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가정

# 코스母스 5화

by 서기선

사나웠던 인생 2막


# 흔들리는 가정


강원도에서의 삶은 가족 모두에게 힘든 경험이었다.

철암이라는 곳에 체육관을 OPEN 하신 아버님은 빠르게 자리 잡기 위해 동분서주, 하셨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으셨다.

처음 몇 달간 관 원생이 늘어나지 않자 아버님은 포스터를 제작하여 붙이기 시작하였고 생각처럼 쉽사리 늘지는 않았지만, 늘긴했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니었다.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의 문의만 있었을 뿐 단번에 늘어나진 않았다.

아버지는 7명의 관 원생을 위해 봉고차를 구입하였지만 정작 본인은 운전을 하지 못하셨다.

7명의 관 원생을 위해 봉고차와 운전기사를 고용하신 아버님을 어머님은 이해하지 못하셨고 부부싸움의 단초가 되었다.

운전기사의 월급을 과 운영비를 제외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운영이었지만, 아버님은 고집을 꺾지 않으시고 승부수를 두셨다.

제일먼저 운영비 절약을 위해 자신이 직접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야겠다고 판단하신 아버님은 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 뒤늦게 공부를 하셨다.

어머님이 문제를 읽어주시면 아버님께서 정답을 맞히는 방법으로 하셨는데 아버님보다 문제를 읽어주시던 어머님께서 오히려 더 잘 아셨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님은 동내에서 영특하기로 소문날 정도였다.

어머님은 대학진학을 원했지만 [여자가 무슨 공부야] 하시며 말리시던 외할머님의 만류에 자신의 꿈을 접으셨다고 했다.

만면 아버지는 동내에서 유명한 건달 이셨다.

허구한 날 파출소에 불려 다니시며 사고를 치셨는데 우연히 원주에 놀러 가셨다가 어머님에게 마음을 빼앗겨 결혼하셨다.

아버님은 자신보다 똑똑한 어머님이 부러움의 대상 이셨지만 불만이기도 했다.


[그것도 모르면 어떻게 해요 벌써 몇 번을 풀었던 문제인데...]

[당신이 문제를 잘못 읽어줘서 그러는 거야 왜 문제를 배배 꼬아서 읽어줘]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으니 모르는 것이지 남 탓은...] 티격태격하셨지만 보기 좋았다.


아버님은 정확히 7전 8기 하셨다. 인지 붙을 틈도 없이 떨어지셨던 아버님이 8번만 에 합격을 하셨을 때 고깃집에서 고기를 사주셨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면허증을 취득하신 아버님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 운전기사를 해고하셨고, 이후 본인이 직접 운전하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관 원생이 30명이 되었고 아버님의 체육관은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가정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

사범이 필요했던 아버님은 자신의 1호 제자인 나에게 학업 후 청년부를 가르치길 원하셨고 나는 어렸지만, 사범이 되었다.

아버님은 양화점 사장님에서 체육관 관장님이 되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지만, 어머님은 그렇지 않았다.

가정을 꾸려야 하는 주부 처지에서 보면 허울뿐인 직위였던 것이다.

수입이 10배 줄어들어 그동안 모아둔 자본을 까먹고 있는 상황인데 허울뿐인 직위에 만족해하시는 아버님을 어머님은 미워할 법도 했지만, 열심히 응원하셨고 그런 어머님의 모습을 나와 동생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어머님을 보살이라고 불렀다.

큰 외삼촌이 스님이라서가 아니라 언제나 긍정적인 밝은 에너지를 지니신 어머님은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으셨고 마음이 넉넉하셔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는데 마냥 좋기만 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보살이라고 불렸고 이곳에서 생긴 어머님의 별명이었다.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아버님이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마당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어머님은 작은 정원을 무척 아끼셨다.

어머님은 정원에 재일먼저 장미꽃을 기르셨다.

본인은 코스모스와 붓꽃을 좋아하셨지만 우리 집 마당에는 장미꽃을 심으셨다.

하루는 정원에 앉아 무어라 속삭이는 어머님을 보았는데 엄마 곁에는 쌀을 씻던 바가지가 있었고, 바가지 옆에 앉아 조용한 목소리로 [예쁜아 잘 먹고 이쁘게 자라라] 말씀을 하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재미나 어머님에게 [엄마 혹시 지금 꽃에게 이야기한 거야?] [응] [뭐야 하하하]

[이러면 예네들도 예쁘게 자란단다.] 어머님은 사뭇 진지 하셨지만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디 있어 하하하] 난 믿지 않았다. [그런데 왜 조용히 말을 해요?] 내가 궁금해서 묻자 어머님은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창피하잖아!] 무언가 철학적이거나 그래도 조금은 특별한 뜻이 있을 거라 믿었던 나는 어머님의 소녀감성을 볼 수 있었다.

