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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Apr 25. 2023

21km 달리기는 언제 할 수 있을까?

HALF MARATHON 기록

달리기를 뒤돌아보면 나름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모두들 그렇지 않을까?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이야기로 본인의 달리기가 쓰일지 기대해도 될 것이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긴 거리 또는 빠른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는,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적어도 나는 그랬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시작해 보면 알겠지만, 가늠하지 못했던 거리를 km 단위로 가늠하게 되고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지난 나이키어플의 기록을 보니, 달리기 시작 후 1년 정도는 한번 달릴 때 3km 내외의 거리를 달렸다.

지금과는 다르게 웜업이나 쿨다운도 제대로 안 했던 것 같고, 그저 나가서 3km 정도 달리고 힘들어서 들어왔었다. 그래도 '잘' 달리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달렸고, 그러다 발목과 무릎이 아팠었다.

당연하지, 스트레칭도 안 했으니.


어플 기록을 계속 보다 보면, 신기하게 1년 이후 2-3년 정도에는 한 번 뛰면 5km 내외를 뛰었더라. 점차적으로 km가 늘었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거리가 점프하는 느낌이다.


말이 2-3년이지, 꽤나 긴 기간 동안 5km 내외의 거리를 뛰었었다. 물론 대회는 10km에 가끔 참가하긴 했지만, 그건 1년에 2-3번 정도였다. 러닝크루에서도 주로 5-6km를 뛰었고, 혼자서 뛸 때도 석촌호수 2바퀴 (거의 정확히 5km)를 뛰며 지냈다.


누군가 하프 또는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나의 이야기가 될 리 없었으니까. 5-6km의 달리기 들도 매번 쉽지 않았다. 항상 숨이 찼고 항상 달리가 아팠고.




또, 아주 기억에 남는, 타인의 달리기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더욱 나는 길게 뛰는 이야기와는 멀다고 느껴졌다.


달리기를 시작했을 무렵, 나는 요가원에서 요가도 시작했었다. 꽤나 꾸준히 다녔었고, 요가원에서도 가끔 담소를 나누고 그러는 것이 조금 어색하지 않을 그런 시기였다. 요가 시작 전 어떤 남자분이 있기에 말을 했었다. 그때는 더욱 남자 요기들은 적었기에. 달리기 얘기에 나도 좋아한다고 했었고, 그분이 하프 마라톤을 뛰었다고 말했다.


하프 마라톤을 뛰었다는 자체가 무척이나 부러웠고(잘 뛰고 싶은 동경은 있었나 보다),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었다. '그렇게 힘든 걸 알았다면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며, 아마 다시는 뛰지 않을 것'이라고.


이만큼 대단한 것이라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는 듯, 무서움과 범접할 수 없음이 느껴졌다.

(물론 이제 와서 보면 나에게는 해당되지는 않는 말이지만.)


나는 그런 상태였다. 하프마라톤은 무슨, 그저 조금 달리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런 상태에서 즐기는 그런 상태.




사실 3년이라는 시간도 꽤나 꾸준히 달리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매주 나가는 크루가 있었고, 1주일에 한두 번은 혼자서도 달리고, 여행을 가서도 달리기도 해 보는, 그런 자칭 '러너'라고 말하고 다녔다. 달리지 않는 사람들은 나의 SNS 계정을 보며 매일 그렇게 어떻게 뛰냐며 칭찬과 부러움을 표했고, 같이 달리는 사람들 중에서는 평범한, 잘 달리는 축에는 속하지 않는 그런 괴리감의 러너였다.


크루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나도 함께 했었다. 처음 뛰는 사람들도 많았고, 원래 뛰어버릇하거나 풀코스를 몇십 회 하신 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3년 정도가 지났을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달리기 실력이 늘어가는 것이 보였다. 10km 대회를 주로 나갔던 사람들이, HALF 마라톤을 신청하고, 완주를 위해 마라톤 훈련에 신청해서 훈련하고 운동하고. 그렇게 나와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던 사람들이 점차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 또한, 어느 순간은 5-6km가 예전만큼 힘들지 않을 때도 생겨났다. 그러면서 점차, 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 실천하는 논리적 회로였다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도전의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처음 10km를 넘게 뛰었었다. 석촌호수 5바퀴(12.5km)를 뛰어보았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간다는 느낌은 짜릿했다. 그리고 그 시점으로부터 조만간 21km를 뛰어야겠다고 혼자서 다짐했다. 실패할 수도 있으니, 주변에게는 너무 알리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에 21km는 생각하기 어려운 거리였어서, 자주 달리던 친구와 17km를 기약했다. 그 친구도 나도 달려본 적 없는 거리. 대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도전 그 자체였다. 무척이나 설렜다. 이내 한강을 17km 정도 달렸다. 친구와 함께라서 더욱, 더욱 뿌듯하고 좋았다.


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21km를 달렸다.


기약 없이 나간 밤이었다. 화요일 저녁 퇴근 후 7시 30분.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무척이나 달리고 싶은 충동에 스트레칭 후 출발하였다. 10km는 넘겨야지 라는 생각에 긴 코스를 머릿속으로 짜서 뛰기 시작했다. 10km, 12km, 14km가 지나면서 느껴졌다. 오늘 21km를 뛸 것이라고.


가본 적도 없는 코스로 점점 거리는 늘어갔으며, 점점 힘들어졌다. 20km를 뛴다는 것이 가능한 걸까?

17km가 넘어가면서, 미지의 영역이라서 그랬을까, 4km가 남았다는 생각 때문일까, 무척이나 힘들어졌다. 1km가 줄어들지 않는다. 100m도 힘겹게 느껴졌다. 발목이 아프다가 통증이 사라진다. 무릎도 아팠다가 사라진다. 오른쪽이 아팠다가 왼쪽이 아프기도 했다. 그러다가 복근이 아팠다. 달리는데 왜 복근이 아프지. 어깨도 아프다. 내딛는 발자국들에 모든 감각들이 느껴졌고 여러 감정들이 느껴졌다. 마치 첫 10km 대회처럼.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뛰고 싶지 않았는데, 21km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달리는 상태였다. 오래간만에 뛰기 싫음, 멈추고 싶음이 올라왔다. 그게 좋았다. 그렇게 열심히 뛴 적이 얼마만이었던가.


일상의 루틴을 벗어난,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이런 감각과 감정들은 분명 부정적인 것들인데 좋았다. 지나고 나니 미화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약간의 역설적 희열이기도 할 것이다.





내 주변엔 모두 달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대회를 나가 마라톤을 뛴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아름답고 영웅적인 달리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이야기가 쌓여있다. 짧지는 않은 달리는 시간들이 모이고 이야기가 쌓여 글을 쓴다.


그리고 참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달리기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직도 경험할 수 있는 달리기의 세계와 여러 대회들이 남아있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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