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세계문학 읽고 서평쓰기17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2022)
벌써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불과 1년 전만해도 우리는 꽁꽁 묶여 있었다. 그놈의 바이러스 때문이다. 이제는 바이러스가 종식되어 대부분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스크 없는 얼굴에 익숙해졌고, 해외도 다니기 시작했다.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다. 우리 할머니. 돌아가시기 1년 전 요양원에 들어가실 때 한번 찾아뵙고 면회도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뵙게 될 줄은 몰랐다.
김연수 작가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고 나자 무엇인가 쓰고 싶어졌다고 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난주의 바다 앞에서」,「진주의 결말」,「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은 22년에, 「엄마 없는 아이들」은 21년, 「다시,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는 20년에 썼다. 그리고 2014년에 발행된 작품 2편도 포함되었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와 「사랑의 단상2014」이다. 두 작품의 모티브는 동일한데, 그해 4월에 겪은 세월호 사건이다.
작가가 9년 만에 발행한 단편집이라고 한다. 책 마지막에 삽입된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는 한동안 괴로운 마음에 시달렸단다. 슬럼프를 겪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두운 시간’이 ‘빛으로 가득 찬 이몸’을 만든다는 메리 올리버의 시구처럼 고통의 시간을 지나서야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했다. 어두운 시간을 지나 작가가 도달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여덟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 상실의 아픔에 휩싸여 있다. 연인과 동반자살을 약속한 지민에겐 자살한 엄마에 대한 상처가 있고, 은정은 아홉 살 난 아들이 악성종양으로 오년의 투병 끝에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진주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었고, 결혼도 포기하고 치매 앓은 홀아버지를 모셨다. 사랑하는 아내 정미를 잃은 남편과 친모에게 버림받은 혜진, 누이를 잃은 오빠까지 온통 소중한 사람을 잃고 아파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까지. 그해 봄을 어떻게 잊겠는가? 무심한 바다 앞에서 전 국민이 망연자실했던 그 봄을...
불로장생의 알약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태어났기에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 필멸하는 존재에게 죽음은 일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숱한 타자들의 평범한 죽음이 내 가족의 일로 닥친다면, 내 자식에게 벌어진다면 어떠할까? 가늠할 수 없는 괴로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앞길이 창창한 대학생 지민이 죽기로 결심한 것. 은정이 자기만의 섬에 고립된 것. 사랑하는 이를 잃고 앓는 열병들... 「진주의 결말」에서처럼 누군가의 고통을 자기식대로 해석해 더 큰 상처를 주는 일도 겪는다. (허약하여 단명한 남편을 만난 박복한 여자에게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정서가 아직도 남은 것일까?) 상처받은 진주의 자조적인 질문은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p.88)
자, 이제부터 중요하다. 굴곡진 서사를 가진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다. 비극이야 널리고 널렸다. 매주 금요일 11시 방영하는 <그것이 알고싶다>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사회에 벌어지는 온갖 기이한 사건들. 문제의 본질은 비극 속 주인공들의 삶을 어떻게 설명해내는가이다.
‘세상은 경이로워’라고 말하는 것과 ‘세상은 품에 안을 때 경이로워’라고 말하는 건 다르다. 세상은 품에 안을 때 경이롭다는 말은 경이로움이 내게 달린 문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안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p.272 <작가의 말> 중)
김연수는 고심했다. 비극의 주인공들이 세상을 안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신유박해 때 자식을 살리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 정난주 사건처럼 역사적 장면을 각색하는가 하면 살아 있는 것이 느껴진다면 죽어가는 것이고, 상실이란 잃어버림을 얻는 것이라는 피에로의 재담을 끌어오기도 했다. 이미 사망한 딸과 아들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들과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을 역행하여 사는 이야기까지... 고심의 흔적이 보이는 이야기들은 솔직히 말해 너무 옳아서 간지럽기도 했고, 그럼에도 와 닿기도 했다.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이 특히 와 닿았다.
사랑하는 아내 정미를 잃고 고비사막에 간 그는 그곳에서 아내를 추억하고, 삶의 의미를 되짚는다. 정미는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에서 읽은 일화를 꺼낸다. 후지와라가 낡은 버스를 타고 사막을 지나는데 모래 폭풍을 만났다. 처음 겪는 살인적 더위와 굉음에 질겁한 후지와라는 침착히 얼굴을 숙이고 기다리던 인도 사람들을 보고 놀란다. 모래 폭풍을 자주 겪은 사막인들은 폭풍이 곧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태연했던 것이다. 그때 인도인 운전수가 말했다.
‘모두 지나갔어. 다 끝났어(가타무 호갸)’
정미는 그 이야기를 읽고 깊은 위로를 얻었다. 자신은 비관주의자이지만,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순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마치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인도 사람들처럼 말이다.
지구의 나이 사십육억 년을 일 년으로 치면 한 달은 약 사억 년, 하루는 천삼백만 년, 한 시간은 오십오만 년이 된다.… 그리고 현대 문명은 자정 이 초 전에 시작 됐다.(p.118) 정미는 새별별처럼 짧은 시간 동안 지구에서 살다가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사라졌다. … 지구상에 존재했던 다른 모든 생명들에게 그랬듯 그들의 인생에도 시간의 폭풍이 불어닥쳤고, 그렇게 그들은 겹겹이 쌓인 깊은 시간의 지층 속으로 파묻히고 있었다. (p.127)
나의 할머니는 일곱의 자식이 있다. 그 중 내 아버지는 첫째인데 그 뒤 딸을 다섯이나 내리 낳았다. 일곱째도 딸이면 이불 속에 엎어놓으려 했다고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딸을 낳으면 대역죄인이 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단다. 지금으로선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다행히도 막내는 아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소문난 미남이었고, 할머니는 박색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늘 배가 불러있었고, 동시에 얼굴에는 멍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엔 늘 생각했다. 내가 아빠를 낳아 다시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비얀 자그에서 그가 본 것」을 읽은 후엔 이런 생각을 했다. 시간을 되돌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면, 할머니가 겪은 모든 세월을 위로하고 싶다. ‘할머니, 모두 지나갔어. 다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