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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pr 24. 2024

고양이는 누구이며, 쥐는 누구인가?

세계문학읽고쓰기 22. 귄터그라스『고양이와 쥐』를 읽고

고양이는 누구이며, 쥐는 누구인가?      

      

귄터 그라스의 『고양이와 쥐』는 『양철북』,『개들의 시절』과 함께 단치히 3부작이라 불린다. 단치히는 독일이 세계 1차 대전에서 패한 뒤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국제 연맹에 의해 세워진 중립도시이다. 1939년 히틀러가 단치히의 반환을 구실로 폴란드를 침공하며, 단치히 자유시는 세계 2차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곳에서 귄터 그라스는 1927년 태어났다. 『고양이와 쥐』의 배경은 그라스의 경험과 기억의 산실이며, 작품 속 인물들의 고백은 그라스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는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여받았다. 나치즘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전후 독일 및 전 세계의 비이성적 광기의 실체를 문학의 힘으로 해부하고 고발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같은 작품을 통해 그라스가 추구했던 것은 인간성의 회복일까? 그래서인지 그는 2006년 80세의 나이에 십대 시절 나치 친위대에 복무하였음을 고백한다. 너무 늦은, 비겁한 고백이라는 비판과 지식인의 용기라는 옹호사이에 한동안 논쟁이 격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의 늦은 고백에 대해 자서전에 이같이 밝혔다.    

 

어떻든 나는 수 십 년 동안 그 단어와 두 글자(SS, 즉 친위대를 의미)를 고백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내 젊은 날의 어리석은 우쭐함으로 받아들였던 것을 나는 전후에 점점 커져가는 부끄러움 때문에 침묵하고자 했다. 하지만 부담감은 남아있었고, 그 누구도 그것을 덜어줄 수 없었다. (『양파껍질을 벗기며』 귄터그라스 민음사 127쪽)         


결과적으로 노년의 고백으로 인해 작품은 더 깊어졌다. 의미와 해석이 풍성해졌다. 인물들의 행동과 내면 이를테면 고양이와 쥐, 울대뼈와 성모마리아 같은 알레고리들 사이에 숨겨놓은 비밀들이 한층 깊은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말케>

작품의 주인공인 요하임 말케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 사고로 부친을 잃고 반고아가 된 말케는 병치레가 잦아 1년 유급할 정도로 유약했다. 2차 대전이 시작하던 해, 열네 살이 된 말케는 각고의 연습 끝에 동급생에 비해 월등한 잠수실력을 갖추게 된다. 공부도 꽤하고 성격도 무난했다. 평범한 말케는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그에게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커다란 울대뼈와 큰 성기를 가졌다는 것.    

  

<말케의 울대뼈>

말케는 유난히 큰 울대뼈가 콤플렉스다. 그것을 가리기위해 온갖 도구를 동원한다. 드라이버를 매달거나 털술을 걸고 넥타이를 끌어올린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럴수록 친구들은 그의 울대뼈에 주목한다. 그의 울대뼈는 그에게 뿌리 깊은 열등감이 되어 자리 잡는다.        


<고양이 사건>

그의 울대뼈에 대한 인식은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말케는 사소한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난 그걸 일종의 병이라고 생각했거든. 전혀 특별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더 많이 튀어 나온 사람들도 몇 명 만나봤는데, 별로 신경 쓰지 않더라. 그 고양이 사건이 시작이었지.…… 그 회색 괴물이, 아니 까만색이었나. 그놈이 내 목으로 덤벼들었더랬지. 아니면 너희 중 누가, 아마 실링이었겠지, 그 녀석이라면 그럴 만하지, 고양이를 들어서.... 뭐 다 지난 일이지만(p122)        


사실 고양이 사건은 친구들이 벌인 장난이었다. 그가 졸고 있을 때 유난히 큰 울대뼈가 마치 쥐처럼 보여 고양이가 덥치려던 것처럼 꾸민 것이다. 그러나 말케에게 회색 고양이는 괴물과 같은 공포였고, 그 기억에 평생을 사로잡혔다.      


