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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담 일곱 번째 이야기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도 되는 것 사이

by 서기선 Mar 29. 2025

노스담은 인간의 영역에 발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오늘은 그랬다.

하지만, 굶주림은 모든 걸 바꾼다. 심지어 가치관 까지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동일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해 본 동물이라면 노스담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자신의 가치관을 내던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노스담은, 이날을 가장 부끄러운 날로 기억하게 되었다.




허기가 뱃속을 쥐어뜯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허기가 생기면 온몸이 차가워진다. 마치 꺼져가는 모닥불처럼.

노스담의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공복 상태로 3시간이 넘었고, 마땅한 사냥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올빼미가 두려워 나가지 못했을 때에는 비라도 내렸기 때문에 지렁이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건기인 요즘은 고작해야 사마귀가 전부인데 녀석들은 보호색을 뛰고 있기 때문에 시력이 좋지 않은 노스담이 사냥하기엔 조금 까다로운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도 넉넉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어디에 있을지 모를 불투명한 사마귀를 찾느니 차라리 확률 높은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났겠다고 판단했다.
노스담은 숲의 끝자락을 벗어나 인간의 영역으로 발을 디뎠다.
이곳도 위험하긴 매한가지이지만, 동시에 기회도 많기 때문에 이럴 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먼저 도시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을 중심으로 화단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메뚜기나 사마귀 그리고 지렁이 같은 녀석들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원 어귀에는 아직 먹어보진 못했지만, 인간들이 떨어뜨린 빵조각 혹은 햄 같은 것도 많다.

"어느 쪽을 먼저 가 볼까?" 공원에 도착한 노스담이 벤치를 사이에 두고 좌 우측의 화단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러던 순간 벤치에 앉아있던 노인이 '툭' 하고 빵조각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분명 빵을 떨어뜨렸지만 주으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전에 봤을 땐 노스담만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번엔 그가 노스담의 존재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한 건 그가 한참을 노스담을 바라봤지 때문이었다.

그러다 노인은 노스담이 있는 쪽을 향해 빵조각을 한 번 더 던져 주었다.

망설임 없이. 분명, 노스담을 향해 던진 것이었다.

노스담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몸을 숨겼다.

'왜?' 왜 자신에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그것보다 배고픔이 먼저였다.

배가 고팠다.

눈앞에 먹이가 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한참 동안 나뭇잎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노스담이 살며시 머리를 내밀었다.

노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마치, 노스담이 빵을 먹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끝내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노인은 천천히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떠나면서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벤치를 벗어나 사라졌다.

노스담은 그제야 빵조각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냥감이 아니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기회는 몇 번 있었지만 먹지 않았다. 굳이 손수 사냥한 먹이가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검증되지 않은 먹이를 먹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동물들이 먹는 모습을 보기는 했기 때문에 그것이 안전하다는 걸 그도 알고 있지만 그는 그냥 그랬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한기가 올라와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손발도 바들바들 떨렸다.

그는 한동안 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가 평생 해보지 않았던 사냥이 아닌 시혜(施惠)의 방식이기도 했으며, 처음으로 인간의 먹이를 베어 무는 순간이기도 했다.

… 달았다.

그는 다시 한번 베어 물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렇게 서너 번 더 베어 물자 점점 허기가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와 함께 찾아온 낯선 마음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그는 씹던 것을 멈추고, 다시 바닥을 내려다봤다. 아직 남은 빵조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몸을 돌려 숲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입 안에 남은 부드러운 감촉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그 노인은 왜 빵을 줍지 않았을까? 배가 고파도 먹지 않는 선택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 노인은 배가 불렀기 때문일 거야! 라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려 노력도 해 봤다.

하지만 남루한 모습이며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빵 한 조각으로 배가 부를 리 없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왜?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먹은 빵 조각 역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노스담은 처음으로, 삶이라는 것이 단순히 생존의 연속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얻은 먹이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살아 있는 느낌'이 아닌 '살아가는 의미'를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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