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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Jul 31. 2024

한여름 장거리 달리기 회고

25km 3시간 달리기

올 한여름, 평소보다 더 길게 달려보았다.




'월간 장거리'라는 타이틀을 내세웠다. 물론 내세웠다는 건, 주변 지인들에게, 그리고 여기 이곳에 글을 쓴 정도 이다.


그렇게 타이틀을 내세우고, 나름 나 자신과의 '약속'을 했더니, 신기하게도 까먹지 않았다. 한 달의 시간이 점점 흘러가면서 월 말이 되자, 슬슬 뛰어야겠구나 싶었다.


타이밍을 보다가 7월이 모두 지나기 하루 전, 시간을 냈다. 25km 달리기. 속도는 천천히(대략 6'30" ~ 7'00" /km).



7월 30일.

가장 더운 날 중 하나겠지 싶었다. 그래도 왠지 8월로 넘기면 안 될 거 같은 압박에 7월로 날을 잡았고, 그 대신 더운 햇살을 피하고자 오전 6시 30분부터 달려야겠다 마음먹었다.


6시 기상.

아침잠이 많은데, 일어나는 건 사실 의지다. 아침에 자고 싶은 의지처럼. 오늘처럼 스케줄이 있다면 어김없이 잘 일어나는 편이다.


비몽사몽. 남들과의 달리기 약속이 아니라서 왠지 조금은 여유롭게 준비하였다. 스무디를 갈아 마시고, 화장실도 한번 다녀오고. 갈아입을 옷도 챙겼다.


지금 잠시 월세로 얹혀사는 집도 서울 한강이 가깝지만, 오늘은 차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다. 20여분 떨어진 곳에 나만의 7km 코스가 있고, 차를 타고 간다면 내 차가 곧 나의 달리기 거점지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마음이 좋다. 핸드폰도 놓고 뛸 수 있고, 마실 음료수도 보관할 수 있다.



6시 30분, 차를 타고 이동.


생각한 시간보다는 조금 늦어졌지만, 별로 중요치 않다. 날씨가 해가 쨍쨍한 건 아니기에 기온의 변화는 크게 없을 것 같다. (물론 기온이 낮다는 건 아니지만,)


운전하며 가는 동안에는 20km(Half)를 넘는 거리를 뛸 생각에, 평소와는 다른, 살짝의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지하였다.



7시 도착, 첫 번째 바퀴 출발.


원하는 곳, 가장 한강과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한다.

스트레칭을 가볍게 하고, 장거리 달리기 출발한다.


코스는 광진교와 잠실철교를 도는 코스이다. 한 바퀴가 7.2~7.3km가 나오니, 오늘의 목표인 25km를 달리기 위해서는 세 바퀴 하고도 조금 더 뛰면 된다.



달리기를 출발하자마자 광진교로 올라가는 오르막이 나온다.


오늘 코스는 오르막이 두 군데, 대교를 오르는 곳 두 곳에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대교에서 내려오는 곳도 두 곳이며, 내리막은 부상방지를 위해 걷는다.


광진교로 올라가는 오르막을 지나고 다리를 건넌다. 달리기 좋은 직선 코스는 아니지만 괜찮아, 아직은 천천히 7분 페이스로 달리는 거니까.


첫 바퀴부터 다리가 조금 무겁고, 호흡은 쉽지 않다. 몸이 덜 풀렸으니 다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온도 28도에 습도가 꽤나 높아 시원한 맛이 전혀 없다. 마치 몸의 열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몸 안 속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느낌이랄까.


머릿속은 걱정들로 들끓었다. 첫 바퀴부터 이러면 괜찮을까? 부상을 당해서인지, 요즘 달리기를 하면 걱정들이 많다.

몸의 감각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발목도 더 자연스럽게 구름을 연습하고. 부상이 있는 왼쪽으로 착지가 약할까 싶어, 일부러 몸의 무게를 조금 더 실어보고. 허리디스크도 살짝 찢어져 있으니 과신전이나 너무 굽지도 않은 중간 상태를 유지해 본다.


