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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다 Jun 22. 2024

행복이 즐거움은 아니다

즐거움은 괴로움과 같이 다닌다

나는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상대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동료나 협조관계에 놓여 있는 상대방이 무엇을 잘해주면 감사한 마음 표현하고 나도 그만큼 더 잘해드리려고 하고, 무엇을 잘 못해주면 그냥 그게 저 사람의 역량인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만다. 딱히 호들갑 떨면서 칭찬하지도 않고, 타박하지도 않는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친구의 민감할 수 있는 사생활은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서로 간의 신뢰가 두터워진다.


하지만 연인관계에서는 다르다. 나에게는 연인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크게 두 번이 있었는데 나는 이 과정을 건강하게 극복해내지 못했다. 첫 번째는 일방적이고 차가웠으며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이혼이었고, 두 번째는 이 이혼 경력으로 인한 주변의 반대로 하게 된 이별이었다. 


결혼은 20대 중후반을 모두 함께 한, 6년을 만났던 사람과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과 행복을 꿈꾸며 떠난 신혼여행에서 상대방은 "결혼한 것 후회해"라고 말했다. 1년 간 붙잡아 보고 설득해보았지만 한없이 냉랭한 태도로 일관한 상대와 결국은 이혼하게 됐다. 그 다음에 만난 사람과는 잘 지내다가 결국 그 사람의 부모님이 나의 이혼경력에 반대하셨고, 그 사람은 그 반대를 거스를 수 없다 하여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나는 결혼하자마자 이혼하고 있다는 불안함에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법원에서 이혼 절차를 마무리했을 때는 드디어 고통 받지 않겠구나 하는 후련한 마음이 가득했다. 극과 극을 달려 활활 탄 재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음 연애를 시작하면서 전 연애(결혼)에서 받았던 고통을 이것으로 보상받는구나 하는 기대로 가득 찼고, 그 뒤의 이별에는 또다시 감정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역시 극과 극이었다. 기대가 컸고, 그 기대가 채워지니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 그 좋았던 만큼 이별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쉽게 놓지 못했고 오래도록 붙잡고 있다가 겨우 놓았다.


이로부터 수 년이 지난 지금, 나를 되돌아보고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 보는 지금, 또 다시 사랑에 상처 받고 욕심과 집착을 마음 속에서 내보내려고 발버둥치는 지금이 되어서야 과거의 나를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게 됐다. 나를 상담해 준 한 분이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관계에 기대가 큰 성향'이라고 말해줬고, 나는 내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충격적으로 끝난 연애를 보상 받고 싶어 그 다음 연애에 큰 기대를 하게 되고, 이 연애는 보통의 연애와 같이 자연스럽게 끝나는 것이었을 뿐인데 나는 이별에 과도한 상처를 받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법륜스님도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행복은 즐거움이 아니다. 즐거움은 괴로움과 함께 다닌다.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 그 사람의 욕망에 뿌리를 둔다. 그 욕망이 이루어지면 즐거워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워한다. 욕망은 항상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욕망이 있는 한 즐거움과 괴로움은 반복된다.


관계, 특히 연인관계에 대한 상처가 컸던 만큼 그 다음 연인관계에 갖는 기대도 컸고 그렇게 변하는 관계에 또 크게 힘들어해오길 반복한다. 그러나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고, 마음은 본디 변하기 마련이므로 관계 또한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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