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미례의 환영)
9화 (미례의 환영)
시간의 폭풍이 멎자 어느새 강물이 평온해졌다.
조금 전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누구도 믿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평온한 흐름이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긴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건 째깍이를 따라 들어온 후 너무나도 많은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생긴 버릇 같은 것이었다.
더욱이 멀리 보이는 짙은 안개가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짙은 안개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째깍이가 긴장했는지 가르릉 거리며 말했다.
"또 시작이군. 이번엔 어떤 것이 우리를 기다릴까?"
'좀처럼 가르릉 거리지 않던 녀석이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긴장하긴 했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비로소 짙은 안개가 우리를 뒤덮었고 우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답답해졌을 뿐 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발밑으로 흐르는 강물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전구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모습에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시야가 흐려지자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이 켜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안갯속에서,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이것이 너의 미래다, " "포기해!, " "두려워하지 마 이것들은 모두 허상이야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러니 힘내." "돌아가, " 등 다양한 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우리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불확실한 단어들은 마치 주어가 빠진 듯한 목소리로 들렸다. 목소리 중에는 나를 응원하는 말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이건 뭐지? 정말 이것이 미래가 이럴까?"
내가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째깍이에게 물었다.
"선우야 정신 차려! 내가 몇 번이고 이야기했듯이 미래는 항상 변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아직도 모르겠니?"
째깍이가 내 어깨를 흔들며 이야기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야."
째깍이가 진지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녀석의 말에 동의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불안했다.
그 순간, 내 앞에 미래의 내 모습이 나타났다.
몸이 아빠만큼 커져 있었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 피곤해!"
미래의 내 모습이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그 모습이 몹시 슬퍼 보였다.
"너는 왜 그렇게 피곤해하니?" 내가 환영에게 물었다.
"시간을…."환영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간을 아껴 쓰지 않았어! 놀고 싶었고 게임하고 싶었어! 개을러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어."
그때 미래는 현재의 내가 만든다는 째깍이의 말이 생각났다.
지금 보이는 환영은 중요하지 않다 미래에 대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조금 전 나를 찾아왔던 어른 선우의 모습이 사라지고 또 다른 미래가 다가와 나를 실험하려 했지만 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너희가 아무리 날 흔들어도 나는 아무렇지 않아! 어차피 너희의 미래는 내가 만드는 것이고 난 너희가 그런 모습이 되도록 놔두지 않을 거야"
내가 환영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째깍이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미래가 두렵지 않아. 그러니 날 흔들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내가 또다시 큰 소리로 소리치자, 환영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오~! 짝짝짝! 선우야 진짜 멋있었어! 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니?" 째깍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래 모두 네 덕분이야 고마워!" 내가 웃으며 째깍이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째깍이가 멋쩍은 모습으로 웃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강물이 한자리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위쪽에서 내려오는 강물이 더는 아래쪽으로 흐리지 않고 정체된 듯 고요했다.
모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리게 되어있지만, 이곳의 강물은 그 자리에 서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뭐지 왜 흐르지 않는 거지?"
내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째깍이는 여전히 큰 눈만 껌뻑일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강바닥에서 커다란 물방울이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 속에 그림 리퍼가 들고 있을 법한 커다란 낫을 든 백발의 노인이 매서운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양옆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흔들리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엄청나게 긴 턱수염이 걸을 때마다 발에 밟힐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혹시 크로노스키퍼 아니야?" 내가 째깍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글쎄 그런가? 하긴 요정님이 노인네인지 영감님인지 그런 비슷한 말을 하긴 한 것 같은데..."
째깍이가 내 쪽으로 바짝 기대며 조용히 말하였다.
그때 노인이 소리쳤다.
"이곳은 산자의 영혼이 올 수 없는 곳인데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것이지? 너희는 도대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