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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글이 Aug 11. 2024

퇴사를 앞두고 8 - 돌아가기로 결심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다. 많은 이들의 인생 책이라 불리는 책.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자기계발서의 뜬구름 잡는 느낌이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생생한 목격담과 진술에 가까운 내용이라 더 설득력이 있었다.


수용소라는 환경. 언제 나갈 지 기약도 없고, 나갈 수 있을 지도 미지수인 그 곳에서 무슨 희망이 있겠냐 싶지만, 그 안에서도 살아남은 자가 있고, 절망으로 죽음에 이른 자도 있다.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나의 자유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수용소 안에서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쓰기 위해 틈틈히 원고 작업을 해왔다. 그 이유 역시, 그가 살아남아 수용소를 나가야만 하는 간절한 이유였을 것이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이 느끼는 절망감은 몸의 면역체계도 약화시켰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삶에 있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 아직 완수하지 못한 일, 이루지 못한 꿈 등등.. 그런 희망이 우리를 살게 하고, 시련을 견뎌내게 하는 이유가 된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부인때문에 괴로워하는 환자에게 그는 묻는다. 만약 부인이 먼저 죽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배우자를 먼저 보낸 그 어마어마한 고통을 자신이 부인 대신 겪는 것이라 생각하면 지금의 시련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왜 살아야 하는 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이 가슴 깊이 들어온다. 살아가는 이유, 존재 이유는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 스스로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에 자주 등장하는.. 소명을 발견하라는 말도 그런 뜻일 것이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문장. 내가 삶에 기대하는 것 말고, 삶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떠오른다. 삶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이 세상에 왜 존재할까와 맥을 같이 하는 말일 테다.


저자는 시련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필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피할 수 없는 시련일 경우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영웅적인 모습이 아닐, 자기 학대에 불과하다.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인상깊었다.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진정한 의미는 인간 내면이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자기 실현이라는 것은 시선이 나의 내면으로만 향해있을 때가 아니라, 나를 초월할수록 달성하기 쉬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바닷가를 거닐며 파도를 보며 생각했었다. 내 인생의 파도가 오지 않기를 바랐던 지난 날들과 달리, 앞으로는 파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보겠노라 다짐한 후에 읽은 책이라 울림이 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도 세상과 함께일 때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일을 한다는 것. 그동안은 돈을 버는 것에 비중을 크게 두어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돈을 벌지 않고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면에는 스트레스를 안받으며 편하게 살고싶은 마음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에는 직장을 그만둘 명분이 없어 괴로웠다. 싫고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도망치기는 싫었으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할 때 신이나고 잘하는 사람인지 알게되면서 삶의 해답을 다 얻은 것 같았고, 아주 그럴싸한 이유로 당당하게 퇴사를 해도 되겠다 싶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님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마치 정반합처럼, 양쪽 극단으로 생각이 왔다갔다 하다가 둘의 합을 이루어내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게 다가오는 하루하루의 파도를 맞는 과정에서 나의 소명을 실현해내는 것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도가 내게 위협적인 상황이라면 피하는 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그리고 일 전에 나는 그 파도를 한 번 피했다.


쉬는 시간을 가지며 마음이 전보다는 단단해진 것을 느낀다. 모든 파도가 나를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파도 앞에 발을 내딛어볼 용기도 조금 생겨났다.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파도의 가능성까지 차단하며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말은 반쪽짜리 나로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상 속에서 함께 하면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 있는 일들을 해나가며 나의 잠재능력을 하나씩 끄집어 내보자. 그 것이 진짜 나로써 살아가고 또 성장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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