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제 Jul 26. 2023

당신에게 집은 무엇입니까?

사라질 나의 살던 고향은 : 영등포구 신길동


  토요일 아침. 우석의 결혼식 날. 연택과 예진은 신도림까지 먼 여행을 준비한다. 전철과 지하철을 갈아타면 집에서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실제적인 거리만큼이나 마음으로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예진아, 이따 신길뉴타운 쪽 임장해야 한다며, 편한 신발로 신어. 너무 하객룩 하지 말고. 내 친구니까.”

 

  경기광주역으로 집을 나선다. 연택과 예진은 연고도 없이, 각각의 직장인 SK하이닉스 이천 본사와 삼성전자 수원 캠퍼스, 거리상의 중간지점에 적당한 신축아파트를 선택하여 신혼을 시작했다. 그들에게 e편한세상경기광주역은 퇴근을 하고 자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동네엔 아는 사람들도 없다. 연택과 예진만이 있을 뿐이다. 오늘처럼 서울에 약속이 있는 주말 아침은, 우리와 같이 한껏 차려입고 서울로 놀러 가는 무리 속에 끼어든다.


  경기광주역으로 향하는 길에 “한국토지신탁 컨소시엄, 1조 8천억 광주역세권 개발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경축’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연택은 ‘시작을 한 것도 아니고, 최우선협상대상자가 된 것이 그렇게 큰일인가?’ 라고 생각한다. 숙원사업이 이루어졌다는 또 다른 플래카드도 있다. '난 숙원 한 적이 없는데...' 플래카드 하나로 역세권개발사업이 광주역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우리의 소원’이 되어버린다. 연택은 개발 사업으로 집값이 조금이라도 올라, 어서 빨리 이곳을 탈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들 같은 생각일까?




  친구, 직장동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혼자 온 석준과 함께 뷔페식당으로 향한다. 예진과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고. 석준은 다른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은 그렇게 삶 자체가 편해 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어깨가 5도 정도 쳐진 듯하고, 거북목이 더 심해져 보였다. 목화아파트만 남은, 너무나 완벽해 부러워 보이던 여의도 금융커플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석준에게 집은 마지막 남은 보루다. 담보대출로 진지에 금이 가긴 했지만, 충분히 다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갈 튼튼한 진지이다.


  “오빠, 근데 우석오빠 와이프는 어떻게 만났대? 뭐 하는 사람이래?”

  “응? 글쎄. 얘기 안 해서 모르겠는데?”

  “지난번에 셋이 만났다며. 그런 얘기도 안 하고 무슨 얘기했어?”

  “이혼한 놈, 결혼한 놈, 결혼할 놈, 셋이서 와이프 어떻게 만났는지가 뭐가 궁금하겠어. 10대도 아니고. 그냥 중학교 때 얘기만 실컷 했지. 낄낄대고. 그러다 신혼집 얘기하는데, 석준이가 갑자기 열폭하더라고. 그때 얘기했잖아. 임대아파트 들어간다고.”


  “응, 근데 우석오빠는 진짜 어떻게 살려고 그래? 우리도 이렇게 집하나 갈아타기도 힘든데. 임대부터 시작하면...”

  “우석인 꼭 집이 있어야 하는 거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석준이가 자산이 어쩌고 저쩌고 막 얘기했는데, 말이 잘 안 통했어. 나도 뭔가 거들 고 싶었지만, 우리 집 쪼금 올랐다고 자산이 어쩌구, ‘너도 집사야 돼!’ 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 게다가 시장도 푹 가라앉았으니. 근데, 나도 석준이랑 생각은 같아. 자산의 가치. 언젠간 올라갈. 그래서 말야, 예진아 우리말인데...”




  영등포역에 내린다. 매번 교차로 쪽으로만 갔었는데, 영등포본동 쪽으로 나와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빨간 벽돌의 4층짜리 역전상가건물과 얽히고설켜 있는 전신주의 전선들이 오래된 도시의 느낌을 더한다.


