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vs 영어 vs 폴란드어
중학교 시절부터 직장인이 되어 사내 어학 점수 관리까지, 10년을 넘게 공부한 영어를 써먹어본 적이 없는 나였다. 어학연수 따윈 집이 좀 여유 있는 친구들에게나 가능한 것이었고, 영어 울렁증 때문에 해외여행도 남편에 의지한 채 Hello!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당황하는 것이 바로 나였다.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것은 지나친 교육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자식들마저 나처럼 영어울렁증을 겪게 하고 싶진 않았기에, 남들보다 훨씬 늦은 초등 3학년 때 첫 영어학원을 고를 때에도 단 한 가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외국인 원어민 선생님 수업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영유를 거친 친구들이 영어 스피치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올 때, 그 유명한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에 보내지 않은 나의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주재원을 앞두고 걱정과 불안이 앞서는 건 당연했고, 부랴부랴 아이들에게 필리핀 선생님과 화상 영어 수업을 세팅해 주면서 나도 화상 영어를 시작했다. 두려움이 앞서는 마음을 누르는 데 1주, 2주가 지나가면서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저지르고 보자는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고, 첫 수업의 긴장은 내 이마를 땀으로 흠뻑 적셨다. 그런데 매일 20분의 영어 수업이 3주쯤 되자, 마구 잡이 단어 나열 수준인 나의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응수해 주는 스무 살이나 어린 필리핀 영어 선생님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출국까지 4개월 간의 화상 영어로 '내뱉을 용기'만 얻자는 목적 달성을 이룬 나는 무슨 용기였는지, 국제 학교 입학 초기 학부모 이벤트에 의욕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한국 엄마들 중에도 영어 실력이 좋은 사람은 참 많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엄마들은 왜 그리도 영어를 잘하는지. 9학년에 입학한 딸이 하루는 분개하며 말했다.
"아니, 미국 애들은 영어가 모국어니까 그렇다 쳐. 이스라엘 애랑 우크라이나 애는 외국인 아니야? 걔들은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데? 진짜로 한국 애들만 영어 못 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내가 영어 공부를 7년을 했는데, 와, 영어가 안되잖아. 한국 교육 진짜 문제 있는 거 아냐?"
음, 그렇지. 엄마도 다 알지. 한국 교육 문제인 거. 엄마는 너보다 더 하단다. 너네는 엄마보단 나은 거야. 엄마보다 영어 잘하잖아? 네 마음 다 알지.
한국 중학교 생활을 3학년 1학기까지 비교적 모범적인 성적으로 지냈던 큰 딸아이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국제 학교 생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었다. 자신의 성적에서 나타나 보이던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자신의 영어실력으로 문제없을 거라고 믿는 듯했다. 그러나 현실 친구 사귐과 모든 게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예상을 뛰어넘었을 게다. 실제로 무리 지어 노는 사춘기 여자 아이들의 특성상 영어로 내밀한 얘기가 이루어질 기존의 친구들 사이에 영어 수다가 불가능한 아이가 끼어들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한편, 한국에서 중1 1학기만 겪고 온 둘째 딸아이는 상황이 달랐다. 국제 학교 영어 생활을 걱정하던 아이는 오히려 잘 적응하고 있는 듯했다.
"엄마, 처음엔 내가 외국 애들을 그냥 뒤따라 다녔거든? 끼워주던 안 끼워주던 그냥 따라다녔거든. 근데 어느 날 애들 뒤를 따라가다가 내가 신발 끈이 풀려서 앉아서 신발 끈을 묶고 있었는데, 앞서 가던 애들이 멈춰 서서 나를 기다려주더라? 걔들이 어쨌든 날 챙겨준 거지."
두 아이에게 국제학교라는 세상은, 각자가 가진 기대치가 달랐기 때문인 걸까, 자신감의 유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말 그대로 성격 차이인 걸까, 아니면 나이 차이 때문일까. 나름 모범생이었던 큰 아이는 조금은 의기소침해졌고, 성적 따윈 관심 없어 보이던 둘째 아이는 오히려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 속에서 활기를 찾는 듯이 보였다.
남편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폴란드로 옮겨왔으나 회사 업무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하루 종일 영어와 씨름하는 일상이었다. 몇 백 명 되는 회사 안에서 한국인, 아니 동양인은 남편 혼자라 코 크고 키 큰, 파란 눈 서양인들 사이에서 남편이 지나가면 다들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고 했다. 생존을 위한 영어 공부로 이제는 '우리 집에서 영어 젤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며, 외국인들과 영어로 농담도 하는 것을 보면 감탄이 나오곤 했는데도, 영어가 제일 스트레스라고 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영어가 모국어인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상황이 달랐다. 아이들이 저학년이었다면 외국인 엄마들과도 많은 교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학교 선생님들과 상담이 필요할 때, 문제가 있어 학교에 문의해야 할 때가 아니면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 드물었다. 오히려 장을 보러 간다거나, 아이들 병원에 가야 할 때, 혹은 집에 손 볼 것이 있어 기술자가 오거나 심지어 택배 기사가 방문할 때 등등 나는 폴란드어를 더 많이 접해야 하는 일상이었다. 길거리를 지나갈 때도 눈에 보이는 모든 간판과 표지판을 하나도 읽을 수 없음에, 그리고 정원 관리는 임대인이 하기로 한 집 계약서가 영문/폴란드어 두 버전이 정반대로 쓰여 있음을 알게 된 때, 현지 폴란드어를 모르는 우리는 이 나라에서 진정 문맹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실제로 폴란드에서 보이는 모든 글자는 그야말로 한/영 전환 키를 실수로 영타로 두고 한글을 쓴 것 같은 모양새다. 대형마트에 들어설 때 나오는 사람들을 피해 들어가는 경험을 한 후, 입구와 출구를 뜻하는 단어를 구분해서 볼 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이란!
문맹이란 세상에서 고립되는 것이었다. 나의 모국어로 나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자재로 이렇게 풀어놓고 있는 지금,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다. 세탁기를 설치하러 온 덩치 큰 폴란드인에게 구글 번역기 마이크 표시를 들이밀며 간신히 소통하는 와중에, 확신할 수 없는 희롱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에도, 그들끼리 키득이는 것을 보며 나는 의아한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현지 은행 계좌를 만들고 인터넷 뱅킹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짐작으로 [다음] 버튼을 눌렀을 때, 자동 ARS로 흘러나오는 폴란드어는 그야말로 외계어였다. 천천히 친절하게 또박또박 불러주는 인증번호도 알아듣질 못하니, 뱅킹 하나 뚫기도 어려운 나는 1,2,3도 모르는, 유치원생 수준도 못 되는 문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폴란드어와 영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공부다. 책 속의 캐릭터들이 떠올랐다. <파친코>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힘겹게 삶을 이어가던 선자,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 하와이로 떠난 사진 신부들, <눈부신 안부>에서 독일로 건너간 파독 간호사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힘겹게, 그러나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여성들. 그들의 고된 삶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임을 알지만, 그 어려움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는 왠지 알 것만 같은 이국의 삶이 나에게도 눈앞에 현실로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독서모임에서 귀한 책들을 읽었던 감격들은 어쩌면 나의 폴란드 생활에 밑거름이 되기 위한 과정들이었을까. 현실 세계에서는 문맹으로, 모국어로는 내 안의 모든 생각들을 이렇게 자유롭게 풀어놓으며 살고 있는 아이러니를 느끼며, 나는 브런치북 한 권의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