광진교를 지나 한강변을 달리고, 다시 잠실철교로 올라서면, 꽤나 긴 직선을 만난다. 다리 위의 공간은 뭔가 다른 세계 같기도 하다. 지나가는 자전거들과, 행인들, 그리고 2-3분마다 지나가는 전철들. 마치 따로 분리된 어느 한 공간으로 온 것만 같았다.


다리 위에서는 달리며 지나치는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만나는 그 순간은 매우 짧아서, 지나친 뒤 혼자가 되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홀로의 시간들은 꽤나 길게 느껴지고, 그때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잠실철교가 끝날 즈음에는 내리막이 있다. 아주 잠깐 쉬면서 걸어 내려간다. 1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쉼은 다음 달리기를 다시 시작할 힘을 준다. 다시 한강변을 따라 달리며 시작지점인 광진교 근처, 주차된 차까지 달려본다. 달리는 동안 주변 풍경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한 바퀴 치고는 믿지 못할 힘듦과 걱정에 조금 사로잡힌 채 첫 바퀴가 끝난다.



8시, 두 번째 바퀴.


차에 도착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기다렸던 스포츠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장거리를 뛰는 오늘은 나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차 창문에 핸드폰을 걸어두고 나의 모습도 삐뚤게 찍어본다. 달리기에 지쳐 핸드폰의 수평을 맞출만한 생각은 나지 않는다.


숨 고르기와 급수는 잠깐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출발한다.


힘차게 두 번째 바퀴를 시작하자마자 드는 생각. 내 다리상태가 벌써 이렇다고?


잠깐 서있다가 달리게 되면, 다리가 무거워졌다는 게 몸속 깊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만나게 되는 광진교 오르막. 경사가 더 가팔라진걸까.


사실 두 번째 바퀴가 오늘의 달리기 중 가장 하이라이트 같았다. 첫 느낌은 다소 묵직했지만, 이내 페이스를 되찾자 몸이 풀린 느낌이 아주 좋았다. 다리는 잘 풀려 있었고, 첫 바퀴때의 걱정들은 많이 사라졌다. 두 번째니까, 벌써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착각했다.


그런 착각 덕분에, 세컨드윈드 같은, 달리기 자체가 힘들지 않았다. 리듬감이 충만한, 속도도 내보는, 호흡도 신나며 걱정과 생각이 사라지는, 무아지경의 달리기를 잠깐이나마 즐겼다.


존재하는 느낌, 여기 있는 느낌, 살아있는 느낌. 달리기와 호흡의 리듬이 맞아떨어졌고, 느낌을 이제서야 글로 표현하였지만, 사실 달리는 당시에는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저 달렸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바퀴를 뛰는 시간은 금방 흘러갔고, 이내 오늘 달리기 코스의 집(home)이라 표현할 수 있는 차에 도착하였다.


다만, 그런 신나는 달리기 느낌은 14km에 가까워오자 힘들다는 느낌으로 바뀌고 있었다.


9시, 세 번째 바퀴.


힘든 상태로 사진도 한번 더 찍어준다.


아까보다 조금 더 쉬어주고, 음료수도 조금, 아니 많이 더 마셔준다. 더 마셔도 마신 것 같지 않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온도는 더 올라가 있고, 습도는 내려가지 않는다. 얼굴에 열기가 가득한 느낌이 드는 상태.


마지막 바퀴를 향해 출발하고, 이때부터는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도 긍정적이었던 걸까. 42km도 곧잘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종류의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올해 하반기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상상. 혹시나 여건이 된다면 시카고 마라톤에서 완주를 해보는 상상. 시카고 마라톤 결승점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반겨주는 생각. 아니면 JTBC 마라톤 풀코스를 나의 동료들과 완주하고 그걸 공유할 생각. 마치 이미 42km를 뛴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몸은 지쳐있었다. 정확히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다리 상태는 괜찮았다. 괜찮았다는 건 딱 20km 정도 뛴 느낌이었다. 적절히 지친 상태였고, 적절한 피로도로 인해 여기저기 아파왔다는 것이다. 달리기가 정직한 운동이라는 말처럼, 두 다리에서는 정직한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열기가 머리에서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어지러움. 탈수. 다 같은 말이다.