언제나 파마머리를 하고 계시는 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재일 작다. 손도 발도 키도 여동생보다도 더 작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엄마를 놀리기도 했지만 엄마는 언제나 재치 있게 받아치셨다.

[엄마! 아랫동내 공기는 조금 탁하지 않아?] [모르겠는데 꽃 하고 가까이 있어서 그런가 꽃 냄새가 먼저 나는걸] [흙냄새는 아니고? 키득키득] [어쩌냐 엄마는 흙냄새도 좋아하는데 그러는 너는 엄마보다 매연 냄새를 먼저 맡겠구나 혹시라도 냄새나면 이야기 해줄레]

드라마를 볼 때면 우리 가족은 드라마보다 엄마가 어느 시점에 눈물을 흘릴 것 인가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대부분 예상하는 시점에 눈물을 보이셨는데 주로 배우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시점이면 예외 없이 눈물을 보이셨고 우리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또 울고 있네 하며 놀려댔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눈물을 보이실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 무리에게 사냥당하는 임팰라를 볼 때도 눈물을 보이셨다.

[안 돼~ 도망가~......] [아이고 우리 엄마 또 TV 하고 이야기하시네... 뭐야!!! 엄마 설마 저걸 보고 우는 거야? 아니 도대체 어느 시점이 슬픈데 또 울어요?] [슬프잖아 저 거봐 엄마 임팔라가 쳐다보잖아] [내가 감정이 메마른 건가? 동물들은 다 그래 약육강식 이잖아요 뭐가 슬퍼 난 안 슬퍼]

[에이 매정한 놈] 어머님의 감정 실린 손바닥이 나의 등을 빠르게 치고 지나갔다.

[아이고~ 우리 엄마 아플까 봐 세게 때리지도 못하면서...] [어이구!] 놀려대는 나에게 이번엔 꿀밤이라기보다 주먹으로 머리를 밀치셨는데 그런 엄마의 손맛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런 시간이 지속되면 마지막엔 언제나 나의 포옹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엄마는 내가 안아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화를 내시다가도 나와 동생이 안아주면 등을 도닥여 주시곤 하셨고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가 늘 불만이셨는데, 사람이 너무 좋다는 이유였다.

조금은 세상사람들처럼 조금은 약사 빠르고 자기 잇속을 챙길 줄 아는 실속형 인간이 되길 바라셨지만 태생이 남 퍼주기 좋아하시는 어머님의 그런 성격이 장점이기도 했지만 단점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이사 올 때 2번이나 화재사고를 당했기에 가세는 기울어져 끼니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어머니는 그런와중에도 작은아버지가 자립할 수 있도록 쌈짓돈을 챙겨주셨다, 물론 어머니의 쌈짓돈은 작은아버지의 소주값으로 한입에 털어 넣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그런 작은아버지를 한동안 싫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 본인도 힘든데 허구한 날 술만 마셔대는 동생이 이제는 짐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더욱이 벌이도 시원찮았기 때문에 집안살림에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던 아버지는 자신의 수입에서 매번 작은아버지 몫으로 얼마의 돈을 모아다 주곤 하셨던 어머님을 마뜩잖아하셨다.

차분하고 사려깁은 어머니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다혈질에 실속형 인간으로 타고난 장사꾼 이셨는데 젊은 시절 동내를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유명한 불량배였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혹자가 말하는 조직적인 생활을 하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어른들에게 들었다.

너무 사고를 많이 치셨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버린 자식으로 생각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런 아들에게 보살핌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지난날 말씀 하셨고 결국 재일 말썽장이셨던 아버지 곁에서 생을 마감하셨고 그 중심엔 어머님이 계셨다.

가세가 기울어지고부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화도 잘 내시고 가끔 손찌검도 하셨다.

이전에도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의 손찌검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셨다.

그만큼 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처음 아버지의 손찌검을 목격했던 건 작은 아버지를 챙기는 어머니에게 불만을 토로하신 것이 시작이었다.

