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과 당돌한 상간녀

# 코스母스 10화

by 서기선

# 보살과 당돌한 상간녀


얼마 후 어머니가 N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셨다.

정확한 주소도 모르면서 무작정 찾아 나섰다.

이웃 주민의 제보만 듣고 찾아간 것이었지만 어머니는 단번에 그곳을 찾아내셨다.

그녀는 오래된 고옥에 살고 있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었는데 한낮이었지만 어두운 집이었다.

골목도 그곳 끝에 자리한 그녀의 집도 어두웠다.

철암에서 조금 떨어진 동내의 작은 마을이었다.

오래된 고옥들이 즐비한 작은 동내의 귀퉁이에 있는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한 사람이 넉넉히 오갈 수 있는 정도의 골목길을 지나면 그곳 끝자락에 볕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작은 집이 N의 집이었다.

탄광촌의 집들은 서울의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고 초라하다.

추운 겨울 탓에 웃풍을 막기 위해 층고가 낮게 설계되어 있다.

따뜻한 남쪽의 집들과는 사뭇 다르다.

부산 큰집은 층고가 높아 마치 이 층집 마냥 계조 하여 사용하는 가정도 있었지만, 강원도의 집들은 그렇지 못했다.

층고가 높으면 웃풍 때문에 말도 못 하게 춥다.

그녀의 집도 다른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혼자 자취를 하는 듯 보였다.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부모님 혹은 형제자매가 있을 법도 했지만, 그곳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의 대결 이후 며칠째 체육관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확인하진 못했다.

평소에도 나와 겹치는 시간이 아니었기에 마주치는 일은 없었고, 관심 밖의 일이라 굿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작은 과일바구니를 들고 그녀가 살고 있는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

그곳과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요동쳤을 것이다.

뭐라고 이야기할까? 아마 속으로 여러 번 연습했을 것이다.

나는 TV나 영화에서처럼 머리체를 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온갖 쌍욕을 퍼붓는 상상을 했지만, 어머니의 성품으로 보아 그러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미 손에 든 과일바구니를 보면 알 수 있듯 말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는 숙맥 같은 사람이었다.

[싫으면 싫다고 소리도 지르고 그래야지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가끔 내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그럴 때면 어머니는 한결같이 [그러면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잖아] 라며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숙맥이었다.

그런 착하기만 한 엄마를 나는 숙맥이라고 불렀지만, 사람들은 보살이라고 불렀다.

[엄마 그게 좋은 것이 아니에요! 상대야 그렇다 치고 그러면 엄마는 속이 문드러지겠다.]

[그래도 나는 그게 더 편해] [아이고 어머니~ 그러면 이용만 당해요] [하하하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은데] [아들~ 엄마 걱정해 주는 거야! 고마워~] [아이고 내가 미쳐 제발 그러지 좀 마요. 엄마 그러지 말고 십팔이라고 한 번만 해봐요] [그것도 싫으면 야 이 나쁜 년아! 한 번만 해봐 응?]

그렇듯 어머니는 욕도 할 줄 모르는 동네 사람들 말대로 보살이었다.

“똑똑!” [계세요?] [안에 누가 없나요?] [아무도 안 계세요?] [여보세요]

한참 후에야 문이 열렸고 어머니가 상간녀 N과 드디어 대면하였다.

이미 어머니의 정체를 알고 있던 N은 목소리를 높이며 [왜 오셨어요?] 하며 기선제압에 들어갔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담담해하셨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 [들어오긴 어딜 들어와요. 돌아가세요] 하며 어머니를 강하게 밀었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낮은 어조로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은데... 목소리 좀 낮추지 남들이 들어서 좋은 일도 아닌데...] 하며 담담히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이것 좀 들어요] 어머님께서 가지고 오신 과일바구니를 건네었지만 [이런 거 필요 없어요] 하며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난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어 찾아온 거예요] [필요 없어야 할 이야기도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으니 돌아가세요 얼른 경찰 부르기 전에...] [글세... 경찰을 부르면 어느 쪽이 손해를 볼까요? 아가씨 미련해 보이지는 않는데...] [얼른 나가라고요]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어머니의 조용한 말투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잘못한 걸 알기 때문인지 어쩌면 이 상황을 저 질문 하나로 끝내려는 속내가 있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머니의 물음에 상간녀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어머니가 드디어 조금 전 한 가지 있다던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랬어요] 어머니의 왜 그랬냐는 질문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왜! 당신의 남편에게 접근했느냐 혹은 젊은 나이에 나이 든 아저씨에게 왜 빠졌느냐 같은 포괄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질문을 듣자마자 격양된 목소리로 [뭘! 왜 그래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좋아해서 좋아한다고 말한 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건데 뭘! 왜 그래요.]

