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母스 9화
# 녹슬은 기찻길
쉴 새 없이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가 토해내기를 반복하였다.
후 ~ 하고 내쉬는 쉽 소리가 거슬리니만큼 크게 들렸다.
눈을 뜨고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내렸던 팔을 들어 다시 대련자세로 바꾸자 그녀가 정면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정확히 예상했던 공격패턴이었다.
앞발을 중심축으로 하고 180도 회전하며 뒷발을 길게 뻗어 들어오는 N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차자 [컥] 소리를 내며 뒤로 나가자빠졌고 그런 N에게 도발하듯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아직 멀었으니 일어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치 영화 정무문에 출현한 이소령의 그것처럼 행동했다.
오래전 영화 정무문을 보았을 때 상대에게 손가락을 까딱대던 리엑션이 너무 멋져 보여 언젠가 꼭 나도 저런 동작을 해 보리라 생각만 했었는데 그날이 오늘 이었다.
나의 도발적인 행동이 눈에 거슬렸는지 아니면 나가자빠진 여인이 안타까워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순간 한 명의 관원생을 추가하셨고 또다시 2:1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지 몇 명을 붙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1 격 했어요 아직 멀었다고요 보세요 어떻게 하는지 당신이 어머니에게 주셨던 고통 고스란히 돌려줄께요.’
뒤이어 들어온 사내는 처음 체육관에 왔을 때부터 내가 가르치던 옆반의 동갑내기였지만 서로시간이 맞지 않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였다.
손기술을 특히 잘하는 친구였는데 못본사가 움직임이 많이 빨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치고 빠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타이밍 잡기가 쉽지 않았다.
녀석이 내 손등을 치면서 목을 노렸다. 아주 일반적인 공격스타일이라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 후 빠지는 시간이 너무 빨라 반격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잠시 녀석을 상대하는 동안 N이 일어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처음 공격 후 제정 비할 시간 없이 바로 들어올 것이다.
2:1 상황이 되면 흔히 그런 공격을 한다. 경험이 많다는 건 이럴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움직임을 미리 예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정확히 친구가 선공한 후 제정 비할 시간 없이 N의 공격이 들어왔고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리라는 생각을 미리 하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뒤이어 들어오는 공격을 쉽게 반격하는 데 성공하였다.
똑같은 동작으로 똑같은 부위를 이번에는 조금 더 힘을 실어 내질렀다.
[컥] 그녀의 신음에 희열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손가락 까딱거리는 걸 하지 않았다. 아니 잠시 잊어버렸다.
[중지!] 아버지가 대련을 중지시키셨다.
이유야 뻔했다, N이 걱정돼서 그랬거나 상대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언제나 그랬고 이번에도 그러했다. [다들 빠지고 양섭이하고 한철이 나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받아들여야 한다. 친구와 쓰러져있는 N에게 짧게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틀어 자리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악에 바친 N이 순식간에 달려와 뒤에서 목을 잡아 제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이라 그만 뒤로 자빠졌다.
이번에도 반칙이었다. 관원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그런 N의 도발적 행동을 꾸짖었지만 분을 삭이지 못한 N은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아버지가 목소리에 힘을 실어 묻자 [저 자식이 일부러 같은 곳을 때렸다고요]
[그걸 알았으면 피했어야지 그렇다고 운동하는 사람이 반칙을 해?] [아까 손가락 보셨잖아요 도발한건 저 자식이 먼 자라고요] [그전에 이미 인사할 때부터 네가 먼저 반칙을 했잖아]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길로 탈의실로 들어가 환복 후 체육관을 빠져나와 7인조 멤버인 호철이에게 전화를 걸어 근처 호프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미 어두워진 거리의 불빛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호프집에 먼저도착한 내가 500cc 맥주를 다 마실 때쯤 기철이 들어왔다.
[어이 도끼] 하며 들어온 호철이가 서둘러 자리에 앉으며, [무슨 일이야?]하며 말을 건넸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빅토리 애들이 뭐라고 해?] [그런 거 아니야 너도 한잔해~ 누나! 여기 500 하나요] 호철이에게 맥주를 전달하기 위해 우리 곁으로 오신 누님을 보는 순간 서둘러 남아있던 맥주를 마시고는 [나도 한잔 더 주세요] 하며 빈 맥주잔을 내밀자 힐끗거리며 쳐다보며 [야! 적당히 마셔라] 하시며 꾸짖었지만 [그냥 한잔만 더 줘요] 하며 더는 말하지 말라는 듯 적당히 무시했다.
이곳 술집의 사장님은 상인협회 회장님의 여자친구분이 운영하고 있는 곳인데 사장님과는 막역한 사이로 내가 시장에서 잠시 호떡 아리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형이다.
나이차이는 제법 있었지만 가치관이나 관심사가 너무나도 닮아있어 자주 음악과 문학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형님이었다.
그런 형님의 여자친구가 이곳의 사장님이다.
제법 많은 시간을 형님의 집에서 보내곤 했는데 형님집에는 지금은 양생 되지 않는 LP판을 상당수 보유하고 계셨다.
나는 LP판에 바늘 글키는 소리를 좋아한다. 저장된 소리가 나오기 전 잠시 들리는 지직거림이 마냥 좋다. 지금이야 아날로그 감성 이라며 폄훼하겠지만....
