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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r 28. 2024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너무 시끄러운 고독)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세계문학읽고쓰기 21.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런 이야기를 사랑한다. 커다란 세상을 압축해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 예를 들면 이런 문장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예수가 미래로의 전진이라면 노자는 근원으로의 후퇴이었다’ (p.59)      


한탸는 35년째 지하실 책속에 파묻혀 폐지를 압축한다. 폐지 압축이야 녹색,붉은색 버튼을 누르면 끝날 단순한 작업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머릿속에서 그는 세상을 두 쪽으로 쪼개 예수팀과 노자팀으로 나누고 실컷 싸움을 붙여댄다. 그러니 그의 고독은 시끄러울 수밖에!      


모든 공상가들, 애서가들, 물질의 만족보다 정신의 충족을 선호하는 이들은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한탸는 그런 이들의 국가대표이니 그에게 농도 짙은 애정을 쏟게 된다. 한탸는 지하실에서 생쥐들과 뒹굴며 일한다. 지저분하고 고된 노동이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쓰레기로 취급되며 나뒹구는 클래식들 『파우스트』나 『돈 카를로스』 혹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책들을 발견하고 읽는 일을 사랑한다.  글귀들을 낚아채 캐러멜처럼 빨아먹는다는 말을 하는데 웃음이 나온다. 그 말이 참 사랑스러워서.      


지식으로 만든 철갑으로 무장한 것 같은 한탸지만  옛사랑의 추억이 가득하다. 옛 사랑을 회고하는 과정도 한탸스러운데,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내 영혼에 깃든 도덕률을 곱씹다가 사랑은 지고의 율법이며, 이런 사랑은 연민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벼락처럼 내리 꽂힌다. 그 순간 한때 스쳐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옛 사랑을 떠올린다. 히틀러와 히틀러에게 경례를 붙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여자가 게슈타포에서 붙잡혀 아우슈비츠의 어느 소각로에 태워진 비극 속에서 하늘은 결코 인간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 바로 연민과 사랑이 존재한다고 이 불쌍한 남자는 믿고 있었다. 물론, 이름을 잊을 만큼 기억은 사라졌지만!       


한탸의 믿음이 무색하게 세상은 여전히 인간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  압축기와 함께 은퇴하여 영원히 책과 함께 하겠다는 소망은 산산이 부서진다. 그의 압축기보다 몇 배로 성능이 뛰어난 거대 압축기가 등장했다. 함께 등장한 젊은 노동자들에게 책은 그저 ‘재활용처리 대상물’이다. 책속의 문장은 거들떠보지 않고, 무심히 책의 표지를 뜯어낸다. 그러니 작업능률이 대단하다. 내장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느끼는 건 오로지 한탸 뿐.     


결국 그는 한직으로 물러난다. 책무더기 속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그는 백지 꾸러미 담당자가 되었다. 굴욕적이다. 절망에 빠진 한탸는 원망한다.      


내가 신봉했던 책들의 어느 한 구절도, 내 존재를 온통 뒤흔들어놓은 이 폭풍우와 재난 속으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P.113)      


그는 백지를 꾸리느니 자신의 지하실에서 종말을 맞기로 결심한다. 과거 그는 탈무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결국 그 스스로 올리브 열매가 되었다. 그의 엄마가 사족을 못 쓸 만큼 좋아했던 무가 되어 (엄마의 유골을 밭에 뿌려 무를 심는다) 그 무를 맛있게 먹었듯이 말이다. 잠시 생에 빠진다. 이 기괴한 장면들 가운데 무엇이 인간적이고, 무엇이 인간적이지 않단 말인가?      


소크라테스는 읽지 않으면서 그리스로 휴가를 떠나는 것은 인간적이지 않은 것인가? 기술의 발전으로 거대한 압축기를 발명한 것은 인간적이지 않은 것인가? 한탸의 사랑스러움, 그에게 느껴지는 동질감과 동정심, 그의 숭고한 정신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과연 인간다운가? 지하실에 갇혀서 정신의 세계 속에서 과거로의 후퇴만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그의 죽음에 승리의 깃발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죽음은 지식의 한계이자 정신의 자살이다. 그의 죽음에서 유일하게 건질 수 있는 것은 일론카! 바로 연민과 사랑. 그 세계는 책으로는 절대 깨달을 수 없는, 가 닿을 수 없는 그런 세계.  


책들에 둘러싸인 나는 책에서 쉴새없이 표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책들이 단합해 내게 맞섰는데 말이다. 반면 책을 혐오한 만차는 영원토록 그녀에게 예정된 운명대로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여인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돌로 된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했다. (P.104)      


결국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그 진리는 책속에 갇혀 있진 않을게다. 앞으로 쓰일 책들과 발명될 기계들에 가깝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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