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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인 Apr 17. 2024

연두예찬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는데, 봄다운 햇빛을 머금고 환하게 내 시야를 싱그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연둣빛 잎들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저렇게 연둣빛 작은 손들이 세상을 향해 뻗어 나왔을까. 눈 아래 깔린 관목들에도 어느새 연둣빛이 가득하고, 하늘을 배경으로 한 머리 위에도 연둣빛은 하늘과 나를 향해 손을 뻗어온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한참을 고민하곤 한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뭔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뭔지 물어도 한 가지를 고르기 어려운 사람이 나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색깔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연두색을 고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4월에만 볼 수 있는 이 청량한 연두색 말이다. 1,2주만 지나도 이 빛깔은 자취를 감춘다. 그러니 1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는 이 빛깔을 나는 한껏 머금어두어야 한다. 이 계절이 지나면 이 빛깔을 표현하려는 어떤 예술 작품이나 인위적인 시도에도 이와 같은 빛은 좀처럼 나올 수 없 때문이다.


 

연두의 사랑스러움은 비 오는 날도 예외일 수 없다. 며칠 전, 비가 잦은 날씨를 투덜거리며 우산을 들고 걸을 때였다. 햇빛 쨍한 맑은 날의 연둣빛을 선호하던 나는 새로운 연둣빛을 발견했다. 꽤 굵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면서도 꺾이지 않고 탄력 있게 빗방울을 튕겨 내는 어린잎. 밝은 해도 없이 어둑한 나무 그늘 속에 자리 잡은 연두 잎은 그야말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는 야광의 그 무엇을 연상케 했다. 자신의 본질을 향해 여린 손을 내민 생명의 빛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꿀꺽꿀꺽 봄비를 마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많은 어린잎들이 저마다 땅에 꽂아놓은 빨대를 숨차게 빨아대고 있는 그 광경이 문득 감격스러웠다. 순간 내 아이들이 갓난아기였을 적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젖을 빨아 마시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현상이 이렇게 연결되고,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감탄하고 있는 나를 내가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 한편으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듯이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어린잎을 보던 그 순간에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때를 떠올리며 글을 쓰는 지금에 느끼는 것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느낀 것이었구나.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내가 경험한 느낌이 나만의 기억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텍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이것이 바로 마법이구나. 나는 단순히 글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느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나를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구나.


연두 예찬으로 시작해서 '나에게 글쓰기란'이라는 결론으로 도달하는 이상한 글이지만, 나에게는 또 한 번 무릎을 탁 치게 만들 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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