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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y 21. 2023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_하인리히 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서평쓰기 10

완벽한 복수극의 4가지 조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부제: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가?』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민음사, 2022)  


억울한 이의 원한을 풀어주는 이야기에 우리는 열광한다. 완성도 높은 복수극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①피해자는 평범하고, ②가해자는 치졸할 것 ③복수의 과정은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만큼 명징할 것. ④사건의 동기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포함할 것. 그래야만 작품의 입체감이 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 견해이다. 위 네 가지 조건에 비추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었다.    


카타리나 블룸은 범죄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녀에게는 두 가지 치명적인 특성이 있다. 그것은 ‘충실함’과 ‘자긍심’이다. (94) 그녀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는 깔끔한 스타일이다. ①번 문항 동그라미.      


그녀의 평온한 일상에 비운의 그림자가 내리기 시작했다. 댄스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그의 이름은 괴텐. 하필, 지명수배자다. 그는 몇 달간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블룸과 하룻밤을 보낸 그는 자신은 탈영범이며 수배 중이라 고백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도주를 도운 그녀는 검찰에 연행된다.       

검찰은 ‘괴텐과 댄스파티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는 블룸의 진술을 믿지 않는다. 심문 내내 불쾌감과 수치심을 준다. 대뜸 ‘그자가 너랑 붙어먹었지?’라고 몰아세우는가하면, 블룸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신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를 문란한 여자 취급한다. 그녀의 집에서 수첩, 은행 거래 명세표, 앨범, 여권과 각종 자격증, 이혼 서류, 열쇠, 루비 반지까지 압수한다. 혼자 간직해야 마땅할 내밀한 기억들마저 낱낱이 풀어헤친다. 그런데도 검찰은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들이 붙잡은 논리는 하나다.      


‘수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난잡하다는 이유로 디스코텍에 가기를 꺼리고, 남편이 ‘치근댄다’는 이유로 이혼한 당신이 괴텐이라는 자를 그저께야 알게 되었는데, (중략) 아주 급속도로, 말하자면 비밀스러운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설명하겠소? 당신은 그것을 뭐라 하겠소? 첫눈에 반한 사랑? 열애? 다정함? 거기에 혐의를 완전히 벗겨주지 못하는, 아귀가 맞지 않는 점 몇 가지가 있다는 걸 모르겠소?(59)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하룻밤에 빠지는 사랑을 잘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 이 의문은 제거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사랑이야말로 개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내밀한 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빠지는 거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불쑥. 자신조차 모를 그 감정의 경계에 제삼자가 긋는 선은 의미 없다.       

  

더 큰 문제는 언론이다. 언론은 치졸하면서 폭력적이다. 궤변으로 포장하는 꼴은 분노를 유발한다.    

  

그녀는(블룸 부인), “왜 그런 결말이 날 수밖에 없었을까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차이퉁≫에는 이렇게 썼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듯이,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블룸 부인의 진술을 다소 바꾼 것에 대해 그는 기자로서 “단순한 사람들의 표현을 도우려는” 생각에서 그랬고, 자신은 그런 데 익숙하다고 해명했다. (114)      


차이퉁의 기자 퇴트게스가 이렇게까지 무리하며 거짓을 보도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앞서 언급된 신사와 관련 있다. 신사는 스트로입레더라는 영화배우만큼 유명한 재력가인데, 그는 한사코 거절하는 블룸에게 지속적으로 치근댔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차이퉁≫을 조정하여 블룸의 사회적 파멸에 힘을 보탠다. 이렇게 ②번도 동그라미.      


블룸은 복수를 실행함에 망설임이 없다. 감정에 격앙되지도, 조금의 흥분도 없었다. 그녀는 퇴트게스 기자를 찾아갔다. 그녀 삶을 파괴한 그 인간. 그는 끝까지 추잡하게 굴었다. ‘후회도, 유감도 없었습니다. 그가 섹스나 한탕 하자고 해서, 나는 총으로 탕탕 쏴 주었습니다.’ (152) ③번도 동그라미


자, 이제 한 가지 문항만 남겨두었다. 이 이야기는 개인적 원한에 불과한가, 구조적 문제인가? 당연히 후자다. 그렇다면 ④번 문항 역시 동그라미일까? 내 대답은 NO. 문제는 그녀의 복수가 개인 차원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문제는 구조적이었으나, 그 해결은 구조적이지 못했다. 그녀의 복수는 그저 복수로 끝났다. 변한 것은 없다.       


철두철미한 블룸과 당대의 지식인 블로르나가 의기투합하여 머리를 맞대었다면 어땠을까? 한번 상상해 보자. 몇 년을 기다렸다 퇴트게스를 함정에 빠트린다. 거짓을 일삼는 그의 취재 행태를 이용해 ≪차이퉁≫의 몸통을 저격한다. 최종 목표는 그가 펜으로 파괴한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이 쓰레기 같은 신문을 폐간시키는 거다. 되도록 퇴트게스의 펜이 스스로를 찌르는 방식이면 좋겠다.       


또 다른 문제는 블룸의 총알이 품고 있는 씨앗에 있다. 원한의 씨앗. 다시 한번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자칫 하면 그것이 퇴트게스의 딸에게 심어질 수 있다. 퇴트게스가 특종에 목을 맨 것이 병마와 싸우는 딸의 치료비 때문이라는 서사는 억지스러운가? 하인리히 뵐은 책에 부제를 달고 이렇게 묻고 있다.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그는 답한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고. 그리고 나는 덧붙이고 싶다.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하인리히 뵐은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굴욕이나 모욕을 당한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사회의 억압과 인권 침해에 대해 깨어 있는 양심의 소리를 냈다’와 같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다. 이런 평가가 때론 불편하다. 어느 순간부터 정치적 신념의 한쪽 편에 서서 자신의 믿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존경을 내어주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종종 혐오하는 대상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신이 혐오하는 자들의 모습을 닮곤 한다.) 작품 발행 10년 후 쓰인 작가의 후기는 그녀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금발을 흑발로 감추고, 자식을 갖지 못하게 했다. 나는 묻고 싶다. 진실로 블룸에게 찰나의 후회도 남지 않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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