[부모님은 아세요?] [그건 알아서 뭐 하시려고요] [알았어요 아가씨 생각 잘 알았으니 이만 갈게요] [다신 오지 마세요.] 돌아서는 어머니의 뒤에다 어머니가 가지고 온 과일 바구니를 던져지며 다시는 오지 말라는 상간녀를 잠시 바라보던 어머니가 아무런 말 없이 잠시 쳐다보다가 뒤돌아 나오셨다.

당시 어머님께서 느끼셨을 감정을 내가 알 수는 없겠지만, 상실감 혹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어쩌면 자신을 원망하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

결혼하지 않으면 죽겠다며, 자신의 각오를 표현하시며 따라다니셨던 아버지였기에 어쩌면 배신감이 컸을 수도 있겠다.

더욱이 어렵게 결혼한 집안에서 장남도 아닌 아버지가 중증 치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셨기에 갖은 고생을 다 하시며 이곳까지 오셨기에 당신의 지난날이 한탄스러웠거나 이런 꼴을 하게 만든 아버지가 원망하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복잡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동네 사람 들과 부쩍 가깝게 지내셨으며 평소 자신의 모습과는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음도 많아지셨다.

나는 엄마의 그런 행동이 진심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과한 행동, 한껏 들떠있는 목소리 그것은 치밀어 오르는 그것을 억누르기 위한 어머니 당신만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어떨 때는 막걸리도 마셨으며 어떤 날은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기도 하시며 아픔을 잊으려 노력하고 계셨다.

어머니가 N의 집을 찾은 날 아버지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폭행과 폭언을 예상했으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양 술도 드시지 않았고 녹슬은 기찻길도 부르지 않으셨다.

그리고 어머니도 더는 아버지의 외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아버지가 어머니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화를 내시다가도 내가 들어가면 참는듯한 모습도 가끔 보였기에 그런 생각을 했다.

늦은 밤 여전히 녹슬은 기찻길을 부르며 귀가하시는 아버지를 대문 앞에서 우연히 목격했다.

[휴전선 달빛 아래.... 어 이게 누구야 아들이네~ 여기서 뭐 하냐?] [노랫소리 들리길래 나와봤어요] [와하하 그래! 그러면 한 곡 더 불러줘야지] [그만하세요 많이 취하셨네요 어서 들어갑시다.] [아들이 그러자고 하면 그래야지 내가 무슨 힘이 있나 와 하하!]

그렇게 등 떠밀려 방으로 들어오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여보 ~, 여보~ 물 좀 주라, 여편네야~ 물~]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물 한 대접을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리시곤 다시 부엌으로 나가버리셨다.

또다시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을 예상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애창곡인 녹슬은 기찻길만 서너 차례 열창하시다 잠이 드셨다.

이미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나는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아버지의 노랫소리만 들려도 소스라치게 싫었고 결국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내가 있던 곳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떠나 벼렸다.

진학이라는 말은 핑계였고 더는 노랫소리가 아니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집을 떠나던 날 어머니의 눈빛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 죄책감에 절로 눈물이 난다.

어머니는 말하지 않으셨지만 울고 계셨을 것이다. 눈빛이 그랬다.

어머니는 말하지 않으셨지만 그래 너라도 살라 하며 이야기하고 계셨다.

보내기 싫어하셨다. 눈빛이 그랬다. 하지만 나 역시 살고 싶었고 당시 나는 아주 비겁한 놈이었다.

현실도피를 하였으니 말이다.

저 살자고 어린 여동생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나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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