  “오빠, 일단 여기서 볼 데는 '신길2구역' 밖에 없어. 나머지는 다 공공에서 진행하는 거야. 공공재개발하고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이 섞여 있어. 재개발 신길2구역에 들어선다. 오래된 단독주택이 많아 보인다. 예진이 찾아봤던 매물들을 얘기해 준다. 초투 작은 물건이 5억 정도 들고. 단층주택. 1+1은 14억 정도 하고, 3층짜리 단독주택이 13억 5천 정도. 전세 3.6억 들어가 있어 초투는 10억은 든다. 그리고, 빌라 9.7평짜리 급매가 6억 3천. 전세 9천 껴있는. 대지 4.3평, 피가 2억 정도. 실투금이 5억."

  연택은 재개발 공부를 좀 해서 그런지 이젠 좀 낯설지가 않다. 단독주택이 대지를 많이 품고 있어 비싸다는 것도, 그래서 원플러스원도 나오고, 빌라가 가장 투자금이 적게 든다는 것도.

  “뭐 실투가 5억으로 제일 적어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거 진짜 사두면 좋겠다. 영등포역 바로 아래이고. 여의도가 완전히 변하면 여기도 진짜 좋아지겠다.”

   연택은 재개발 용어 보다, 막힘없이 설명하는 예진이 오히려 낯설어 보인다. ‘언제 이렇게 공부를 한 거지?’


  공공재개발 1차 “신길1구역”으로 들어서니 ‘소통과 화합의 산실 <신길1구역 공공재개발 홍보센터>’ 앞에,

여러분의 공공재개발은 끝났습니다. 이제 민영재개발 밖에 없습니다. 빨리 신속통합기획 가야 합니다. 신속통합 동의서 징구 중입니다.

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삶의 패턴이 달라진다. 연택은 변하지 않고 그 시간을 지키고 있는 건, 자의든 타의든 변하지 못한 시대의 부적응자인 '재개발 구역'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은, 신축 아파트로의 단 한 번의 완벽한 변신을 위해, 시간과 삶을 켜켜이 쌓아 에너지를 응집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빨강과 파란색의 두터운 볼드체로, ‘빨리 신속통합기획으로 가야 한다’고 태극의 기운을 모으고 있는 것처럼.




  가장 최근에 입주한 신길뉴타운 3구역 더샵파크프레스티지부터 임장을 시작한다. 2구역에서 이어지는 언덕이 좀 있고, 그냥 새 아파트다. 뭔가 애매한 위치인 듯 구축아파트 사이에 껴있다. 푸른숲마을아파트와 비슷한 팬톤컬러로 한 단지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긴다. 길건너엔 딱 봐도 군부대 같은 적색벽돌 벽의 병무청이 자리하고 있다. 교회와 호텔을 남기고 해군본부도 옮겨 갔는데, 병무청은 징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건가?


  신길센트럴자이와 신길파크자이에 밀려 신길뉴타운에 끼지 못하는 애매한 14년 차 구축인 신길자이를 지나, 신길뉴타운의 준대장인 보라매SK뷰로 향한다. 연택이 나온 대방초등학교를 말 그대로 품고 있다. 이 자리엔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후문 쪽으로는 깡패 만날까 무서워 잘 안갔기 때문이다. 


  10원짜리 게임을 하고 노란 황금잉어 뽑기만을 고대했던 정문 앞 문방구는, 붉은 벽돌의 정문공인중개사 사무소로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신길뉴타운2구역’ 바로 옆 우신초등학교가 더 좋았는데, 대방초등학교는 이젠 새 아파트에 둘러 쌓인, 번듯하게 공부 잘하게 생긴 초등학교가 되어있었다. 입학해서 졸업까지 6년을 풀로 다닌 졸업생으로서의 왠지 모를 자부심이 들었다.


