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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인 Sep 20. 2024

나를 살리는 글쓰기, 나를 살리는 브런치

나는 작가라고 불리기엔 아직 너무 부끄러운 사람이다. 몇 시간을 들여 글을 써놓고도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발가벗겨 세상에 내보여진 것 같은 기분이라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브런치 작가에 단 한 번의 도전으로 성공해 놓고도, 어떻게 내가 됐지? 어리둥절했고, 반짝 생각나는 글감이 생기지 않으면 만족스러운 글이 나오지 않아서, 지난 10개월 간 글 20여 개에 구독자수도 10명뿐인 햇병아리 무늬만 브런치 작가다.


핑계를 대자면, 경쟁적으로, 전략적으로, 공격적으로 글쓰기 주제와 횟수로 따발총을 시원하게 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인위적인 목적이 아니라 내가 내킬 때 쓰고 싶다는 아집과도 같은 소신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웃기는 건, 그런 생각의 이면에 남들처럼 전략적인 글쓰기를 마음먹지 못하는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하는 자기 비난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드문드문 발행하는 글에 달리는 몇 개의 라이킷에서 간당간당 목 축이는 정도의 도파민을 충전하던 나는, 조회수가 카운트되는 기능도, 브런치북이나 매거진의 세세한 기능도 모르는 채로 내 속을 비워내고 쏟아내는 자기 위안의 용도로 브런치를 사용하고 있었다. 길고 긴 추석연휴가 끝난 어제, 명절이 끝난 홀가분함과 일상으로 돌아온 반가움으로 자리 잡고 앉아 명절의 감회를 쏟아내는 글을 썼다. 명절에 대한 반자동적인 거부감과 신세한탄을 수다로 풀어놓을지언정 글로 쓴 건 처음이었는데, 세상이 만들어놓은 예의범절에 어긋나 있는 나의 명절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문장들을 풀어놓는 데에는 이제껏 내보지 못한 용기가 필요했다.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는 그보다 더 많은 '에라, 모르겠다'가 필요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https://brunch.co.kr/@kimwritingman/82



천근만근 같은 발행 버튼을 누르고 두어 시간 후, 처음 보는 알림이 도착했다.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 그런 게 있었어? 도대체 어디에?

꼭꼭 숨어있는 것도 아닌데, 한참만에 조회수 그래프를 찾아냈다. 바닥에 깔려있던 벼룩 같은 점이 갑자기 점프를 한 듯한 모양새에 태그를 잘 걸었나 생각했다. 검색해서 안 나오는 게 없는 세상, '다음'에 게시되는 경우에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고는 메인에 게시되어 있는 내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세상에나, 이게 꿈이야 생시야? 대한민국 여자들의 발작버튼과도 같은 명절이 이제 막 끝났고, 계절적 시기와 주제가 내 글을 높은 곳에 걸어둔 것이었다. 그러나 마냥 좋아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용기를 길어 올려 쓴 글의 그림자 속에는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한 죄책감과, 한편에서 이런 나를 비난의 시선으로 볼 누군가의 시선 - 역시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한 - 을 의식하는 나 때문이었다.


두어 시간 간격으로 조회수 2천, 3천, 4천을 알리는 알림은 계속 이어졌고, 기쁘면서도 마음속 어딘가가 불편한 이 아이러니한 감정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남들이 조회수 주제의 글을 쓰는 데는 다.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이런 글을 쓰는 날이 오다니.


'왜 이래? 내가 글을 잘 쓴 거니까, 좋은 거지!'


혼란스러운 감정을 애써 갈무리하고, 나를 브런치 작가로 이끌어준 글쓰기 모임에 조심스레 이 소식을 전했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고, 그로 인해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정작 축하받고 싶은 가족들에게는 알리기 꺼려지는 주제의 글이라는 것. 포털의 메인에 올라온 것을 딸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었으나, '어떤 글인데?'가 따라올 것은 자명한 일. 글에 드러난 엄마의 깊은 아픔을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브런치 알아?"

"응? 아점 그거?"

 

라고 말했던 남편이다. 글쓰기와 브런치 작가란 개념이 그의 관심사 밖에 있거늘, 집안싸움 얘기를 쓴 글이 사람들에게 마구 노출되고 있는 이 상황이 곱게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에라, 모르겠다. 기분이 상하건, 함께 기뻐하건 그건 너의 몫이다. 난 너와 관계없이 기뻐하련다!'


여기에서도 시전 되는 '에라, 모르겠다'! 이번 기회에 획득한 '에라, 모르겠다'의 정당성은 브런치가 나에게 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이전 어느 글에서 쓴 적이 있는데, 이전의 나에게 있어 '에라, 모르겠다'는 '결과는 나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것'이었던 것이다. 아직 해외에 있는 남편에게 시차를 고려하여 포털의 메인을 캡처해서 투척해 버렸다. 내 글이 포털에 있다고!


"못 찾겠는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무심해 보이는 반응에 서운해해야 하나. 내 속을 앞으로도 적나라하게 쏟아내려면 알리지 말걸 그랬나? 적극적으로 글을 찾아 읽을 남편은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와글와글 시끄럽고 부산한 머릿속 생각들은 나 스스로를 못살게 군다. 적나라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잘만 쓰는 다른 작가님들에게 묻고 싶다. 이런 와글거리는 생각은 나만 하나요?라고.


어쨌거나 이번 사건이 나를 바로 서게 하고, 나를 살리는 글쓰기를 확인시켜 준 것만은 확실하다. 번듯한 작가로서의 나의 미래를 상상해 봤으니 말이다. 용기를 내는 글쓰기에 더해, '에라, 모르겠다'의 활성화에도 더 힘을 실어볼 필요가 있겠다. 이 글의 발행 버튼을 누를 때에도 '에라, 모르겠다'가 10개쯤은 필요할 것이 눈에 선하다. 이런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지지를 보내준 보이지 않는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간신히 목을 축이던 나는 이제, 벌컥벌컥 들이켜는 짜릿함을 맛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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