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지 못하는 디디, 떠나가지 못하는 고고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세계문학전집읽고 서평쓰기 13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 오증자 옮김. (민음사 2018)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
이토록 힘 있는 제목을 가진 책도 드물다. 제목을 읽는 순간 떠올리게 되는 ‘고도가 누구냐’는 물음은 책장을 덮을 때 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연극이 처음 상영된 1950년대 관객들은 대부분 고도를 신으로 해석했다. ‘고도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고도를 만나면 살게 된다.’는 대사는 고도를 신(GOD)으로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베게트는 말했다.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독교를 비틀고 있다. 복음서 중 구원받은 도둑 이야기를 누가만 써 놓았는데, 어째서 나머지 세 사람이 아닌 누가만 믿는가? (에스트라공) 사람들이 다 바보니까 그렇지(17). 예수에 대해 언급하며 ‘하지만 예수가 살던 곳은 따뜻하고 날씨도 좋았지! 그래, 십자가에도 빨리 못 박혀 죽었고’(89) 십자가를 대하는 자세가 불손하다. 결정적으로 고도는 아이를 때린다.
(블라디미르) 넌 고도 씨 밑에서 일하고 있냐? (소년) 네. (블라디미르) 그래, 무슨 일을 하지? (소년) 염소를 지켜요. (블라디미르) 고도 씨는 너한테 잘해주냐? (소년) 네. (블라디미르)때리진 않니? (소년) 아뇨, 난 안 때려요. (블라디미르)그럼 다른 사람은 때리고? (소년)제 형은 때려요. (블라디미르) 그래, 네 형은 뭘 하냐? (소년) 양떼를 지켜요.(86)
부조리하다. 어째서 형만 때리는가? 이 장면은 자연스레 2막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로 연결된다. 넘어진 포조를 에스트라공이 아벨! 하고 부르자 포조가 이쪽이오! 대답한다. 다시 부른다. 카인! 포조가 또 다시 이쪽이오! 대답한다. 염소와 양을 지키는 두 소년은 카인과 아벨이다.
베케트는 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에 참여하였고, 나치를 피해 숨어 지내며 작품을 집필했다. 그 시기 유럽의 지식인들은 하나 둘 신과 결별하기 시작했다. 학생 때 나는 ‘신은 죽었다.’를 삶에 대한 냉소 또는 허무주의의 결과로 치부했었다. 그러나 문학을 통해 알게 된다. 신과의 결별은 모든 믿음이 무너지고, 인간성이 상실되고, 인과율이 고장 난 삶의 부조리 속에서 생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을 유일한 출구였음을.
그리하여 대관절 고도란 누구란 말인가! 베케트는 연극 연출자가 “고도가 누구이고, 무엇을 나타내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것을 안다면 작품 속에서 얘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여기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이다.”
밤이 밀려와 우리에게 달려든단 말이오.
고도가 누구인지 탐문하는 것은 그만두자. 어쩌면 고도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신기루 같은 것 아닐까? 변하지 않는 사랑. 걱정 없는 삶, 영원한 생명 같은 것 말이다. 그보다 베케트가 말한 대로 인생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
포조는 넓은 땅을 소유한 자본가인데 1장에서 그는 닭다리를 뜯으며 교만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목줄에 묶인 짐꾼 럭키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모욕을 준다. 그랬던 그가 2막에서 장님이 되어 등장한다. 짐꾼의 목줄에 의지해야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중략)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150)
포조의 말대로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는다. 어느 날 장님이 되기도 한다. 살면서 갑작스런 부고를 들을 때가 있다. 몇 달 전 40대 중반의 건강했던 동료가 하늘로 떠났다. 운동 중에 뇌경색이 왔다. 술이나 담배는 일절하지 않던 아이 둘의 엄마였다. 신앙심이 깊고 성실한 천상 사회복지사의 죽음은 생의 무력함을 경험케 했다. 한낱 인간으로서는 느닷없이 달려드는 밤을 막을 재간이 없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목을 매거나 고도를 기다리는 것.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처럼 대부분의 우리는 후자를 선택한다.
우리 헤어지는게 어떨까?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걸핏하면 헤어지자 하면서도 서로를 극진히 대한다.
에스트라공이 없어진 것을 알자 비통한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고고! 그는 거의 뛰다시피 무대를 우왕 좌왕 (123) 그는 두다리 사이에 머리를 박고 마치 자궁 속의 태아와 같읕 자세를 취한다. (블라디미르) 가만있어 봐. 자장 자장 자장. 에스트라공, 잠이 든다. 블라디미르는 저고리를 벗어 에스트라공의 어깨를 덮어주고 (118)
불행한지 아닌지도 모르는 삶(87), 이 모든 혼돈(134), 이 지랄(158)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은 둘이 나누는 시시껄렁한 대화와 흉내놀이, 체조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서로를 껴안으며 느끼는 온기이다. 그래서 헤어지지도 못하는 디디, 떠나가지 못하는 고고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밤을 맞이하게 된다. 하루하루가 한밤중일 동료의 남편과 남아있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나는 신과 아직 결별하지 않았으니, 그를 위해 마음껏 기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