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항상 힘들다(feat. 책표지)

by 모래알


두 번째 수업은 인디자인 강의였다. 인디자인은 Adobe 사에서 만든 툴 이름이다. 물론 무조건 인디자인을 쓸 필요는 없다. 워드나 한글 등 다른 편집 툴을 사용해도 괜찮고 실제로 워드로만 책을 만드는 작가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디자인이 책 편집용으로는 확실히 장점이 많다. 이미지를 끼워 넣는 것도 편하고, 툴 자체가 책을 만드는 작업에 최적화되어 있다. 인디자인 강의를 듣고 나서의 숙제는 출판할 책을 표지와 내지 모두 완성해서 일주일 만에 pdf 파일을 제출하는 거였다. 이때부터 시간이 갑자기 부족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툴을 사용해야 했고, 표지디자인까지 같이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책은 내용물이 더 중요한 법이지만 이미 모든 시가 완성된 상태라서 내지 편집의 고민은 폰트와 여백 정도였다. 표지 디자인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들이부은 시간과 상관없이 결과물은 영 조악했다. 꽃 하나를 그린 결과물은 유치원생의 낙서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그대로 구현할 수 없는 능력의 한계만 확실하게 깨달았다. 사실 독립 출판 수업을 들으면 디자인 수업도 같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표지디자인을 할 수 있는 툴을 익히는 것이지 결국 창작의 작업은 온전히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겨우 하나의 표지를 완성했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자유롭게 책을 만든다는 것은 모든 선택의 주체가 나라는 것이다. 모두 다 내가 정한다는 것이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인데 실상은 모든 걱정을 껴안고 있는 것 같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가 자꾸 눈에 밟힌다. 이게 더 괜찮지 않았나 계속 되묻게 된다. 책을 만드는데 총 3번의 샘플북을 만들었다. 별도로 진행한 표지 인쇄까지 고려하면 총 9개의 표지 본을 만들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많은 샘플북을 만들었는데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최종본은 맨 처음 진행한 것이었다. 돌고 돌아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최초 버전으로 인쇄를 진행했는데도 다른 표지들이 계속 눈에 아른거리긴 했다.


독립출판은 매 순간순간 선택의 갈림길을 만난다. 표지의 디자인을 선택하고, 폰트를 결정해야 하고, 글자의 크기, 글자 간격, 행의 간격, 좌우 위아래 여백 크기, 물론 책의 크기도 직접 정해야 한다. 확고한 자기만의 취향이 없다면 선택은 꽤나 고민스러운 과정이다. 나는 폰트나 여백, 글자 크기, 책 크기 이런 것들은 쉽게 결정할 수 있었는데 반해, 표지 디자인 선택이 가장 어려웠다. 표지가 하나의 창작물적인 작업이어서도 그렇고, 또 내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걸 완벽하게 구현할 능력이 없어서 더 그랬다. 게다가 주변의 입김이 제법 크게 와닿는 게 문제이다. 다들 던져대는 한마디에 점점 더 갈팡질팡, 어느새 내 취향은 사라지는 거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인생과 흡사하다. 정작 나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모르고 산다. 이런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라도 요즘 시대에 그런 건 어울리지 않아 라거나 돈을 벌 수 없는 일이라거나 지금 인기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세상의 충고에 어느새 마음을 접는다. 사실 그 마음이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기억조차 잊어버리고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뭔가 항상 마음이 공허하다고 느끼면서 그렇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떠올리는 것이다. 아, 나는 그걸 하고 싶었었다고. 첫 번째 책을 우여곡절 끝에 인쇄하게 된 나는 두 번째 책은 무조건 맨 처음 맘에 든 버전으로 선택해서 진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 선택이 내 취향인 것이다. 온전히 내 맘대로 만들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독립 출판의 진정한 묘미이다. 인생도 그렇게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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