[당신이 왜 그 자식에게 돈을 챙겨줘!] [서방님이 안타깝잖아요 도와줘야지요] [뭘 도와줘 그 자식은 안 되는 놈이야 안 될 놈에게 뭐 하러 돈을 써] [그래도 동생이잖아요] [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이야기해 바보야? 야! 바보냐고?] [아아악!] [그래 니가준 돈으로 저자식 뭐 하던? 허구한 날 술이나 처마시고] [..........] [저자식 술 마시는 것이 안타까우면 돈을 주지 말았어야지 저자식 저러는 거 다 너 때문이야 알아!] [..........] [왜 또 말을 안 해 말을 하라고 말을] [아아악!]

그 후로도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아프게 들렸다.

참다못한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를 말려 보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아버지는 자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하세요 아버지] [뭐!!! 이 자식이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어디서 끼어들어] [말로 하시지 왜 손찌검을 하세요 이러는 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날아온 손바닥에 내동댕이 쳐졌지만 다시 일어나 아버지의 손을 잡았지만 그 손을 잡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손이 아버지의 팔을 잡고 계셨는데 이미 이성을 잃은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팔을 힘으로 물리치신 후 다시 어머니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하셨다.

서둘러 달려가 아버지의 손을 잡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몇 차례 이어지던 매질에 어머니가 쓰러지셨고 그걸 본 아버지는 닫힌 문을 걷어차시며 그 길로 밖으로 나가셨다.

흐느끼며 쓰러져있는 어머니를 부축해 보지만 어머니는 괜찮다며 만류하셨다.

아버지의 손찌검에 아픈 몸 보다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욱 마음 아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날을 시작으로 아버지의 폭력과 술주정은 늘어만 갔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공포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려오면 나와 동생은 어김없이 불을 끄고 잠에 든 척 연기를 해야만 했고 어머니는 언제나 총알받이가 되어 우리를 지켜 주셨다.

[얘들 자요 조용히 좀 해요] [이놈의 새끼들 아버지가 오셨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조용히 좀 해요 시간이 몇 시인데...] [뭐야! 내가 뭐 내가 내 집에서 노래도 못 하나?] [동네사람들 다 일어나겠어요] [너는 동네사람들을 위해서 사냐 서방을 위해서 사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뭐! 말이 안 돼? 네가 지금 많이 배웠다고 나 무시하냐?] [누가 무시한다고 그래요]

[시끄러워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아아악!]

내가 듣기에도 분명 명분 없어 보였고 막무가내로 트집을 잡고 계신 듯했다.

내가 일어나 말리려 했지만, 어머니는 이미 그런 행동을 할 것을 예상하신 듯 내 이불을 끌어다 머리 위까지 올리시며 조용히 속삭이셨다. [가만히 있어]

둔탁한 소리는 어머니가 맞고 있는 소리일 것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섞여 사기그릇 깨지는 소리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국그릇이 나뒹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매질을 하시던 아버지는 녹슬은 기찻길을 몇 번이고 부르시다 잠이 드셨지만 우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내가 눈을 떴을 땐 방안에 대자로 옅어 잠에든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방안 가득 들려왔고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잠에서 깰세라 조용히 일어난 내가 몸을 일으켜 어머니를 찾고 있을 때 부엌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조용히 깨진 사기그릇을 치우고 계신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어머니는 손짓을 하며 [돌아가서 더 잠을 자 곳 있음 학교 가야 할 시간이야] 하시며 돌려보냈지만 선 듯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보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머리를 절레거리시며 오지 말라는 표현을 하셨다.

그렇다고 이미 달아난 잠이 쉽게 올리 없었고 몇 시간이고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도 싫었다.

엄마가 울고 있다! 그럴 땐 내가 안아주면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나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으셨고 당신께서 고스란히 감당하고 계셨다.

문득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침에 아버지에게 물어보리라 생각했지만 내가 일어났을 땐 이미 아버지는 출근한 이후였고 다시 아버지를 만난 건 하교 후 체육관 에서였다

성인부 형들과 누나의 잘못된 동작을 직접 잡아주시며 구령을 외치고 있는 아버지는 어제저녁의 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언제나 체육관의 마지막까지 함께한다. 동급생들은 내가 직접 가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기간이나 특별한 약속이 있을 때는 제외다.

체육관을 들어서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 아버지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부르셨고 영문도 모른 체 달려간 나에게 성인부가 보는 앞에서 권법의 한 동작을 보여주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성인부 앞에서 시범을 보인 나를 뒤로 무르시며 이야기하셨다.

[잘들 봤지 손과 발은 이렇게 하는 것이야 그래야 균형을 잃지 않거든 어때 다시 한번 도전해 볼사람?]

