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eoul

# 코스母스 11화

by 서기선

# return to seoul


숨 쉬고 살아갈 공간이 필요해 서둘러 강원도를 떠나왔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여동생과 어머니의 눈빛이 떠올라 오히려 마음은 무거웠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했던 어머니의 표정과 원망하는듯한 동생의 표정이 모든 순간 함께했고 그렇기에 더욱 힘들었다.

그럴수록 나 역시 아버지처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알계된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난 취해있었다.

그래야만 어머니와 동생의 눈빛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고종사촌이 건 하게 취한 나를 보며 [너 꼭 삼촌 같다.]라며 나에게 친근함을 표현했지만 난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내가 아버지와 같다고! 지금 이 모습이 내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닮았다고!!!”

나는 고종사촌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놀라 이후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 자체를 끊어버렸다.

건강을 생각해서 끊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해서 그것을 끊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울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안녕, 이 궁금했던 나는 100원짜리 동전 20개를 바꾸고 집 근처 공중전화박스로 들어갔다.

어머니 목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생각에 전화번호를 누르기도 전에 이미 흥분해 있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순간 울컥해서 어머니의 [여보세요]라는 말에 빠르게 응답하지 못했다.

자꾸만 눈물이 목구멍을 타고 나오려 해서 잠시 숨을 고른 후에야 [저예요] 하며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어 그래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잘 지내지?] [고모는 잘해주고?] [저녁은 먹고 다니니?]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이 귀찮기보다는 감사했고 사랑스러웠다.

간단한 안부를 묻던 나에게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가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었는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체육관을 그만두시고 서울에서 중국집을 하실 계획이라며 연락처를 알려주셨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버지만 올라오셨다고 했는데 그러면 어머니와 동생은 어떻게 되는가?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하나?

설마 두 분 이혼하신 건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어떤 것도 물어보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공중전화 부스 안을 지키고 있던 내가 정신이 들어온 건 뒤에서 당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의 짜증 섞인 목소리 때문이었다.

[저기요 나 급한데 통화 끝났으면 나오시지요] 놀란 내가 여자아이를 쳐다보았지만, 오히려 당황한 건 여자아이의 몫이었다.

아마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초점을 잃고 있었기에 일렁이는 눈물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돌아와 잠을 청해보았지만, 오히려 정신은 선명해졌고 머릿속은 복잡해졌으며,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져 도무지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당연히 아버지를 찾아뵈어야 했지만 선 듯 내키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일주일이 다 돼서야 아버지의 가계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총신대학교 근처에서 중국집을 OPEN 하셨는데 시장통에 자리했으며 4층짜리 건물 2층에 있었다.

어머니가 알려주신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대충의 위치와 상호를 받아 적고 지하철 4호선에 몸을 실었다.

미아사거리에서부터 총신대 입구까지 열여섯 정거장 지하철로만 40분가량 걸리는 거리다.

다행히 갈아타는 번거로움 없이 4호선 한 번으로 갈 수 있다.

오후에 있을 수업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덕분에 출근길 지하철 푸시맨의 뜨거운 손맛을 봐야만 했다.

지하철 4호선은 언제나 붐빈다. 더욱이 출근길의 4호선은 마치 전쟁터 피난민의 피난행렬 같다.

피난행렬을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사진 속 기록으로 짐작할 수 있었던 당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밀고 밀리기를 반복해 가며 어렵게 지하철에 오르면 미처 탑승하지 못한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한 푸시맨의 뜨거운 밀림이 시작된다.

지하철 안은 마치 시루 속 콩나물 같다.

성신여대와 한성대를 지나면 어느 정도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동대문과 충무로를 지날 때쯤 빈자리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늘은 운이 좋아 내 앞의 아저씨가 혜화역에서 하차하는 바람에 앉아갈 수 있었다.

아저씨가 두고 간 스포츠신문에 눈길이 갔고 마치 내 것인 양 신문을 열어 오늘의 운세를 시작으로 눈길 가는 머리글의 기사들을 읽기 시작했다.

한동안 신문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때였다.

지하철 창문에 비춘 나의 모습을 보았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시켜주셨던 어린이신문을 잃고 있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신문이 오면 제일 먼저 연재만화 강가딘을 찾기 위해 뒤적이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 같았다.

그렇게 강가딘을 필두로 로봇찌빠와 김일 아저씨의 박치기까지 차례로 소환시킨 나는 다정했던 아버지의 옛 얼굴에서 멈추었다.

국민학교 시절의 행복했던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던 나를 현실 속으로 다시 불러들인 건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었다.

[다음 내리실 곳은 총신대 입구 총신대 입구입니다.]

잠시 옛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스포츠신문을 내가 그랬듯 누군가의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자리에 고이 접어 올려두었다.

서둘러 지하철을 빠져나와 이정표를 꼼꼼히 확인하며 아버지가 계시는 가계로 향했다.

총신대학교 근처 재래시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출근 시간의 절정이 끝난 뒤였다.

