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도둑

8화 (시간의 폭풍 속으로)

by 서기선

8화 (시간의 폭풍 속으로)


우리는 또다시 강물에 몸을 맡긴 채 흘러 내려갔다.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가던 우리는 문득 아세디우스가 건네준 편지가 생각나 그것을 열어 보았다.




미처 이름을 묻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드는구먼. 그대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것 같아 적어 보내 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시간의 폭풍을 만나게 될 걸세 그것은 강이라기보다 시간 자체이니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어 그대들이라면 충분히 극복하리라 믿네! 건투를 빌겠네.




"뭐라는 거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눈만 껌뻑일 뿐 째깍이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때 갑자기 알 수 없는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공기 중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피부를 자극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잔잔하던 강물이 불안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꽉 잡아!" 째깍이가 소리쳤지만 정작 본인은 기둥 옆에 납작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또다시 무거운 공기가 피부에 닿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이게 뭐지"

나는 혼잣말로 한 건데 내 혼잣말에 째깍이가 말했다.

"아까 편지에서 시간의 폭풍 어쩌고 하던데 혹시 그거 아닐까?"

여전히 납작 엎드린 채 째깍이가 말했다.

"그렇다면 시간 자체가 흐르는 곳이니까. 폭풍이 일면,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 버린다는 말인데..."

내가 두려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어느새 째깍이가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도 도울 게 우리 함께 해 보자"

시간의 도둑8-1.png

그때 폭풍이 거세게 우리를 휘감았다. 우리 주변으로 과거의 편린(片鱗)과 미래의 조각들이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마치 조각난 시간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며 날아다녔다.

짧은 순간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들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나는 그 기억들이 바람에 휩쓸려 영영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복잡한 생각 때문일지 머리가 어지러워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자 어느 순간 다가온 째깍이가 나를 뒤에서 감싸 안아 주었고 그의 온기가 고스란히 등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어릴 적 들은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째깍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빠가 예전에 하셨던 말씀인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뜻이래. 지금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잖아.”

나의 말에 째깍이가 헛웃음을 지으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네' 하며 웃었다.

주변이 마구 흔들리고 바람도 매서 왔지만, 우린 서로에게 의지 한 채 부둥켜안고 폭풍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중심부가 가까워질수록 소용돌이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위협적이었다.

나와 째깍이는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폭풍이 우리 주변의 시간을 마구 뒤틀며, 흐릿한 기억들과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을 이리저리 날려버렸다.

그때 나의 곁을 빠르게 지나가는 조각난 미래의 시간 속에서 풀밭을 뛰노는 째깍 이의 모습이 힐끗 보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째깍이 녀석 웃으니 귀엽네' 하며 속으로 생각하다 문득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확신도 함께 얻었다.

"분명 조각난 미래의 시간이었는데.... 그렇다면.... 하하하!"

내가 크게 웃자, 째깍이가 물었다.

"왜? 뭐가 그리 재미있어?"

"아니야! 그냥 네가 좋아서 웃었어!"

좋다는 말에 째깍이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지만, 거센 폭풍 때문의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사방을 휘감고 돌아다니던 시간의 파편들이 선수 쪽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왔다.

단순히 돌고 있었다면 특이하지 않았겠지만, 그것들이 돌면서 빨갛고 파란 불빛을 만들어 내는 통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다고 아주 강렬한 빛깔은 아니었는지만 사방이 온통 회색으로 변한 지금의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빛깔이었기에 충분히 시선을 빼앗을만했다.

그때 째깍이가 소리쳤다.

"선우야 이쪽이야."

째깍이가 가르친 곳은 조금 전 내가 봤던 선수 쪽의 바람이었다.

"뭐라고? 왜? 그쪽이라는 거야?"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째깍이가 소리쳤다.

"안쪽을 봐 너무 고요하잖아. 주변 말고 안쪽 말이야."

녀석의 말에 다시 시선을 선수 쪽에 맴도는 바람으로 가져가 그것의 중심 부분을 천천희 흘터보았다.

녀석의 말처럼 너무 고요해 보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차분한 광경이었다.

"일단 저쪽으로 가보자"

째깍이가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그렇게 녀석의 팔에 이끌려 나는 폭풍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가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자 과거의 바람이 우리를 거세게 밀어내려 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과거의 시간을 힘겹게 뿌리치고 중심에 도달하자, 주변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폭풍의 눈은 정적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여전히 밖은 휘몰아치는 바람으로 어지러웠지만, 그곳과는 사뭇 다른 공간이었다.

초가을 불어오는 한들거리는 바람과 포근한 기운이 맴도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 째깍이가 말했다.

"이런 경험 처음이야! 선우야! 너 아니면 경험하기 힘든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어 고마워!"

녀석이 흥분한 건지 한껏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너같이 좋은 친구를 알게 되어 내가 더 기쁜 걸 너 아니었으면 여기에 올 수도 없었잖아, 내가 더 고마워"

나는 진심으로 째깍이가 고마웠고 그런 진심을 이번 기회에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때 발밑에서 조각난 미래의 조각 하나가 파닥거렸다.

조금 전 내가 봤던 웃고 있는 째깍이의 모습을 담고 있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어 녀석에게 건네며 말했다.

"너의 미래야. 참 예쁘더라! 조금 전 내가 봤던 미래 시간의 파편이야 직접 보겠니?"

하지만 째깍이의 말은 내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고마워! 하지만, 미래는 현재의 내가 만드는 것이야.

네가 본 건 아마 과거의 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허상일 거야 비록 허상이지만 예쁘다고 하니 기분이 나쁘진 않네! 그렇다면 허상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 알려줘서 고마워!"

녀석은 부끄럽게도 내가 건네준 파편을 받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째깍이의 행동과 말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전 07화시간의 도둑(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