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진득하기 힘든 우리들에게
올해 가장 큰 목표는 하고픈 일을 찾는 것이다.
물론 소방서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그만두겠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단지 이렇게만 살아가기엔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스무 살. 이른 나이에 소방서에 들어가 어느덧 5년, 또래 친구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나는 돈을 벌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사고 가고픈 곳을 가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내오고 있었다. 하지만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삼십 년 후에도 소방서에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참 아득했다. 인생을 스포 당한 격이지 않나!
친구들은 대학교를 다니며 좋은 교수님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들도 해가며 추억을 만들고 경험을 넓혀가고 있었다. 야간 근무 중 췻김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시끌벅적한 대학가 소음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고, 아르바이트 하나 못해보고 일을 시작한 내 삶이 너무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끝나고 곧장 소방관이 되어야 했던 것도 꽤나 큰 부담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배부른 소리이고 귀엽게만 느껴지는 고민과 부러움 들이지만, 그 당시 감자에겐 하나의 결핍으로 자리할 만큼의 일이었던 것 같다.
"넌 책가방 멜 나이에 공기통을 메고 있냐!"
내 또래 딸과 아들이 있는 당시 우리 팀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중식당에 화재가 났던 날이었는데, 선임 진압대원 차장님께서 휴가를 가셨기에 내가 앞장서서 화재를 진압해야 했다. 씩씩하게 잘 해내고 돌아오는 나를 보며 격려하는 마음으로 해주신 말씀이셨다. 그 말씀이 참 감사하기도 했지만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오빠야! 아직 젊은데 제2의 직업도 생각해 봐!"
일종의 슬럼프가 왔었다. 팀원들은 어느 때보다 좋았지만 출근하기가 정말 싫었고 일이 행복하지 못했다. 잘 해낸 일에도 보람을 느끼기 힘들었고 내가 뭐라고 이런 일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러고 있던 나를 알아준 콩자씨께서 내게 해준 말씀이다. 제2의 직업까진 아니더라도 무언가 배우거나 즐겁게 해 나갈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해 몇 해가 지나 어느덧 2023년이 되었고, 아직도 찾지 못한 나의 신년 목표는 여전히 하고픈 일 찾기가 되었던 것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해 초, 나는 하고픈 일 찾기에 성공했다. 콩자님께서 나의 장점들을 속속 찾아내더니 나더러 블로그에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며 제안해 주었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쓰다 보니 흥미를 느꼈고, 언젠가 책을 한 번 써보자는 목표도 생기게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눈으로 볼 수 있게 글로 내 삶을 적어보니, 내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나도 잘 보였던 것이다. 그중 유난히 잘 보였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내 소방 생활에는 정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진급이나 업무, 소방대회 등등 역량을 강화하고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 무수했지만, 잘 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즐기긴커녕 스트레스만 잔뜩 받아오고 있었다.
그걸 알고 나니, 나는 소방에 엄청나게 큰 뜻은 가지진 못한 평범한 소방관임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과 함께, 소방을 발전시키기 위해 마음을 쓰는 대단한 분들이 많이 계심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스무 살에 소방관이 됐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열정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저 어린 감자의 작은 고집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정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소방에서 한 발치 떨어져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글쓰기에 더 마음을 투입하며 지내다 보니, 똑같은 소방서 일을 하더라도 힘을 뺄 수 있었고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시야가 넓어졌고 넓은 시야는 겸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오히려 소방 생활이 더 즐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귀찮기만 하던 체력단련 시간 족구도 먼저 나서서 하자고 할 정도로 즐거워졌고, 담당 업무들에도 진심을 다 할 수 있었으며 출동에 나가서도 부담 갖지 않고 침착해질 수 있었다. 최근엔 의용소방대원의 발표대회를 돕기 위해 파워포인트와 대본을 성의껏 도와드렸더니, 감사하다는 말씀과 꽃선물을 받기도 했다.
참 균형 잡기가 어렵다
그토록 원했던 소방서에 취직했지만 거리를 두며 균형을 맞춰야만 했다. 연애도 가끔은 거리를 둘 줄 알아야(?) 더 돈독해질 수 있고, 가지고 싶은 것을 계속 꼭 움켜쥔다고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글은 그저 내 마음과 삶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되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글을 꼭 남기겠다는 고집으로 난해하고 거북한 글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글을 잘 쓰고파 글 쓰는 법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글을 잘 쓰려면 글을 볼 것이 아닌, 밖으로 나가 세상을 내다보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껴야 했다. 느끼는 바가 있어야 녹여낼 글거리도 있을 테니 말이다.
참.. 소방서도 글쓰기도 뭐 하나 진득하기가 어렵다. 좋다가도 가끔은 놓아주고, 멀어져도 다시 가까워지고.
"넌 책가방 멜 나이에 공기통을 메고 있냐!"
어쨌든 이젠 공기통을 메는 내가 부끄럽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앞으로 무수한 일들에 싫증 냈다 좋아했다를 반복하게 될 내가 참 철부지처럼 느껴지지만, 뭐 괜찮다. 진득하진 못할지언정 그만둔 것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이젠 정말 공기통 멜 나이가 됐나 보다.
나도 모르게 진득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