다리의 상태와 어지러움의 상태 레벨이 다르다는 게 아쉬웠다. 다리는 더 달릴 수 있는데, 어지러움은 그만 달리라고 외치는 듯. 그런 상태에 날씨 탓을 해본다.


아직 19km인데, 달리기를 멈추고 걸었다. 잠깐.


나는 달릴 때 악바리다. 악바리라는 말은 좋은 게 아니다. 훈련을 하지 않고 몸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 이상을 하고 싶어, 악에 받쳐, 그 이상을 뛰려고 한다. 나 자신의 몸 상태보다 그 이상을 해내려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 날은 그렇지 못하였다. 더 상세히 말하자면, 아마 버틸 수 있는 상태 이상을 뛰다가 걸었던 것 같다.


걸었다.

그리고 시계를 보며 딱 100m만 걷는 것으로 혼자 정한다.

그리고 다시 뛰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걷고, 이내 뛰고.


세 번째 바퀴가 끝나갈 때쯤, 25km를 완주하려면, 거점지인 차에 도착 후 3km를 더 달려야 함을 깨달았다. 절망스러웠다.


사실, 오늘 달리기의 아주 초반에는 7km 코스를 네 바퀴 달리는 상상을 했다. 허무맹랑한 목표였던 것을 깨달았다.



10시(언저리), 마지막 3km.


마지막 휴식시간. 남은 물과 스포츠 음료를 모두 마시고, 사진도 찍는데 얼굴은 찌푸려지고, 5년은 더 늙어진 모습.


잠깐 생각한다. 3km가 남았는데 코스는 어떻게 할까. 마음 편히, 오르막이 없는 한강변을 1.5km 뛰고 왕복할까 했다. 하지만 ‘그래도'라는 이상한 생각에, 같은 코스를 다녀와야지 라는 생각에, 오르막이 있는 광진교로 1.5km를 달리기로 한다.


남은 3km를 달리는 동안에는 시계를 자주 보았다. 온 세상은 더웠고 그저 힘듦만이 남아있었다.


허리는 아프고, 다리에는 쥐가 살살 올라오고. 오르막 경사는 더 가팔라졌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문득 생각한다.


달리는 속도는 현저히 느려져, 거의 걷는 수준까지 왔다. 그러다 뛰는 걸 또 멈추고 잠깐 걸었다.

아까보다 더 길게 걷는다. 숨이 돌아올 때까지.


1km가 남은 순간부터는, 그때부터는, 나에게 되물었다.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어디가 아프냐고. 다리가 아프고, 힘든 건 머리가 어지러워라고 나의 물음에 답한다. 그러면 덜 힘들까 싶어서, 그렇게 자신에게 되묻고 답변하면서 남은 거리를 거의 걷는 속도로 달린다.


25라는 숫자를 채우기 위해 왜 그렇게 필사적이었을까.



달리기가 끝나면 다시 일상이 된다.


평소의 숨을 쉰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인지하지조차 못한다.


차올랐던 숨, 터질 것 같았던 붉은 얼굴, 어디 한 곳 크게 물집 잡힌 듯한 발가락(실제로는 멀쩡했다.). 달린 후 20-30분 정도가 지나자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내 몸은 평온함을 되찾는다.


물론, 이 날의 어지러움, 탈수를 회복하는 데에는 1시간 정도가 걸리긴 했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하루종일 회복을 위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러 종류의 달리기를 사랑한다.

'천천히'라는 단어를 모티프로 러닝클럽에서 활동을 하기도 하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 달리는 시간도 사랑한다.

달리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달리기 문화와 달리기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오늘같이 나만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달리기 시간도 사랑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몸담는 여러 세계, 여러 우주가 있다고 하면, 나는 달리기 우주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우주에 내 몸을 푹 담그는 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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