재래시장이라 사람들로 북적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한가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인파에 몰려 이리저리 끌려다녔던 탓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당시의 거리 모습은 분주하다는 생각보다는 한가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거리는 깨끗했고 주변은 조용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장사를 한다는 거야? 상인도 얼마 보이지 않는구먼] 투덜거리며 시장중심으로 들어서는데 안쪽의 모습은 조금 전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오가는 인파도 많았고 상인들 역시 분주히 움직였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들어 간판의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 멀지 않은 곳에 1212 십이십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중국집이었다.

[1212 십이십이가 뭐야? 간판 이름이 왜 저래?] 투덜거리며 건물로 올라가려다 1층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진열장에 비춘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머리도 다시 한번 매만져 보고 의복도 한 번 더 매만지며 나름 단정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입구 문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안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의 모습도 직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닫힌 거야?] 문을 밀어보자 삐이익 거리며 닫힌 문이 열렸고 주방 쪽에 있던 사내가 달려 나와 인사했다.

[어서 오세.... 어? 너는... 관장님! 아드님 오셨어요!] 아버지가 주방에서 걸어 나오며 무표정한 모습으로 [어 그래 앉아라! 밥은?] [먹었어요] [네가 아침밥을 먹었다고? 너 아침밥 안 먹잖아?]

[.......] 그러자 아버지가 주방 쪽으로 소리쳤다. [짜장면 곱빼기로 하나 해줘라!] 내가 손사래를 치며 [됐어요] 하며 거부해 보았지만, 예전부터 그랬듯 아버지는 여전히 나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으셨고 그때마다 나는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버지 방식의 무심한 사랑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기에 딱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곳으로 오기 전 지하철에서 잠시 옛 생각을 했던 것이 도움을 주어서인지 아니면 가족이기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앞에 앉아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그토록 미웠했던 아버지였지만 지금의 아버지 모습은 어린 시절 자상했던 아버지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래 웬일이냐?] [아들이 아버지 보러 오는데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 [그냥 왔어요 궁금해서] [엄마가 가보라고 하디?] 뭐 그런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주방에서 이제 막 만들어진 짜장면을 들고 H가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오래간만이다.] [어! 예 함께 오신 건가요?] [아니 근처에 집이 있어서 가끔 들려 너는 어떻게 지내느냐? 어디 살아?] [미아리 살아요] [어~ 여기서 멀리 있니?] [그리 멀지는 않아요 대충 1시간 30분 정도 걸리던걸요] [그럼 멀리 있네] [지하철은 40분 걸리는데 지하철까지 가는데 시간이 좀 걸리네요] h는 아버지의 제자인데 나보다 1살 많은 형이다.

1살이 많지만, 학년으로 따지면 2학년 차이가 났다. 내가 9살에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입학 전 많이 아팠기에 남들보다 한 학년 늦게 시작했기에 동급생들보다 1살 많았다.

그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엔 소이 복학생이라는 녀석들과 동갑이었기에 스스럼없이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일부 동급생들은 그런 나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런 동급생을 좋아하거나 챙기려 하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만난 선배와 이야기가 길어지자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가셨고 그 자리에 선배가 앉았다.

[어서 먹어 불면 맛없어] [아, 예] 젓가락으로 몇 번 휘저은 후 너무나도 태연하게 짜장면을 먹었는데 제법 맛이 있었다.

이따금 전화주문이 들어왔는데 [반찬 가게 짬뽕 하나 간짜장 하나요?] , [1층 닭집에 짜장면 두 개요] 하며 주방을 향해 소리치는 직원의 말하는 소리로 보아 주변상인들이 주 고객층인 듯 보였다.

새벽에 장사하는 상인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간다.

모두 잠들어있을 때 그들의 아침은 시작되고 우리의 아침이 시작될 때 그들은 퇴근한다.

아마 지금 들어오는 주문 전화는 이제 막 장사를 접고 들어가기 전 늦은 아침을 해결하기 위한 그들의 부름 일 것이다.

그리고 보면 아버지의 가계는 일반 중국집과는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상인 맞춤형 중국집 콘셉트가 나빠 보이진 않았지만 리스크 역시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왜냐하면 산해진미도 한때이지 오랜 시간 같은 음식을 먹지는 않을 것이고 그리되면 주 대상 층이 이탈하게 된다는 말인데... 그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타깃의 다변화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얼마 전 읽었던 마케팅과 세일즈라는 책을 통해 시장의 원리라던가 상권형성 같은 마케팅전략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분주해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직원들의 모습이 여느 중국집과 같아 보였고 갑자기 사업변경을 하신 아버지를 걱정했던 나는 안도하였다.

아버지는 주방과 홀을 왔다갔다하셨으며 선배와 직원 한 분이 배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방을 자주 들락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가 요리하는 것을 배우고 있는 듯 보였는데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요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바삐 움직이는 주방의 모습과 웍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배달하러 다니던 선배와 직원의 모습으로 보아 제법 장사가 잘되는 듯 보였고 그 모습에 다시 한번 안도하며 짜장면 한 젓가락을 막 입에 넣으려는데 가계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N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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