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기억에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책이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기억이 있다. 그때 '베니스'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고, 이탈리아의 어느 곳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을 마흔이 넘어 나는 처음 왔다. 그냥 지나치고 크로아티로 넘어갈 뻔한 이곳을 아이들이 어리기에 버스를 오래 타는 건 힘들다고 판단해 베네치아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다. 오후에 도착해서 숙소는 크로아티아로 넘어가기 쉽게 버스 정류장 근처로 잡고,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난 다음 기차를 타고 본섬으로 갔다. 그리고 그 가는 길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물의 도시를 만났다. 흐린 하늘과 물가 주변 상점들의 불빛이 물색과 어우러져 물의 도시임을 도드라지게 해, 베네치아를 처음 온 우리 가족 펭귄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아이 펭귄들은 곤돌라를 타고 싶어 했지만, 짠순이 엄마인 나는 나중에 너희가 다시 오면 타라고 말하고 대신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겨줬다. 아이 펭귄들은 무척 아쉬워하며, 자기가 다시 오면 꼭 타겠다고 다짐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늘 아이들에게 모든 걸 다 충족시켜 줄 수 없다며, 어느 정도의 부족함을 느껴야 발전이 있다고 말하는데, 오늘 아이 펭귄들은 베네치아로 다시 올 이유가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짠순이 엄마 펭귄은 합리화했다. 그런 엄마 펭귄을 보며, 아쉬움 한가득 안은 표정을 하면서도 곤돌라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더니 밝은 모습으로 찍히는 걸 보니, 그 앞에서 찍는 사진이 퍽 맘에 들었나 보다. 그 단순함에 감사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관광객이 많아, 이곳이 얼마나 유명한 곳인지 알게 했다. 아마 남편 펭귄과 둘만 왔다면 어느 곳이든 앉아서 가볍게 맥주 한잔하며 저 잔잔한 물빛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아이 펭귄들의 몸 상태를 책임져야 했기에 우리는 빠르게 훑어보고, 본섬을 나와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짐을 숙소에 맡겨두고 다시 우리는 본섬으로 갔다. 어젯밤과 다르게 오전 풍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밤은 흐린 불빛과 흐린 물색이 어우러져 낭만적으로 물의 도시를 바라보게 했다면, 오전, 낮의 풍경은 적나라하게 도시의 낡음과 더러움, 비둘기의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거기다가산마르코 광장의 많은 인파와 따가운 햇볕은 우리를 오래 머물게 하지 못했다. 밤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 이곳이 마치 화려한 무대 후, 남겨진 무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공허했다. 남편 펭귄과 나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곳에서 느끼는 이 감정이 무지함에서 오는 것이겠거니 생각도 했지만, 눈으로 직접 본 감각이 어느 정도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본섬을 나오며, 우린 우리의 짐을 챙겨 보부상처럼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3주 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은 이제 여기서 안녕이다. 언제 또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버스가 왔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밖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에 담고자 애썼다. 3주나 이탈리아에 있었는데 쉽게 떠나고 싶지 않다. 버스가 이탈리아를 벗어났다. 이탈리아 안녕.
어설픈 여행객은 한 나라를 떠나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을 안고, 다시 못 올 것 같아 아쉬움과 서운함의 마음이 가득하다. 어쩌면 내 삶에서 헤어짐도, 이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만남은 긴장과 설렘이고, 그 마음이 잔잔해지면 익숙해지고, 그리고 헤어짐은 어쩔 줄 모르는 마음 말이다. 나는 내 삶에서도 여행자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삶이 애잔하다. 화려함과 초라함,충만함과 공허함이 존재하며, 보부상처럼 나는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내 아이 펭귄들의 눈을 바라보며, 그 순수한 마음과사랑을 받아 봇짐에 넣어 그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을 희석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 펭귄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나는 마흔이 되어 온 이곳을 너희는 나보다 이른 나이에 보고, 느끼며 삶이 여행이라는 걸 좀 더 일찍 깨닫기를 바란 마음을 주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