는 것 다 부질없다고 배웠는데 이래도 되나.
기존에 박힌 관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누구나 겪을 어찌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혼란이었을 것이다.
이런 혼란 정도를 남편에게 털어놓고 위로나 이해를 받을 수 있는 관계였다면 애초에 혼란스럽지도 않았겠지.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그저 마음이 이상하고 불편하다는 것 조차. 그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입을 꾹 다물고 그 시간들을 견뎠다.
반들반들한,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제기 위에 위태롭게 높게 담긴 음식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다니면서.
내가 언제까지 이 집에서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실 그런 생각은 회사에서도 똑같이 한다.
영 모르겠는 일들을 눈치로 배우고, 규정집을 찾아보고, 상사에게 혼도 나고 직원분들에게 대놓고 물어보기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중인데, 아이는 열이 난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는 날.
병원에 급히 데려가니 폐렴이라고 어린이집을 쉬고 데리고 있으라는데, 도대체 연가를 낼 수 없는 빡빡한 상황일 때. 다음 주면 연휴라서 괜찮은데 왜 하필 연휴 전주에 아이가 아픈 것일까....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넋두리만 나오는 때.
내가 언제까지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이제 초등학교도 가고 방학도 있을 텐데, 그 시간들을 내가 일하면서 지날 수 있을까.
나는 결국 그 집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왔는데, 직장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직장을 못 다니면 나는 우리 아기랑 어떻게 살지. 휴직하면 관사도 나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그럼 아이를 결국 아빠에게 보내야 할까. 그럼 나는 어떻게 살지.
어느새 형체와 크기를 가늠도 할 수 없는 불안감이 넘실거릴 때면 고개를 세게 흔들며 정신을 차린다.
나중의 것은 나중에. 지금은 눈 앞에 것만 생각하자.
열에 들떠 기운 없는 아이를 씻겨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그나마 좀 먹는다는 과일 몇쪽을 입에 넣어주고, 약을 먹인다. 밤 새 아이의 열을 재고 잘자리가 편안한 지 살피고, 어디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도 나는 아이의 따끈따끈한 발가락을 놓지 못했다.
괜찮다. 괜찮다. 지금 어쨌든 우리 아가가 내 옆에 있잖아 정말,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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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옷을 입힌 아이를 안고 마을버스 계단을 조심히 내린다. 입김을 낼 용기도 나지 않도록 몹시 추운 날,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 마을버스에서 내렸으니 이제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다 끝났다. 또 괜찮아 괜찮아 마음 속 혼잣말로 불안을 내어 쫓으며 모자를 벗겨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려는데.
아무리 헤쳐봐도 우리 아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졸음에 겨워 감겨가는 눈을 분명히 보았었는데. 그 보들보들하고 윤이 나는 볼을 쓰다듬었는데.
어디 갔지. 어디 간거지. 내가 우리 아가를 어디에 흘리고 옷만 데려왔구나. 큰일 났네. 어디에 흘렸지. 우리 아가가 엄마를 찾을 텐데. 무서워할텐데 이를 어쩌지. 어떡하지. 어쩌면 좋지.
피가 줄줄 새어나가는 손을 모자속으로 끝도 없이 집어넣다가.
있는 힘껏 질러도 나오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니
집이다.
지난 주 아이는 아파서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본인도 엄마랑 놀고 싶다길래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었다.
폐렴이라는 아이의 진단서를 회사에 내며 몇번이고 아쉬운 소리를 했고, 그래도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 누더기같이 잠깐씩 출근을 하며 한주를 보내고 나니 나도 옮은 듯 온 몸이 아팠다.
오늘은 토요일, 아이를 2주만에 아빠에게 보내고 어디서 쉬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내가 꾸민 내 공간인 2시간 거리의 관사로 애써 와서는, 청소와 정리를 마치고 잠이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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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친정부모님께 부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회복되었고, 무엇보다 나는 운전을 하니 더이상 덜덜 떨며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오르고 내리지 않아도 된다.
추운 날 이렇게 험하게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가 앓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걱정하던 날들이 있었다. 아무리 슬퍼도 우리 아가 앞에서 울지 말아야지.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아이를 안고 거리에 앉은 노숙자처럼, 남편도 부모도 없이 혼자 남았다는 비참함을 지우고, 힘들게 관사로 돌아온 역시 추운 주일.
이제야 잠에서 깨어 놀이터 가서 놀고 싶다는 말에 또 그래그래.. 하고 데려갔었다.
시소를 태워 반대쪽에서 마구 흔들어주니 함박만하게 입을 벌려 소리를 내며 웃는다. 그 얼굴을 계속 보고 싶어서. 일부러 웃긴 표정과 소리를 내며 시소를 흔들어주며 마스크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삼키던 때가 있었다.
새로 발령이 나면 또 자리를 옮겨야 하는데, 공들여 편안히 쉴 수 있게 꾸민 이 집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가야할텐데. 그 때는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