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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r 12. 2024

권력구조의 지도 속 인간 군상들

『염소의축제1,2』마리오바르가스요사 세계문학읽고쓰기19

권력구조의 지도 속 인간 군상들       


『염소의축제1,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문학동네 (2014)        

  

트루히요는 실존인물이다. 북아메리카 카리브 제도의 작은 섬 도미나카 공화국에서 무려 32년간(1930~1961) 독재 정치를 펼쳤다. 도미니카의 관료와 시민들은 그의 통치에 완전히 감염되어 병들어 있었다. 반트루히요 세력이 목숨을 걸고 독재자를 암살하는데 성공한 이후에도 그들이 자유를 되찾지 못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국민들은 독재의 그늘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 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그 지점에 흥미를 느꼈다. 감옥의 벽이 뚫렸지만, 어째서 죄수들은 여전히 그곳에 머무르려하는가?      


작가는 시간을 거슬러 올랐고, 기억을 더듬어 내려갔다. 실존 인물인 트루히요와 권력에 붙어먹은 동조자들 그리고 반대편에서서 인생을 걸고 투쟁한 반트루히요 세력의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 독재국가의 권력구조를 해부했다. 동시에 허구의 인물 우라니아를 창조했다. 무고한 어린 양 우라니아와 평범한 시민인 그녀의 친지들이 입은 정신적 상흔을 들추어냈다. 그로인해 독재라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사람들을 감염시키는지,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의 몸속에 남아있는지 깨닫게 했다.      


소설은 세 가지 관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서술된다. 먼저, 독재자 트루히요의 시점에서는 독재자의 세계관과 인격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굉장한 카리스마와 자기 관리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우상화하기 좋은 완벽주의자이다. 그러나 한편, 치욕스러운 질병과 싸우는 늙은이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나라가 망하게 생겼지만, 그보다 더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오줌이다. 오줌이 흐를 때마다 자기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다. 자신의 건재함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린양의 희생이 필요했다.      


우라니아는 35년 전 불과 14살 때 늙은 독재자에게 처녀성을 잃는 고통을 겪어야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성공한 학자지만 마음은 고통과 분노로 곪아 있었다. 소녀를 재물로 받친 장본인이 자신의 존경하고 사랑했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는 없는 것과 같이 되어버렸다. 비워진 가족자리를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끔찍한 일 이후 35년 만에 고국의 땅을 밟은 그녀는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된 병들고 늙은 아버지를 만난다. 그리고 아버지를 증오하게 된 비밀을 친지들에게 차츰 풀어놓기 시작한다.     

  

마지막 반트루히요 세력들은 저마다 깊은 원한을 품고 있다. 트루히요의 사악한 본모습을 본 그들은 그를 제거하는 것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준비해왔다. 트루히요와 암살자들 그리고 우라니아는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서 있지만 하나의 구심점에 매여 있다. 그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염소의 축제’이다. ‘염소’는 트루히요의 별명이다. 그의 왕성한 성욕을 조롱하며 비웃는 말이다. ‘축제’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트루히요에게 축제란 우라니아와 같은 소녀를 통해 얻는 쾌락의 밤을 뜻하고 반트루히요 세력에게는 염소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완전히 유혹 당했다. 읽는 내내 긴장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새로운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여 초 집중을 요했다. 많기도 많고 길기도 긴 이름들에 익숙해질 즈음엔 그들 사이의 겹겹이 나뉘어져있는 관계의 층위에서 감추어진 인간의 본성이 발굴된다. 인간의 악함과 약함, 최후의 승자에게 찾아 낸 교훈 뒤엔 비열함이, 지식으로 쌓여 있던 자들의 포장지를 걷어 내자 저열함이 발견되었다.      


그들 중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인물은 단언컨대 푸포 로만 장군과 카브랄 장관이다. 푸포 로만은 트루히요 집안과 혼인함으로 국방 최고 책임자로 승진한 인물. 그러나 트루히요의 총애를 받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시와 천대 속에 살았다. 그는 근육으로 다져진 몸을 소유한 군인이었으나 무능했다. 손대는 사업마다 망하기 일쑤였다. 반트루히요 세력은 그가 가진 지위를 믿었다. 암살에 성공한 후, 우왕좌왕하던 와중에도 믿을 것은 푸포 뿐이었다. 그가 권력을 인수받을 것이고 국민들은 독재자의 죽음을 환영하리라 믿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마치 마취된 듯 아무 생각도 행동도 하지 못한 채 트루히요 친위부대에게 붙잡혔다. 그 때문에 반군세력도 몽땅 잡혀버렸다. 자결을 하거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은 명예롭게 죽었지만, 생포되면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카브랄 장관은 끝까지 살아남았지만, 가장 추한 최후를 맞이했다. 트루히요의 총애를 받던 그는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정권에서 내쳐지게 되자 두려움에 휩싸인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외면당한다. 마지막 방책은 자신의 딸을 재물로 받치는 것이다. 처녀성을 깰 때 쾌락을 느끼는 늙은 권력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가 가진 유일한 도구는 어린 딸 뿐이었다. 그  대가로 유일한 혈육을 35년 동안 만날 수 없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찾아온 딸은 온갖 모욕을 퍼붓고, 그의 비밀을 폭로했다. 그의 명예는 산산조각 났다.       


어째서 이들은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이 권력구조의 아이러니에 대해 우라니아의 입을 빌어 깊은 통찰이 담긴 답을 내놓는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나요. 아빠? 권력의 자리에 있다는 환상을 갖기 위해서였나요? 가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출세는 부차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빠나 아랄라, 피차르도,치리노스,알바레스 피나,마누엘 알폰소는 스스로 더러워지고 싶었던 거예요. 트루히요는 당신들, 그러니까 침을 맞거나 학대당할 필요가 있고, 타락해야만 성취했다고 느끼는 그런 사람들의 영혼 밑바닥에 있는 마조히즘적 소명의식을 일깨워 주었던 거지요. (p.100)      


그녀가 일갈한 마조히즘적 소명의식이란 역사의 아이러니를 설명함과 동시에 개인의 삶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치고 있다. 마조히즘이란 그 본디 속성이 ‘자신에 대한 선택의 권리를 포기하여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동적인 삶의 자세’에 있다는 분석은 『염소의 축제』 속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읽어내는데 도움을 준다.      


모든 축제가 끝나 폭죽과 총성이 멈추고, 낭자한 피의 보복도 끝나고, 긴 세월이 흐른 후 어느 깊고 고요한 밤에 울리는 소녀의 고백은 인류가 그려온 권력구조의 지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독서모임에서 『염소의 축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유독 꼬리의 꼬리를 물고 대화가 이어진다. 도미나카 공화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는 지구 반대편 우리의 현대사와도 참 닮아있다. 인간의 속성이 같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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