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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Jul 28. 2024

음악소설집(단편 소설집)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헌수는 내게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다 엉뚱하게도 우리가 '러브 허츠'를 들은 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만약 지금 너를 다시 만난다면 네가 틀렸다고, 이건 '안녕'이 아니라 '암 영'이라고 고쳐주는 대신 그래, 가만 들어보니 그렇게도 들리는 것 같다고,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였다. 그러곤 그런 스스로가 창피했는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날, 통화가 끝난 뒤에도 병실 복도에 한참 서 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 헌수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 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 들은 팝송에 한국어로 된 새 가사를 덧씌우듯 내가 듣지 못한 말을 스스로 중얼거렸다. 몇 해 전 현수가 끄덕여준 대로 '안녕'이라고. 부디 평안하라고.


 '수면 위로', 김연수

 물의 바깥, 물이 아닌 것은 물고기에게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물의 바깥에서 물고기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는 그 이름이 하늘 이라는 것을 안다. 물고기에게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렇게 우리는 물속의 물고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또 다른 뭔가는 그런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생 자기의 생각 안에서만 헤엄치다가 그 생각 안에서 죽을 우리를, 그리고 그 생각 안에서 다시 태어날 우리를.


 "오므라이스는 맛있고 맛없지 않습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지 않고 맛없습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고 맛없습니다. 오므라이스는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겠죠. 맛있는지 맛없는지."

 종이나라 사람처럼 엄마가 말했어.


 '자장가', 윤성희

 엄마는 그렇게 매일 한 살씩 나이를 먹겠지. 꿈속에서 엄마는 근사한 연애를 하고, 다정하면서도 책임감 강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무리 화가 나도 방문을 걸어 잠그지 않는 딸을 낳을 것이다. 그 딸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재수를 할 것이고, 엄마는 갑자기 살이 쪄서 탁구를 배우러 다닐 것이고, 로또복권 3등에 두 번이나 당첨될 것이다. 그 돈으로 예순 살이 되면 세계 일주를 할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매일 밤 내 무릎을 베고 잠든 엄마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웨더링', 은희경

 "언어도 마찬가지야. 사용할 당시에만 맞는 말이고 결국은 변하거 돼 있어. 맞았던  답이 틀려지는 거지. 명심해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음악뿐이야."


 준희는 유튜브 앱에서 노인의 악보에 있는 작곡가와 곡명을 검색했다.(중략)노인의 형이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죽음의 문 앞에서 선택했다는 4악장을 먼저 들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음악이 그런 과학자들의 분류에서 영향을 받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음악 교사의 말대로였다.

 기욱은 음악 교사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에게 물어서 확인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때 노인이 포트폴리오 가방의 포켓에서 접이형 우산을 꺼내 건네더니 묻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기욱에게 말했다  "난 필요 없어.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 해서. 조금 전에 형이 떠난 모양이야." 노인은 마치 잘 아는 사람에게 하듯 반말로 말하고 있었다. 기욱도 대꾸했다. "당장 표가 있을까요? 내일도 일요일이라 힘들 텐데." 다음 순간 기욱의 머리에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좀 쉬시고 내일 오후에 올라가세요. 저한테 표가 있어요. 창구에 가면 바꿀 수 있을 거예요."  기욱은 노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죽음의 소식을 받아들이는 무력한 슬픔에 대해서라면 이미 익숙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초록 스웨터', 편혜영

 나는 오래되어 표면이 매끄러워진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어쩐지 이 동전들을 오래 간직하게 될 것 같았다. 내게 오백만 원은 없지만 어쩌면 백만 원일지 모르는 동전 네 개와 언제나 십구만 팔천 원이 든 지갑이 있다는 걸 잊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뜨다 만 스웨터도 있고 엄마의 노래가 담겼을지 모를 테이프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내게 슬픔만 남겨두고 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손을 마주 잡았을 때의 느낌을 기억했다. 삶에 냉담해질 이유가 많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그 기억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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