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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보도 지적하다 ‘인권침해 방지법’ 만들자고?

한겨레 2024. 1. 5. 보도를 보고

5일 아침 한겨레에 <사실상 사문화된 피의사실 공표죄/“인권침해 방지법 시급” 주장 나와>라는 기사가 실렸다. 민주당의 어떤 의원이 그런 주장을 했다고 한다. 피의사실 공표죄 기소가 1995년 이후 한 건도 없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면서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란다. 피의사실 공표죄와 검찰과 경찰의 각종 훈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더 강제성과 실효성 있는 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지난 2일 ‘이선균 재발 방지를 위한 긴급토론회’가 열렸고, 거기서도 이런 주장이 나온 모양이다. 민주당 인권위원회가 인권연대와 공동 주최한 토론회라고 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변호사가 피의사실 공표죄가 사문화됐으므로 범죄 구성 요건을 강화한 수사기관 인권침해 방지법을 만들어 다른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그는 ‘피의사실’만이 아니라 ‘내사 범죄 의혹 정부와 피의사실과 무관하더라도 수사 과정에서 취득한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수사 정보나 자료’로 범위를 넓히고, ‘공표’가 아니라 ‘유출’도 형사처벌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고 이선균 씨에 대한 언론 보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이미 충분히 지적되고 있으니 더 말을 얹지 않겠다. 이 문제를 이미 지난달 초에 한 칼럼에서 지적한 적도 있고, 최근에도 몇몇 기사에서 코멘트가 인용된 적도 있다. 언론 보도의 이런 문제가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고, 계속 문제 제기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때다 하고 무슨 법을 만들어서 수사 정보가 보도되는 것 자체를 막아버리겠다는 식의 접근법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쉬운 정도를 넘어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피의사실공표죄라는 것이 왜 사실상 사문화되었는지에, 우리 사회가 피의사실공표 문제를 얼마나 이중적으로 다루고 있는지 등등을 좀 되돌아보고 이런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피의사실공표죄의 입법 배경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언론 윤리의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이제 좀 자제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보는 것에 어떤 큰 음모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신문 칼럼도 봤는데, 이렇게 그때그때 시류를 타는 주장만 해서는 곤란하다. 얼굴을 드러내고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백 퍼센트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연예인이 왜 공인이냐는 주장은 또 너무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 먹고 몇몇 언론사 홈페이지 검색해보면 고 이선균 씨 사건 초기부터 적잖은 기사를 양산했는데, 지금 목소리 높이는 신문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 앞으로는 연예인 관련 수사는 보도하지 않을 건가? 그럴 리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연예인 관련 수사도 정당한 공적 관심사니까. 핵심은 너무 분위기 타고 달려가지 말고, 쉽게 사실인 것처럼 쓰지 말고, 정말 혐의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당사자 반론도 충실히 반영해서 쓰고. 수사기관이 흘리더라도 의심의 눈초리로 차곡차곡 따져가며 써야 한다는 것인데. 사건 터지고 분위기 안 좋아지면 ‘이때다’ 하고 나서서 수사 보도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를 끌고 가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면서도 내가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미주알고주알 보도해도 아무 상관없고, 연예인 수사도 막상 극단적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그저 호기심 거리로 열심히 소비해 조회수 올려주고... 이런 선택적 소비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의 주장을 진지한 대책인 것처럼 다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있는 법 조항은 왜 작동하지 않는지, 그렇게 강화해놓은 인권관련 준칙은 왜 효과가 없는지도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처벌 조항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자는 것이 얼마나 현실성 있는 이야기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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