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그래 나에게도 '불행'한 일만 있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가 혼자 꼭꼭 숨겨왔던 여러가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더 공유하고자 브런치 저장 글에 생각나는대로 끄적여놓았지만, 결국 한동안 나는 저장된 글을 더 발행 할 수 없었다.
브런치에 올린 글들에 좋아요가 달리고 구독자가 늘어날 때 마다, 내가 쓴글의 제목부터 내용까지 스스로 한번씩 더 읽게 되는데, 밤낮없이 이전의 괴로웠던 일들을 다시 읽어내야하는것이 썩 유쾌한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밤에 내가 쓴 글을 한번이라도 더 읽게 되면, 그날은 부모님이 꿈에 나타나 '나 외롭다. 어서 연락하자' 라고 할 것만 같아 죄책감에 잠을 잘 못이루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부모와 있던일을 계속 상기시키고 곱씹는게 좋은 태도가 아니란 것을 나도 안다.
무의식에서 안좋은 생각과 불쾌한 감정, 죄책감이 섞여 나올때, 나는 일상에서도 자꾸만 혼자 흔들리곤 했다. 지금은 퇴사를 했지만, 바로 직전의 직장에서도 그랬다.
우선 아침의 출근길부터 나는 무력함에 축 젖은 채로 샤워를 하고, 제일 편안한 혹은 눈에띄지 않을만한 옷을 입고 출근을 준비했다. 출근 길에 지하철로 가는 중에는 이게 과연 내 의지로 걷고 있는건가 싶기도 했고, 회사 건물 앞에 도착해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온몸에 귀찮음, 무기력함, 짜증스러움을 달고있었지만 '유능한 직장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출근을 했다. 출근해서는 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이지만, 왠지 사무실 내에서는 밝은 기운을 다 흡수해가는 에너지 뱀파이어가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나와 정반대인 사람들이 많아보였다.
우선, 출근길 지하철 역에서는 어떤 교회 어르신 한분이 매일같이 나와 '안녕하세요, 복받으세요.', '좋은 하루되세요' 라며 아무도 시키지않았는데도 수많은 무심한 인파에 대고 웃으며 90도로 인사를 하셨다.
출근길 뿐만이 아니다. 퇴근하는 6시~7시 쯤에는 똑같이 나오셔서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라고 인사를 하시며 늘 그자리에 계셨다.
처음에 나는 '와, 종교의 힘이 대단하네. 교회 전파를 위한거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그 분의 출퇴근 안부인사가 익숙해지고 나니. 저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의지로 하는 일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분은 바쁜 출근길에 어느누구도 본인을 반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나서서 사람들의 출근길 '좋은 하루'를 빌어주셨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하루 그분이 나오지 않으시면 '뭐지, 몸이 안좋으신가' 하면서 그분을 걱정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금 나는 출근을 하지는 않지만, 오늘 아침에도 저녁에도 그분이 그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하루시작과 끝을 같이하셨으리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이렇게 스스로 자처해서 아무관계없는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들은 회사에도 있었다.
바로 전 직장의 상사와 동료였는데, 나는 여태까지 아침에 늘 피곤해하고 화가나있는 상사들을 위주로 상대하고 같이 일을했었다. 그런데 이분은 아침에 출근하면 늘 밝은 미소로 '왔어요!' 라고 반겨주시며 그날그날 나의 달라진 점에 관심을 보여주시며 '머리바꿨어요?'라던가, '오늘 기운이 넘쳐보이네' 라던가, 우울한 기분에 젖은채 출근하는 내 텐션을 아침부터 업 시켜주셨다.
그런 그분이 그렇게 대화를 건네주시면 나는 그제야 아침에 처음으로 웃음을 띄게 되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그 웃음은 오래가지는 않고 나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스스로 내뿜는 어두운 기분에 침작되어 아무에게도 먼저 말 걸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다. 속마음으로는 나도 밝게 웃고 떠들고 일상을 가볍게 살아내고 싶었지만 회사에만 가면 아무와도 말섞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따듯한 분이 옆에 있었는데도 일적인 이야기를 할 때만 먼저 말을 건네고 내 사적인 얘기는 거의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 주말에 뭐했는지 조차 먼저 묻지 않으면 나서서 말하지 않았고 숨길게 많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런데, 새로 만난 팀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화기애애하게 이것저것 사생활얘기를 하고, 너무나 해맑고 밝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같이 있으면 나도 없던 에너지가 날 정도로 긍정적이고 어떠한 삶의 풍파나 상처도 없이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들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밝던 상사분이 또 밝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우리집은 명절에 부모님은 안보고, 남매끼리만 만나.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는 안만나.' 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네?'하며 깜짝놀랐다. 그랬더니, '아, 우리 엄마가 다른 분과 살고싶다고해서 집을 나가고 그 후로는 안만나요.10년은 더됬나'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 놀랐다. 그 분이 성격도 너무좋고 에너지도 밝고 심지어 일까지 빈틈없이 처리를 했기때문에 나는 '이런사람은 분명 부모님이 좋은환경에서 사랑듬뿍 주며 키우셨을거야. 너무 좋았겠다. 나도 저렇게 긍정적이었다면. '이라고 항상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던 것이다. 놀랄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팀에는 그 상사분 못지않게 너무 좋은 에너지를 뿜는 다른 동료도 있었는데, 그 동료도 갑자기 '나는 엄마아빠가 어릴 때 이혼하셔서 엄마가 혼자키워주셨잖아요' 라고 했다. 그 쪽도 부모님의 사정이 복잡해보였고 어쨋든 내가 혼자 넘겨짚었던 '화목'하고 '일상'적인 가정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나와 확연히 달랐다.
나는 세상 불행은 혼자 다 짊어진 사람처럼 내탓 또는 남탓을 하며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었고, 그들은 세상의 모든 행복은 제 것인 마냥 심각한 일에도 곧바로 '문제있어? 그냥 하면되'라며 아무일 아닌듯 웃어넘기곤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믿고 사랑하는 듯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들처럼 살고싶다. 이들처럼 살아야겠다.'
그런데 쉽지않았다. 여태까지 계속 어둠을 파고 혼자 들어가는 습관이 깊게 생겨있었으므로 어떤일에도 내탓을하고, 자책을 했던 나는 회사에서도 점점 이질감을 느끼며 내 스스로가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몸도 좋지않았고, 쉬고싶다는 생각이 너무 커 아무 문제없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도 너무 아쉽게 생각한다, 이런 좋은 사람들이 또 내동료가 되리란 법은 없는데 기회를 놓친것만 같아 아쉽다. 처음부터 이런 사람들을 만났더라면..나도 이렇게까지 힘들어 하진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않기 때문에 인생인거겠지.
아무튼 나는 내 기준에 나쁜사람도 만나고 좋은사람도 만났으니, 이제 사람에 대한 경험치가 더 쌓였으리라 생각한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나쁜사람은 걸러야지. 나쁜사람들은 피하거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줘야지. 그들을 내가 이해하려고 하지말고...그들을 바꾸려하지 말고 차라리 내 자신이 단단해져야지.
그리고 나쁜놈들은 아주 세상에 발 붙히고 살지 못하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