<성모 마리아>   

말케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다. 다른 십대들처럼 여자애들에게는 관심도 없다.      


말케에게 여자라면 카톡릭의 동정녀 마리아뿐이었다. 오로지 그녀를 위해 그는 그 모든 것, 그가 목에 걸고 다니며 내보인 것들을 마리아 성당으로 끌고 다녔다. 잠수부터 훗날의 좀더 군사적인 성과까지 그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해서 한 일이었거나 어쩌면, 내 말과 모순될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울대뼈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한 일이었으리라.(p.47)       


그렇다고 그가 신앙심이 깊은 것은 아니다. ‘물론 신을 믿지 않아. 민중을 어리석게 하는 속임수, 오로지 마리아뿐이야. 결혼하지 않겠어.’라며 오로지 마리아에게만 맹목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런 그를 신부가 우상숭배라고 꾸짖는다.      


<철십자훈장>

모범생이고, 순수했던 소년 말케는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를 핑계 삼았고,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자 인생의 목표를 훈장으로 정한듯하다. 그는 학교에 강연을 온 잠수함장의 철십자훈장을 훔친다. 그 일로 그는 학교에서 퇴출되고, 몇 년이 흐른 뒤 직접 그 훈장을 받기 위해 나치 친위대에 입대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다. 노력 끝에 철십자 훈장을 손에 쥐지만 그는 영웅은커녕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상관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에 휩싸인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 그는 부대에서 그가 세운 공에 대해 자신의 후배들에게 연설하고 박수받길 꿈꾸지만, 교장선생은 그의 명예롭지 못한 과거의 행적을 이유로 거절한다.       


<필렌츠>  

부대를 이탈한 말케는 자신이 어린 시절 발견한 잠수함 속 해치로 들어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곁에는 친구 필렌츠가 있었지만, 그를 막지 못한다. 필렌츠는 이 이야기를 이끌어온 화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이야기는 필렌츠의 시선으로 회상된다.      

필렌츠와 친구들은 말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말케는 말수가 적었고, 시선을 끄는 행동을 하지 않지만, 필렌츠와 친구들은 끊임없이 그를 주시하며 그를 부추겼다. 2차 성징이 빨라 울대뼈가 도드라지고, 또래보다 성기가 빨리 커졌기 때문일까? 필렌츠와 친구들은 말케에게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혐오의 시선을 보내다가 뛰어난 잠수실력을 보일 때나 물건을 훔치는 호기로운 행동을 하면 위대하다고 칭송하고 띄어준다. 앞에서는 친구처럼 굴다가 뒤에서는 빈정거린다. “쟤 왜 저래?”, “자식, 머리가 돈 거 아닐까.” “쟤네 아버지 돌아가신 거랑 상관이 있을지도 몰라.” 돌아가신 친구 아버지를 들먹거리다니, 친구가 맞긴 할까?      


사실 모든 이야기의 시작, 고양이 사건은 필렌츠의 장난이었다. 필렌츠가 말케에게 고양이를 던진 것이다. 그러므로 말케를 비극으로 이끈데 필렌츠는 죄가 없는가? 누가 고양이이고 누가 쥐인 건가? 『고양이와 쥐』는 말케가 맹목적인 믿음으로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과정을 통해 나치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과정을 풍자하고 비판했다. 동시에 방관자 필렌츠를 통해 그 친위부대의 용사가 길러지기까지의 과정을 방관하고 동조했던 소시민들에게도 죄과를 묻는다.      


지나간 역사를 들추어 진실을 밝히는 일, 비록 작가가 과거에 저지른 오행에서 시작되었을 지라도, 진실을 마주하게 했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돌아본다. 우리는 권력의 그늘에 숨어있지는 않은가? 소시민이라는 방패 뒤에 침묵하지 않는가? 다른 이름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말케를 추종하고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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