이런 상황에서 어제는 왜 그러셨냐고 차마 물어볼 수 없었고 기회를 보던 나에게 드디어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아버지가 퇴근 후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자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나는 채식주의자 이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고 언제나 이 문제를 두고 강한 대립각을 세웠었기에 오늘의 만남은 불을 보듯 뻔했다.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나의 아킬레스건인 채식을 이유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아버지의 큰 그림 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난 피하지 않았고 어젯밤 이야기를 묻기로 했다.

마침내 고깃집에 앉은 아버지와 나 사이엔 불판에 올려진 돼지고기가 이글거리고 있었고 미쳐 익기도 전에 아버지는 소주 한잔을 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어제의 이야기를 물었지만 아버지는 대답대신 [컸다고 훈개 하는 거냐?] 하시며 분위기를 주도하셨지만 난 형소처럼 주늑들지 않았고 아버지를 쏘아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컸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어찌 되었건 아빠는 어제 폭력을 쓰셨어요 그것도 엄마에게 분명히 잘못된 거잖아요 이유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요]

[까불고 있네... 궁금하냐 그러면 이거 한점 먹어봐라 그러면 이야기해 줄게] 아버지의 도발 이셨다. 내가 먹지 않을 것을 알면서 일부러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어쩌면 자식이 채식주의자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버지의 묘책일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은 분명 도발이었다.

당연히 거부했고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느새 아버지가 연락을 한 듯했다.

아버지 앞자리 그러니까 나의 옆에 앉은 어머니는 나와 아버지를 번가라 보시더니 [왜들 그래?]

하시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하셨지만 두 남자는 한동안 침묵하였고 그러는 동안 서너 잔의 소주가 아버지의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먼저 침묵을 깬 쪽은 아버지였는데 고기한점을 상추에 쌓더니 마늘반쪽과 파절임을 조금 넣고는 다시 나에게 먹을 것을 종용하시며 말씀하셨다.

[엄마아빠 싸우는 게 싫어서 그러는 모양인데 이거 먹으면 그러지 않으마 먹어라] 하시며 다시 한번 도발을 하셨지만 난 끝내 먹지 않았고 그에 대한 처벌은 또다시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자식세끼 고기도 먹지 않는 놈으로 만든 건 모두 잘난 니 탓이라고 알아? 빌어먹을] [먹지 않겠다는데 왜 굿이 먹이려고 해요?] [뭐! 잘한다 어미가 되가지고]

또다시 아버지의 폭언이 시작되었고 어제에 이어 다시 한번 우리 집은 어머니의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오시는 아버지가 싫어졌고 그럴 때마다 체육관에 나가는 것도 싫어졌다.

삐뚤어질 생각으로 학교를 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다니던 학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철길이 나온다 나는 혼자 철길 걷는 걸 좋아했는데 가끔씩 지나가는 기차소리가 내 목소리를 삼켜버렸기 때문에 좋았다.

기차가 옆을 지날 때면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보면 기분이 한결 가라앉았다.

하루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철길을 걷고 있었는데 멀리서 불량배 녀석들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주눅 들 내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운동을 했었기에 그까짓 불량배 서너 명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너희 잘 걸렸다.]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샘이다. 나에게 손짓하는 녀석들이 반가웠고, 다가오는 녀석들을 향해 웃으며 걸었다.

빤히 쳐다보는 나를 중간에 두고 양옆과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선빵을 칠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시비가 붙으면 선빵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다.

누가먼저 때리느냐에 따라 주도권을 누가 가지고 가는가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빵이 좋은 것만도 아닌 것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기 때문이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먼저 칠 것인가 아니면 한 대 얻어맞고 피해자 코스프레 혹은 정당방위를 주장할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했으며, 갈등하기 시작했다.

[야! 몇 학년이냐? 돈 좀 빌려주라 키득키득]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기는 사이 녀석 중 누군가가 말을 걸었지만, 여전히 고민 중이었고 말없이 우두커니 서있던 나에게 아까부터 히죽이 던 무리들 중 가장 키가 큰 녀석이 [이 자식이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대꾸가 없어!] 하며 슬쩍 어깨를 밀었다.

그제야 정신이든 내가 놈의 얼굴을 쳐다노니 어딘지 낮이읶었다.

