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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Jun 03. 2023

뿌리를 찾아서 (황금물고기_르클레지오)

세계문학전집 읽고 쓰기 12

뿌리를 찾아서  


『황금물고기』 르클레지오. 최수철 옮김. (문학동네 2012)

 


르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스물셋에 쓴 ,《조서로 <르노도상>을 수상한 천재적 작가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여받았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 미국 등에 체류한 경험은 작품에 훌륭하게 녹아져있다. 『황금물고기』에서 생생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는 이주민, 여성의 삶을 읽고 있노라면 경탄하게 된다. 그는 인종과 문명, 문화를 초월하여 인간 근원으로 내려가기 위해 그것들을 누구보다 진지하고 깊이 있게 고민했다. 황금물고기는 발표와 동시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순수문학임에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충분한 소설이다.             


한 소녀가 유괴 당했다. 살던 땅에서 완전히 뽑혀져 뿌리의 흔적도 남지 않았다. 검은 자루에 담긴 채 덩그러니 세상에 던져졌다. 책의 서두에는 그녀에게 닥친 운명에 경고한다.     


 , 물고기여, 작은 황금 물고기여, 조심하라! 세상에는 너를 노리는 올가미와 그물이 수없이 많으니.’  

    

작은 황금 물고기는 물살에 휩쓸려 유랑한다. 소녀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멜라의 저택  소녀의 이름은 라일라이지만, 진짜 이름은 아니다. 소녀를 매매한 부인 랄라 아즈마가 붙여준 이름이다. 자애로웠던 랄라 아즈마는 소녀에게 글자와 셈을 가르쳤다. 랄라 아즈마가 죽자, 라일라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랄라 아즈마의 아들 아벨은 호시탐탐 소녀를 겁탈하려했고 며느리 조라는 소녀를 죽일 듯 미워했다.     


나를 죽이려는 듯이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그녀(조라)는 다시 소리 질렀다. ‘이 마귀! 살인자!’ 나는 부엌을 빠져나와 그늘진 벽을 따라 네 발로 기어서 마당을 가로질렀다.(28)     

  

여인숙  라일라는 ‘여인숙’에 숨어든다. 그곳은 산파인 자밀라 아줌마와 매춘부들이 함께 뒤엉켜 지내는 곳이었다. 라일라는 그 무렵 생활을 ‘삶의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자밀라는 라일라가 기숙학교에 가도록 돕지만 그곳은 여자아이들 노예 같이 부려 먹을 뿐이다.      


나는 로즈 부인에게서 그다지 배운 것이 없었지만, 나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사실은 분명히 배웠으며, 그 결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결코 그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게 되었다.(51)    

  

조라의 집 여인숙에서의 행복은 짧았다. 다시 조라에게 붙잡히게 된 것이다. 조라는 더 가혹해졌다. 조라의 집에서 알게 된 들라예는 전직 고위 공직자이다. 들라예는 라일라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길 원하였다. 혹시나 조라에게서 벗어날 기회가 될까 기대했지만, 들라예는 탐욕의 얼굴을 신사의 가면으로 가리고 있을 뿐 아벨과 같은 부류였다.         


타브리케트 천막촌 다시 도망친 라일라는 여인숙에서 만난 후리야와 함께 판자촌 생활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가난한 삶을 알게 된다. 억압된 삶에서 벗어나려는 후리야와 프랑스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천막촌에서 라일라는 자기안의 두 세계를 발견한다. ‘글’과 ‘음악'의 세계. 마을 도서관을 발견한 그녀는 닥치는 대로 글을 읽는다. 졸라, 플로베르, 모파상, 카뮈.... 몇 달이고 읽기는 계속된다. ‘리얼리스틱’이라는 이름의 라디오를 통해 지미 헨드릭스, 니나 시몬, 폴 매카트니, 사이먼 앤 카펑클도 듣는다.    

