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수업 첫날

by 모래알

10여 분 언덕을 걸어 올라가면 후암동 108 계단의 시작점 한편에 자리한 스토리지북앤필름 서점을 만날 수 있다.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작은 서점 한가운데 커다란 책상이 놓여있었다. 수업 첫날은 총인원 8명 중 6명만 참석하였다. 첫 만남이라 낯설고 수줍은 기운이 가득했다. 마이크 님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수업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먼저 진행되었다. 다양한 이유로 책을 만들고 싶어 했고 만들고 싶은 책들도 제각각 달랐다. 에세이집, 사진 동화집, 드로잉이 있는 여행책, 나는 물론 시집이다. 연령대도 제각각이고 직업도 각양각색이지만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 하나는 같았다. 모두 눈빛이 반짝거린달까.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낯설어도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2026년 1월 (신정을 제외하고 워킹 날 기준) 첫 번째 목요일, <6주 나만의 책 만들기> 수업 첫날이었다. 많은 처음이 모인 날, 찾아가는 낯선 길에서 혹시라도 헤매게 될까 봐 모든 것들이 삐죽삐죽 곤두선 예민한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해가 져서 어둑해진 언덕길을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고개를 들어 언덕 위를 바라보니 남산타워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푸른 밤하늘 위로 남산타워가 반짝이는 언덕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멋있는 도시의 풍광이겠지만 나에게는 처음의 설렘과 이후의 좋은 기억들이 덧칠돼서 더 아름다운 길로 기억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이크님이 독립출판을 진행할 때의 조언을 하나씩 들려주었다. 책 한 권에 너무 많을 힘을 쏟지 말라고,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여력을 남겨둬야만 계속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맞아, 때론 적당히도 필요한 법이다. 그 외의 내지, 판형, 오프셋 등의 인쇄 용어들은 첫날은 스쳐 지나가는 단어들이었고 이후 인디자인과 샘플북 제작을 하면서 익숙해지게 되었다. 또 좋았던 이야기는 굳이 대상층을 정하고 기획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말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주었다. 세상 어딘가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좋아서 만든 책을 좋아해 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해주었다. 그런 자유로운 부분이 좋았다. 틀에 갇혀있지 않은 자유로움. 그것이 진정한 독립출판의 의미로 느껴졌다.


이후 독립출판 수업을 들은 선배들이 출판한 책들을 소개받았고,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형식의 책들을 보았다. 나는 사실 독립출판의 자유로움보다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진행한다는 부분이 끌려서 온 사람이라서, 자유롭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생각했는데 내 맘대로 할 수있다라. 첫 번째 독립출판을 경험하면서 나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틀에 갇혀있는지 새삼 느꼈다.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자부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오판이었는지 책을 만들면서 쉴 새 없이 체감했다. 두 번째 책은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하나의 숙제이다. 하나의 책을 완성하고 다시 두 번째 책을 고민하기 시작한 걸 보면 반은 성공이지 싶다. 결국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드는 거니까.



이전 02화글감 모으기 2년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