‘저자식 어디서 봤는데... 누구지?’ 언발란스한 헤어스타일에 왼쪽눈썹이 반으로 잘려있었으며, 덩치에 비해 작은 얼굴에 쭉 찢어진 눈 밑으로 선명한 칼자국이 ‘나 무섭지?’ 하며 과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녀석의 특이한 바지였는데 , 바지통이 족히 36인치는 넘어 보였는데 그에 비해 바지 끝자락은 간신히 발목이 들어갈 만큼 작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항아리 같았다.

그런 검은색 항아리 바지가 바람에 날려 퍼드덕거리는데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뭐야? 미친놈인가?] [하하하] [이 자식 뭐야 재수 없게~] [아하하! 바지 너무 웃겨 캬캬캬]

[이 자식이 돌았나] 순간 녀석이 나의 빰을 후려갈겼고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선빵을 빼앗긴 이상 더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항아리 녀석의 발목을 걷어차니 녀석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빠른 동작으로 철로에 올라선 내가 뛰어올라 녀석의 턱에 나의 발끝을 명중시켰다.

뒤로 나 둥구는 녀석을 바라보던 무리가 달려들었지만 동작은 몹시 굼떴다.

그도 그럴 것이 철길의 바닥은 자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곳에서 빨리 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된 일이었기에 느려터진 녀석들의 공격 따위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반면 철길과 철목을 오가던 나의 몸은 상대적으로 빨랐고, 잠시 교전이 있었지만 너무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널브러져 있는 녀석들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오늘 기분이 몹시 나쁘거든 너희들 오늘 좀 맞자] [야 미안해, 미안해 실험 한번 해보고 싶었어] [뭐 실험?] [그래! 실험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우슈 체육관에서 사람 가르친다길레 궁금했어 미안해] 순간 녀석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동내에 유이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동급생이었다.

당시 시골 마을에는 아파트가 흔치 않았다. 그래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상유계층 같은 느낌이었는데, 녀석이 그 아파트에 살고 있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던 동급생이었다.

녀석은 홀아버지와 형이 있었는데 형은 다른 학교 선생님이었다.

어머니 없이 자란 탓에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상당히 불량한 녀석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녀석들에게 쏳아붙고 있을 때쯤 잠시 이성을 잃은듯했다.

쓰러진 녀석을 발로 밟으려는 순간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 도끼 그만해!]

“야! 도끼 그만해”라고 하는 건 분명 나를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놀란 내가 주위를 살펴보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내가 다시 쓰러진 녀석을 바라보려는데 철길 위쪽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미끄러져 내려오는 3학년 선배님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는 우리 학교의 “짱”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제자이기도 했다.

학기 초 선배가 교실로 직접 찾아와 모두에게 공표 한 일화가 있었다. ‘나에게 시비 걸지 말라고’ 그리고 그 후 아무도 나에게 시비 거는 녀석들이 없었다.

나중에야 아버지가 당신의 제자에게 나의 안위를 부탁했다는 것을 알았다.

선배의 배려에 당연히 고마워해야 했지만 건방져 보였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욕을 했다.

“어이없네 지가 뭐라고... 1:1로 하면 그리 밀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 하며 속으로 비아냥 거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별명이 붙었는데 학생들은 나를 도끼라고 불렀다.

책가방에 작은 손도끼를 가지고 다닌 것도 한몫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손도끼를 사용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소품용으로 쓰려고 구입한 건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 딱히 어우리지 않았기 때문에 반품도 못하고 가방 속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도끼는 나에겐 짐이었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기에 나에게 도끼라고 부르는지 나조차도 신기했다.

[형님이... 어쩐 일 이세요?] [야! 너희들 빨리 사라져] [왜 그래요? 한참 재미있는데!] [정신 차려 제들 빅토리 애들이야] [빅토리 하하하 형님 지금 제 걱정하는 겁니까?] [그러면 네가 혼자 제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건 형님이 상관할 일은 아닌 듯한데요]

선배의 충고에도 아랏곳 하지 않았고 미친 망아지세끼처럼 소리 지르며 대들었다.

순간 형님의 주먹질에 멀찌감치 나가떨어진 나는 매서웠던 그날의 손맛을 한동안 잊지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고, 나는 순간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혼자는 제들 못 이겨 무슨 생각으로 제들을 건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원하든 원치 않던 이제 싸움은 시작된 거다.] [뭐 어쩌라고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제네들 많다. 항상 조심해라.]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에서 시작된 일이었는데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많다고? 도대체 얼마나 많기에 그 딴 소리를 하는 거야?” “쳇 그래봐야 양아치 몇 명 있겠지”

마음을 달래 보았지만 좀처럼 많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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