  

프랑스 고난의 여정 끝에 파리에 도착한 후리야와 라일라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극심한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된다. 라일라는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어 일하던 중 들라예에게 당했듯 상류층 인사인 프로메제야 부인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그녀는 더 고약 했다. 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파리의 거리는 폭력과 마약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위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저 여자는 시몬이야. 아이티인이지.” 그녀의 낮고 울림이 풍부하고 뜨거운 목소리는 내 속으로, 내 뱃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녀는 아프리카 단어가 섞인 크레올어로 노래했다.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154)      


나는 내키는 대로 소설책과 역사책과 때로는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말라파르트, 카뮈, 앙드레 지드, 볼테르, 단테, 피란델로, 쥘리아 크리스테바, 이반 일리치를 읽었다. 내게는 모두 똑같았다. 같은 단어에 같은 형용사들이었다. 가슴을 찌르는 것은 없었다. 고통스럽게 하지도 않았다. 나는 프란츠 파농이 그리웠다. (188)     


광범위하고 무작위적이었던 문학과 철학, 그리고 음악에 대한 관심이 그녀 자신의 근원을 향해 좁아지고 있다. 프란츠 파농의 책을 선물 받은 하킴의 할아버지 엘 하즈에게 여권도 선물 받는다.    

   

돌아가시기 전에 할아버지는 이 여권을 네게 남겨놓으셨어. 할아버지는 네가 당신의 손녀 같다고 하시면서, 네가 이 여권을 가지고 다른 프랑스인들처럼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지.(198)      


아메리카 보스턴에 도착했다. 장 빌랑과 사랑에 빠지고 그의 아이를 갖지만, 그에겐 이미 연인이 있다. 장을 사랑하지만, 오롯이 가질 수 없다는 실망감에 마약 밀매상 벨라와의 만남도 지속한다. 벨라와 함께하며 그녀의 삶은 바닥으로 치닫는다. 그녀는 뇌 척수염 앓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뱃속의 아이도 잃는다. 그녀는 자신을 보살펴준 인디언 간호사나다 샤메즈에게 소중히 간했던 프란츠 파농의 책을 준다. 그후 라일라는 실의에 잠긴다. 아이를 잃고 몸 피폐해졌고, 사랑하는 사람 떠났고, 떠나왔다.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음악이다.      


나의 연주는 나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 지하 거주자들, 자블로 거리의 차고에서 살던 사람들, --- 그 모두를 위하여. 갑자기 나는 열병이 앗아간 내 아기를 생각했다. 그래, 그 아기를 위하여, 나의 음악이 지금 그 아기가 있는 비밀스런 장소로 찾아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지금 나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음악에 사로잡혔으며, 따사로운 햇살과 바다의 느린 물결소리를 듣는 맹인처럼 내 얼굴의 살갗 위로 줄달음질치는 음악의 감촉을 느꼈다.(265)           


마침내, 아프리카     


 나는 다른 이름, 다른 얼굴을 가지고 돌아왔다.(270)  그렇다. 라일라는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였다. 중력이 이끌 듯, 어떠한 힘에 이끌려 라일라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 왔다. 그녀의 고향을 상징하던 초승달 모양의 귀걸이는 한 쪽만 남았다. 그러나 그 귀걸이는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그녀는 여행한 길을 되돌아 프랑스와 스페인을 거쳐 모로코와 알제리를 지나 모래톱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으로 왔다. 그곳에서 그녀의 점차 귀는 회복되었다. 도시의 소음이 멀게했지만, 자연 속에 치유되었다. 피아노 연주도, 프란츠 파농의 책도 내려놓았다. 조라, 들라예, 프로메제야 같은 이름도 더 이상 그녀를 묶어두지 못한다.


내 배에서는 벌써 내가 낳게 될, 그리고 자라게 될 아기의 미약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내가 이곳까지, 세상의 끝인 이곳까지 온 것은 그 아기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274)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276)  

    

그녀는 수많은 올가미와 그물을 만났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그녀를 보호했다.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물의 힘이다. 태아를 감싸는 양수의 힘. 물고기가 노니는 강물의 힘. 올가미와 그물은 절대 막을 수 없는 힘. 그 물의 보호를 받아 그녀는 마침내 그녀의 뿌리를 찾았다. 자신의 근원으로 도착하였다. 소녀의 인생을 보며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나를 괴롭히고, 억압하고, 가두었던 모든 것들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제나 좋은 이름과 함께 떠오른다. 랄라 아즈마, 하킴, 엘 하즈, 시몬, 나다 샤메즈와 같은 이름들.     

 

한 인터뷰에서 르클레지오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내 삶을 곱씹을 수 있는 매력 때문이죠.” 그렇다. 주인공의 삶을 읽다보면 내 삶도 곱씹게 된다. 그것이 소설이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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