  주택이 형의 미션을 수행하러, 하굣길을 따라 남서울아파트로 향한다. 어릴 땐 한 30분은 걸려 걸어 다녀야 하는 길이었다. 고학년이 되어 학교생활이 피곤하게 느껴진 날에는 60원을 내고 두 정거장을 버스를 타고 가기도 했다. 대장인 래미안에스티움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영진시장 아파트. 연택은 반가움보다는 먹먹함을 느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볼 빨간 친구와 하굣길에 50원짜리 떡볶이를 사 먹던 영진시장은 없어졌지만, 주상복합인 영진시장 아파트는 그 시간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다. 준공연도마저 정확지 않은 영진시장 아파트 A동. 노란색의 재난위험시설(E등급) 지정 안내 표지판 여러 군데 붙었있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 제31조의 2항에 따라 지정된 특정관리대상 시설입니다.
♣ 이 시설물(건축물) 주변에 거주하시거나 통행, 주차 등을 하시는 주민 여러분께서는 항상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크로바 불렛 마크와 함께 그들의 안전에 행운을 바란다는 마음으로, 영등포구청장의 경고문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경고했으니 책임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재난위험시설 E등급과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연택은 “정밀안전진단 E등급 재건축 확정”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재건축 아파트에 사는 지인에게, 축하한다는 카톡을 보낸 것이 과연 ‘경축’할 만한 일인가 싶었다.




  “와~ 여기구나, 남서울아파트. 1974년생이야. 반백살이다. 오빠 여기 살았었어? ”

  “어. 중간에 놀이터 있는데. 몇 동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근데 진짜 이게 아직도 이렇게 있다니… 이주하는 걸 보니 곧 없어지겠지만.”

  “여기 푸르지오써밋으로 간대. 현재 84 신청 매물이 8억 5천 정도에 나와있네. 실거래는 7억 8천정도고. 어제 찾아보니, 감정가대비 피는 2~3천 정도고, 권리가대비는 1억 정도 붙어있대. 여기 비례율이 85% 정도라서. 이주비대출 4억 5천 정도이고, 추분 5억 정도니까…  한 12억 정도에 사는 거네. 입주할 때 9억 정도 필요한 거고. 주변이 13억 정도 하니까… 많이 남는 건 없겠다. 투자비가 3억 5천 정도 들어갈 테니.”

  “아... 아직, 그 계산까지는 잘 따라가진 못하겠다. 헤헤. 공부 좀 더 해야겠어. 우와! 여기 놀이터에 아직 그네가 있네. 그 포메이션 그대로인 듯한데? 모래도... 50년 된 거려나? 모래는 갈았겠지?”

  “그, 그렇지 않을까...? 이제 집에 가자. 계속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하네. 갈길도 멀고.”


  신길10구역은 신길뉴타운에서 가장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신풍역에 신안산선도 들어와 여의도 까지도 한방에 가게 될 테고. 투자로는 그렇지만, 나중에 실거주를 한다면 탐나는 곳일 것 같았다. 출퇴근이 문제겠지만. 내가 가질 수 없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의 사라질 고향. 




  이사를 간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그렇게 편하고 좋았던 우리 집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긴 하루의 끝에 집으로 돌아와 몸을 편히 누윌 수 있는 곳. 예진과 함께하는 가장 행복한 우리의 공간이지만, 집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는 성에 해자만 있는 듯이 갇혀있는 느낌에 왠지 모르게 답답해졌다.


  “오빠, 나는… 가끔 내가 '염미정'인 것 같아. 출퇴근은 적응이 되었고, 늦어지면 막차시간 확인하는 게 일이어서 괜찮은데, 이렇게 안 와봤던 서울에서 집으로 돌아갈때면, 가는 것 자체가 그렇게 막막하게 느껴져.”

  “「나의 해방일지」의 그 염미정? 듣고 보니 그러네. 시골에서 출퇴근하는. 우리랑 똑같네. 그럼 내가 '구씨' 하지 뭐. 돈 많이 벌어서 돈가방 통째로 줄게.”

  “으유~ 됐어. 재개발 공부나 더 열심히 해!”

  “응. 재개발을 추앙하려고.”

  연택은 새롭게 투자자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낀다.

  “자... 그럼, 집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해 볼까?”


  매일매일 돌고 돌아가는 그곳. 연택과 예진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사는 곳을 나와 살던 곳을 보고 살 곳을 찾는 여정 속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느끼고 익숙하고 편안한 불편함이 공존하는 그곳으로 돌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