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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r 20. 2024

행복한 사나이 요하네스

『아침 그리고 저녁』욘포세 / 세계문학 읽고 쓰기 20.

행복한 사나이, 요하네스       

    

『아침 그리고 저녁』 욘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2023)     


『아침 그리고 저녁은』 100페이지 조금 넘는 짧은 산문으로 익숙한 구어체의 반복, 담담한 묘사와 서술로 채워져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 긴장감을 느끼며 책을 펼쳤지만, 의외로 술술 읽혔다. 내용도 간단하다. 1부에서는 아들 요하네스가 태어난 날의 일들이 아버지 올라이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요하네스의 평범한 아침으로 2부가 시작된다. 찌뿌듯한 몸을 일으켜 늘 그랬듯 커피를 마시고, 산책에 나서지만 뜻밖의 인물들을 만나며 자신의 일평생을 회고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을 담담하고 고요하게 받아들인다.      


막상 책을 덮고, 글을 쓰자니 막막해졌다.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흐릿하다. 작가의 의도도 아리송하다. 나는 죽음과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나이인 데다, (평균수명 80으로 보자면 한가운데 서 있다.) 한적한 바닷가에 서서 과거를 회상하기보다는 당장의 삼시 세 끼를 위해 싱크대 앞에서 종종거리는 시간이 많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저녁밥을 지으며 그릇들의 달그락대는 소리, 채소를 썰고, 국이 끓어 넘치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겐 아침과 저녁이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은유겠지만, 나에게 아침과 저녁은 블랙퍼스트와 디너로 들린다고. 두 가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으면 무로 돌아가듯이 삼시세끼 힘을 다해 만드는 음식도 다 배설물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니 마찬가지 아닌가?      


아버지 올라이의 간절한 기도 속에 요하네스는 탄생한다. 그런데 올라이, 이 남자의 기도를 들어보니 참 두서가 없다. 이제 막 태어나려는 아이를 보고 신의 축복이라 감명을 받다가, 출산 중 부인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신은 전지전능하다고 고백하며 안절부절이다. 그러다 돌연 신은 존재하긴 하지만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을 뿐이라고 일축한다. 신은 세상을 훌륭하게 창조했지만, 창조과정에서 방해를 받아 사탄의 지배도 받게 되었다고. 그래서 결국 자신은 무신론자란다. 무신론자답게 그는 아이의 탄생을 앞둔 감상 역시 어둡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p.16)       


아버지 올라이의 말대로 요하네스의 마지막은 혼자다. 아내와 친구들은 이미 죽었고, 자식들은 각자의 삶대로 바쁘다. 혼자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늙어 불편한 몸만이 그에게 남았다. 그러다 조용하고 고요하게 죽음이 찾아왔고, 그의 영혼은 한결 가볍고 편안하게 움직이며 그리웠던 이들과 조우한다. 먼저 간 친구 페테르와 부인 에르나를 보니 반갑고 애틋하다. 막네 딸 싱네는 침대에서 잠을 자다 돌아가신 아비를 보고 읇조리며 반복한다.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러니 요하네스는 참 행복한 사나이이다. 그는 태어난 곳에서 자신에게 주워진 생을 충실히 살아냈고, 바로 그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축복은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나 낯설다. 우리는 대부분 태어나 살아온 집이나 동네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곳은 이미 개발되어 사라졌다. 자신의 고향 집이 아직 멀쩡한 사람이라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행운은 누릴 수 없다.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우리의 삶도 요하네스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의 허락으로 하루 식탁이 정해지는 삶. 근면함과 성실함만 있다면 그 외의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자연의 뜻에 맡겨져야만 하는 삶. 지능이나 기술, 자본으로 줄을 세우지 않는 삶. 실직의 두려움이나 노후 빈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요하네스, 그는 참 행복한 사나이이다. 흙으로 돌아가며 제일 친한 친구의 배웅도 받고, 딸 싱네의 눈에는 반짝거리는 빛으로 가득하니 말이다.      


요하네스가 페테르와 함께 탄 고깃배가 파도 속으로,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는 길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곳은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고 했다. 만약 죽음을 통해 다다른 곳이 모든 영혼이 같은 값으로 매겨지면서도 다른 빛으로 빛나는 곳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그곳은 꿈꿔볼 만한 곳이 아닐까?   


한기도 들지 않을 거야, 그가 말한다
그렇군, 요하네스가 말한다
하지만 에르나, 에르나도 거기 있나? 요하네스가 묻는다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그렇다면 마그다, 내 누이도, 거기 있나? 요하네스가 묻는다
그럼 물론이지, 페테르가 말한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었는데 말인가, 요하네스가 말한다
그래 그렇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그럼 그렇고 말고, 페테르가 말한다(p.133)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라고 이 문장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이 말을 해야 할 때가 온다면, 주저하여 놓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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