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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by 조희

사할린


조희



너에게는 오래 전일이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얼굴

자주 깜박하니까

잊지 말라고 꿈에 나타나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면

바다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잖아

일 년의 반은 꽁꽁 얼어 있잖아

먼 곳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나 혼자서는 너를 읽을 수 없어

나 혼자서는

나 혼자서는

문고리를 잡고 소리치다 잠이 깨면

어떤 날은 너를 외면하고

일어나 머그잔에 물을 들이켜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커피와 단팥빵을 먹고

또 다른 죽은 사람과 얘기도 한다

살아 있는 내가 꼭 꿈속에 있는 것 같다

꿈속에서도 문은 열릴 것이다

네가 나를 덮치고 지나갈 것이다

너에게는 사할린 바다가 있으니까

계속 출렁이며


사라지지 않는 잔물결처럼

너는 내 방문을 두드릴 것이다

오늘 밤은 네가 문을 두드리면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반갑게 목인사를 해야지

식탁에 앉아 김이 나는 고봉밥도 먹어야지

커피를 마실 땐

네 안에서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얼어 죽은 사할린 바다도 꺼내봐야지

여기는 가혹한 꿈

왼쪽 풍경과 오른쪽 풍경이 다른

시베리아 횡단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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