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된 작별은 남은 자들에게 위로를 준다."
- 알버트 슈바이처
죽음에 대한 준비는 떠나는 사람뿐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감정적으로 큰 위로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진리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순간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 죽음이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 자체로 충격적일 뿐만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게 깊은 고통을 남긴다.
이런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우리는 '임종 노트(엔딩 노트)'를 통해 작별 인사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갑작스러운 이별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연속입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순간에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 그러한 순간에 남겨진 이들은 갑작스러운 이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특히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이별하면, 남은 자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후회와 슬픔이 남는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마지막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라는 생각은 그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괴롭히게 된다. 사람이 죽는 순간을 미리 알 수 없다면, 오히려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길 말이나 마음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임종 노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임종 노트의 의미와 역할을 알아야 한다. '임종 노트'란 죽음을 대비해 남기는 노트다. 자신의 마지막 인사, 유언, 재산 분배 등에 대한 내용을 적어두는 것을 말한다. 이는 법적인 유언장과는 다르게, 좀 더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담을 수 있다. 누구에게 고마웠는지, 어떤 기억이 특별했는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한 마디 등을 적어두는 것이다. 이 노트를 통해 남겨진 사람들은 작별의 순간을 직접 나누지 못했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위로 받을 수 있다. 임종 노트는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생전의 삶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표현하고, 남기고 싶은 말들을 미리 전해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임종 노트를 작성하는 과정은 결국 현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세 번째, 왜 젊었을 때 작성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임종 노트를 나이가 들고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작성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임종 노트는 성인이 된 후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작성하는 것이 좋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음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건강하고 젊다고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우리는 언제든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리 준비된 임종 노트는 남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안심이 될 수 있다. 또한, 임종 노트를 일찍 작성해두면 마음의 평안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자신이 남길 말과 감정을 정리함으로써 오히려 더 자유롭게 삶을 살 수 있다. 더 나아가, 임종 노트를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삶의 변화에 따라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갱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네 번째, 작별 인사를 미리 준비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마지막 순간에 전하지 못한 말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임종 노트를 통해 작별 인사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남겨진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또한 자신 역시 그 순간을 대비함으로써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하루하루를 더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 작별 인사를 준비하는 것은 죽음을 미리 예측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다. 남겨질 이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에 남길 흔적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임종 노트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시인 정일근은 <가을 억새>라는 시에서 요즘의 이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 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작별이 주는 감정적 무게나 진심 어린 이별의 인사가 사라진 시대를 의미한다. 또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 바쁘게 몰두해 감정적 교류를 잃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작별 인사도 없이 가 버리면 남은 사람은 거절당하고 버림받았다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지난 2024년 3월 27일, "죽음을 당당히 바라보며 준비하는 엔딩 노트를 시작합니다"라는 글에 유언장을 썼다. 유언장의 일부를 소개한다.
<인생 전반전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은>
너무 아득바득 살지 말고 자기 몸을 돌봐가며 지금 하고 있는 스포츠를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라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 올려 나가시기 바랍니다.
<필자와 함께 인생 후반전에 이미 돌입하신 분들은>
나이가 들었다고 좌절하지 마시고 아직도 남아있는 길고 긴 인생, 행복한 말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저를 사랑하는 온라인 이웃 여러분께 임종 노트(엔딩 노트)를 보여 줄 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그 누구보다 피부가 곱고 예쁜 아내에게>
여보! 우리가 결혼 지 벌써 27년이 되었네. 박봉의 소방공무원인 나를 만나 푸른 꿈을 안고 13평짜리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지.
"당시 소방관들은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근무체계였고, 대형 산불 등으로 비상소집 근무가 많다 보니 소방서 생활이 절반 이상이었고 가족이 있는 집은 거의 하숙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998년 8월 우리 부부의 합작품인 아들이 태어났을 때가 가장 기뻤어. 출산하는 여보 옆에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어. 그때는 직장 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랬는지 모르겠어. 또 하나, 젊은 시절 친구와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많아 늘 늦게 귀가해서 자기하고 많이 다퉜던 일들이 생각나네. 역지사지라고 당시 자기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을 해 봤어. 나 같았으면 벌써 이혼하자고 했을 것 같아. 자기는 어린 아들 혼자 케어하며 그 속상함을 가슴속에 묻고 참아 줬지. 내가 왜 그랬을까? 반성을 많이 해. 사람이 좋아서, 술이 좋아서 둘 다인 것 같아.
"그렇게 우리의 젊은 시절은 흘러갔고 어느 조직이든 직장 사회는 승진이 가장 큰 기쁨인데, 저는 6급(소방위) 승진 시험에서 두 번 떨어지고 세 번 만에 합격을 했습니다. 당시 시험 일자는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매년 9월 첫째 주 휴일이었지요."
여보! 내가 소방위(6급) 시험공부 때문에 3년 동안이나 여름 휴가를 못 갔던 게 못내 후회가 많이 드네. 그래도 자기는 휴가 못 갔다고 불평 하나 안 하고 남편이 시험공부에 열중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많이 줘서 삼수 만에 합격을 할 수 있었던 같아. 고맙고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 남편 시험 합격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당신 모습도 눈에 선하네.
