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시전 33화]
일행이 모두 아지트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모두 축제 분위기였지만, 홀로 전투에 참석하지 못했던 이마리만은 심드렁하였다.
조금 전 전투에서 본인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환영을 죽인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모두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후 마리의 존재를 인식한 원정대는 순간 침묵하였다.
때문에 모처럼 찾아온 기쁨과 희열을 마음속에 담아둔 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함께하지 못한 마리의 존재가 부담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보상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어두운 침묵을 깨고 누군가 소리쳤다.
[보상, 보상 봅시다]
그 말에 함께했던 원정대원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보상을 확인하였다.
이번에도 보상은 2가지였다.
첫 번째는 오리스 감옥의 열쇠 그리고 두 번째는 타임슬롯이었다.
[이게 뭐야?] 모두 같은 반응이 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일행들은 복잡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첫 번째 오리스 감옥의 열쇠는 90층 오리스의 감옥 문을 열 때 사용하는 듯 보였지만, 타임슬롯은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열쇠는 그들이 확실히 현실로 복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최종 보상은 어떤 것이란 말인가 모두가 같은 의문을 하고 있을 때 함께하지 못했던 이마리는 더욱 심란해하고 있었다.
열쇠를 목격하는 순간 마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슬롯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1주일 전, 1달 전, 1년 전, 10년 전! 와 이거 뜻밖에 대박인데….]
기태형 님이 슬롯에 적혀있는 이동 가능한 기간을 보며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10년 전이면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 같은데... 정말이면 이거야말로 최고다. 그러면 난 뭐 하나 하하하!]
벌써 10년 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기뻐하며 들떠있었다.
곧이어 정확한 정보를 위해 확인을 해보니 이전에 들어보았던 귀에 익은 음성이 사용설명을 해주었다.
[오리스 감옥의 열쇠는 퇴마의 탑 90층에 갇혀있는 오리스를 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열쇠입니다. 재질은 뼈이며 죽은 자의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들어졌습니다.]
모두의 예상과 일치하자 이번엔 타임슬롯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타임슬롯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특별한 여행 장치입니다. 사용 횟수는 1회이며 사용 후 증발합니다. 죽은 자의 심장과 검은 은 단검을 이용하여 슬롯을 회전시킬 수 있으나 보상은 렌덤으로 이루어집니다.]
[뭐야 그러면 결국 사람을 죽여야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뭐 이따위가 다 있어]
화가 난 기태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슬롯을 내동댕이치며 버럭 화를 내었다.
이제 마지막 90층만 남은 상황인데 어처구니없는 보상에 기가 막히다는 듯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시스템을 욕하고 있었지만 이마리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준범은 생각했다 도대체 왜? 이 타이밍에 저런 걸 주었을까?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준범이 마침내 혈맹원을 향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제가 보기엔 자중지란을 일으켜 90층 도전 자체를 못하게 하려는 시스템의 장 난질 같아요.]
[현재 우리 인원으로 90층 공략을 하려면 단 1명의 결원이라도 생기면 힘들어진다는 것을 시스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슬롯은 아무리 봐도 미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맞아요 저거 하려고 사람을 죽여! 말도 안 되지! 설마 우리 중 그럴만한 인격의 사람들이 있나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주역이 목소리를 높이며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니 다시 한번 강조하며 우애를 다지기 위해 소리쳤다.
[자 ~ 여러분 흔들리지 맙시다. 이제 한 번만 더 성공하면 이것도 끝인데 저런 것에 미련 두지 마시고 다음 층 공략준비나 하시지요]
그들은 늦게까지 설왕설래하였지만, 결론은 마지막을 보자는 쪽으로 굳어졌다.
늦은 저녁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마리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미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자신은 언제라도 슬롯을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슬롯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몇 시간 전 기태가 던져버린 슬롯만 무사히 가져올 수 있다면 자신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90층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만약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1주일 전으로 돌아간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찌 되었든 이마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리 자신만이 70층 보상인 열쇠가 없기 때문이었다.
90층을 클리어한다고 해도 마리에겐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물러날 곳이 없었던 이마리는 서둘러 회의실로 가보았다.
내딛는 걸음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가슴이 빠르게 콩닥거렸지만, 혹시나 누군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볼까 봐 두려운 콩닥거림이 아니었다.
슬롯이 없으면 또다시 이 밤에 누군가를 죽여야 했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간절한 그것이었다.
반쯤 열려있는 창틈 사이로 짖은 색 빛이 흘러들어왔다.
빛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내려가자 여전히 타임슬롯이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마리는 빠른 걸음으로 슬롯을 들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밖으로 나온 마리가 석호진의 시신이 있는 쪽으로 가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리더니 다시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빠르게 내달렸다.
호진의 심장을 이용하려던 마리가 갑자기 양심의 가책이 들어 방향을 바꾼 것이었다.
처음 자신이 죽인 여인의 시신 앞에선 마리는 주저하지 않고 여인의 심장을 도려내어 슬롯 위에 올려두고 인벤토리에 있던 검게 변한 은 단검을 꺼내어 슬롯의 오른쪽 끝에 있는 칼집 모양의 홈에 단검을 꽂아 넣은 후 아래로 힘차게 내리자 천천히 슬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의 몇 번은 느리게 돌더니 삽시간에 빠르게 회전하는 슬롯이 다시 속도가 늦어지며 멈추기 시작했다.
이마리는 돌아가는 슬롯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결과를 기다렸다.
[크허헉! 1주일 전] 그것만은 반드시 피하고 싶었지만 낙담할 겨를도 없이 이미 이마리는 1주일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일주일 전으로 돌아온 마리는 조금 전 자기 제물이 되었던 여인과 마주하였다.
같은 상황을 2번째 접하게 된 이마리는 당황했지만,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있었기에 처음의 느낌처럼 쉽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여인은 여전히 말을 내리고 있었고 말끝마다 조롱이 섞여 있었으며, 빈정거렸다.
여인의 빈정대는 말투에 다시 한번 화가 났지만, 마리가 이번에는 꾹 참고 아지트로 돌아갔다.
마리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전 호진과 현존의 방을 차례로 둘러보았고 그들의 안녕에 안도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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