비틀스의 감미로운 음악부터 아이언 메이든의 강렬한 메탈음악까지 취향도 너무나도 닮아있어 형님을 많이 좋아했고 의지했다.
젊은 나이지만 상인협회 회장을 하고 있을 만큼 성격도 인성도 훌륭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아니 호철이에게 전화 걸기 전 형님댁으로 가고 싶었지만 형님은 그때가 가장 바쁠 시간이라 호철이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그러면 왜 여기서 청승 떨고 있는데?] 호철이가 굿이 청승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비아냥 거리듯 말을 걸어왔다.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창피했다 어떻게 아버지가 바람났다고 말을 하겠는가 말이다.
[그냥! 친구하고 술 한잔하고 싶어서 불렀어 왜! 싫어?] [미친놈] [진짜야] [진짜는 무슨 내가 널 모르냐 말하기 싫으면 굳이 말하지 마] [고맙다 친구야] [미친놈... 한잔하자] 하며 호철이가 술잔을 내밀었지만 응대하지 않았다.
술잔을 내밀어주었음에도 응하지 않은 버릇없는 나를, 말없이 응원하고 있는 호철이는 그런 좋은 친구였다.
[그만 일어나자]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호철이에게 말하자 당황한 호철이가 [왜! 가려고?] 하며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친구 봤으니 가야지 하하하] 하며 어색해하는 호철이를 보면서 멋쩍게 웃어 보였다.
[미친놈] 호철이가 따라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데 형님이 들어오셨다.
[어 뭐야? 언제 왔어? 가려고?] [예 형님 다음에 다시 올게요 오늘은 이만 가려고요] [어 그래 왔으면 일찍 연락을 주지... 암튼 그래 다음에 보자] 형님이 아쉽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사실 형님을 보는 순간 울컥하면서 심장이 요동쳤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위로받고 싶었지만 2달 후 결혼을 앞둔 형님을 위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달 후면 형님은 더 이상 나를 위해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고 함께 고민하고 응원해 주던 자신의 시간도 당신의 가정을 위해 사용하게 되겠지.
아버지의 외도나 형님의 결혼은 분명 다른 것이지만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건 매 한 가지였다.
슬픔은 언제나 한꺼번에 오는 듯하다.
참기 어려울 만큼 숨쉬기 어려울 만큼의 고통을 주지만 그렇다고 이겨낼 수 없을 만큼은 아니다.
물론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나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서둘러 가계문을 나온 나와 호철이는 그 길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내가 어머니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얼굴만 삐죽 내밀어 인사하고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같은자리를 지키고 있던 베개를 집어 들어 잠자리를 만들고 아버지가 귀가하기 전 서둘러 잠에 빠져들었다.
평소보다 빨리 체육관을 나왔고 술도 한잔 했으니 술기운 때문인지 피곤함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센가 잠이 들어 버렸다.
한참 숙면 중이던 내가 일어난 건 아버지의 노랫소리 때문이었다.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어버이 정 그리워 우는 이 마음.] 노랫소리에 잠에서 깨어 난 나는 귀를 틀어막으며 짜증스럽게 혼잣말을 하며 일어났다.
[에이 저놈의 녹슬은 기찻길] 귀를 틀어막아도 들리는 노랫소리에 또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만취하신 아버지의 대문여는 소리는 언제나 떠들썩했고 놀란 어머니는 언제나 주변분들에게 미 안 해하셨다.
‘끼리릭 쾅!’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조용히 좀 해요 동네사람 다 깨겠어요]
어머님이 만류하셨지만 아버님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녹슬은 기찻길아 ~]
잠에서 깨어난 내가 양쪽 귀를 틀어막은 체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간을 확인했고 시간은 어느덧 새벽 2시가 넘어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귀가시간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12시를 넘긴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오늘은 평소 귀가시간 보다 한참 늦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들어오신 것이었다.
그 덕에 일찍 잠에서 깨어 난 나는 이후 벌어진 아버지의 폭거를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고 그건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 (trauma)가 되어 지금까지도 마음의 상처가 되어 괴롭히고 있다.
난무하는 육두문자와 유리 깨지는 소리와 가끔씩 들려오는 둔탁한 폭력의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소리는 미치도록 나를 힘들게 하였다.
닫힌 문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에 현장의 그림이 그려지는 듯 선명했으며, 그럴수록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소리와 싸움하고 있을 때 이번엔 안방문 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어머니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더는 소리와 싸우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어머니가 마당에 널브러져 계셨다.
방문 여는 소리에 마당에 쓰러져 계시던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밖으로 나오는 나의 눈과 마주치자 나오지 말라는 손사래를 치셨지만 더는 참을 수 없어 달려가 쓰러진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목으로 삼켰다.
잠시 어머니를 안고 있던 내가 일어나자 어머니는 이미 무언가를 눈치채셨는지 나의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셨고 계속해서 자신의 몸 쪽으로 나의 팔을 잡아당기시며 고개를 절레절레하셨다.
당신의 그 모습은 상처 입은 유리창 같아 보였다.
인간이란 시련과 역경 속에서 성장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녹슬은 기찻길은 내 마음속에 깊은 트라우마 (trauma)로 남았지만, 그 덕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가족에게는 큰소리 한번 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어이없게도 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나로 하여금 바르게 살 수 있었던 교훈이 되어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