"소방 간부 시험에 합격하면서 가족이 있는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영월 소방서에 근무하며 주말부부 생활을 할 때 밥 굶을까 봐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 주었던 자기의 손 맛이 또한 기억나네.
"2005년 9월 나의 첫 번째 멘토이신 당시 ○○○ 소방서장님의 조언으로 상급부서인 강원도 소방본부로 발탁되어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소방본부로 발령 나기 전 퇴근 후 숙소에서 저녁 먹고 자기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어.
"여보! 우리 춘천 가서 한번 살아 볼까"라고 했더니 자기가 "여보! 뭘 망설여. 갑시다"라고 했던 거 기억나지. 그때 자기의 '갑시다'라는 메시지가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우물 안의 개구리(조그만 도시에서의 생활) 신세였을 거야.
"그렇게 우리는 강원도 수부도시인 춘천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고 저는 소방본부에 근무하며 또 한 번 삶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보! 내가 본부에서 근무할 때는 일에 미쳐 살았던 같아. 자기도 기억나지. 또 조직을 위한답시고 관계되는 사람과 술 마시는 날이 많았지. 일+술 덕분에 소방서장(4급 서기관)까지 승진은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그렇다고 나는 절대 인사·승진 청탁한 적은 없다는 거 자기도 알지. 혹시 이웃님들께서 오해하실라.
반면에 집은 하숙집이었고 우리 아들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해 늘 미안했어. 그런 와중에도 자기는 인내하며 아들 케어하고 남편 뒷바라지해 줬지. 자기의 고마움에 대해서는 일일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지.
"지난 2019년 11월 소방본부 ○○○○과장 근무 시절 갑자기 뒷머리에 통증이 시작되어 병원에 가서 진단한 바 뇌출혈과 선천성 뇌혈관 기형으로 머리를 열고 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뇌 수술은 춘천 ○○○○병원을 거쳐 서울 ○○○○병원에서 받았지요. 머리를 열고 뇌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에 불안감 속에 떨고 있었던 자기의 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
대부분 뇌 수술은 반신불수, 편 마비 등을 동반하는 아주 위험한 수술인데 말이야. 이후 퇴원해서 회복하는 기간 동안 자기와 아들에게 무한 고맙고, 장모님이 내 손 잡고 운동을 함께 했었지. 장모님이 올해 90세, 100수 하시겠지 뭐.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잘 모시자고. 또 집 문턱이 닳도록 위문 와 주신 친척들과 선·후배·동료 소방관들 그리고 지인분들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여행 가기 전 이별 인사는 다 못 드리겠지만 일부는 오프라인에서 만나보고 떠날 계획이야.
<하나밖에 없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에게>
아들아! 아빠 이제 긴 여행 갈 시간이 다가왔어. 그동안 아빠가 아들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미안해. 아빠가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해도 아들 사랑하는 걸 알지. 아들에게 미안했던 일들은 앞서 엄마에게 이야기했던 부분이 있으니 읽어 보렴. 우리 아들!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지만 하나만 부탁할게. 아빠는 아들을 믿으니까 아빠의 좌우명인 '해불양수'와 '내일은 없다. 왜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 최선을 다하자'라는 신념을 늘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아빠가 2017년 2월 어느 날 00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게 써준 7장 분량의 편지를 아빠가 여행 간 다음 다시 한번 읽어 봐 주렴. 아빠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다는 거 알 수 있을 거야. 아빠는 전직 소방관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아빠의 삶을 조명하는 인생 책인 수필집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어. 역사에 내 이름 자와 책을 남길 수 있어서 네 엄마와 아들 그리고 도움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해. 아들! 아빠가 떠난 다음 사람들에게 "우리 아빠는 글 쓰는 삶을 사시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여행을 가셨어요"라고 이야기해 주렴.
<여보! 아들! 이제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아>
나의 인생은 여보와 아들 때문에 행복했고 여보와 아들 때문에 의미가 있었고 여보와 아들 때문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완성되어 왔던 것 같아. 이제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나의 여행을 즐거운 마음으로 가려고 해. 그곳도 역시 현생과 마찬가지로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곳이겠지 뭐. 그러니 부디 나의 이 여행길을 축하해 주고 축복해 주면 고맙겠어. 여보! 아들!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내가 떠났다고 슬퍼하지 않을 거지. 인간은 자연에서 왔고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 알지.
임종노트(엔딩노트)는 죽음을 대비하는 중요한 도구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해야 할 순간을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 임종 노트를 작성하는 것은 그 작별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더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핵심> 죽음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다.
<글의 요약: 작별의 시간>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네,
여보, 아들, 나의 모든 것.
당신들 덕에 삶은 빛났고,
기쁨과 사랑으로 채워졌지.
처음부터 쉬운 길은 아니었어,
힘들고 고된 날들도 있었지만,
여보의 따스한 미소와
아들의 존재가 날 지탱해 주었지.
내가 잘못한 순간들도 많았지,
그러나 당신들은 늘 곁에 있어 줬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로는
모두 다 전할 수 없겠지.
이제 나는 긴 여행을 떠나려고 해,
아마도 그곳은 여전히 밝을 거야.
내가 떠난 후에도
부디 슬퍼하지 말고, 웃어주렴.
우리는 자연에서 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순리야.
그러니 이 이별을 축복해 주렴,
여보, 아들, 당신들을 영원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