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릿함과 괴로움을 구분할 수 있는가
많이 사랑했지만 결국 헤어지게 된 연인에 대한 감정은 복잡다단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특히 헤어진 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면 슬픔, 아쉬움, 그리움, 원망, 미안함, 후회 등 온갖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속을 헤집어 놓을 것이다. 그때 그 속은 그야말로 폭우가 내리는 날 온갖 사람들이 걸어다닌 진흙탕 길처럼 엉망진창이 됨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무엇 때문에 내 속이 이렇게 망가진 것인지 그 원인을 알기가 힘들 정도인 것을 말이다.
그러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진흙의 수분은 증발하고, 어느 정도 정리된 혹은 엉망진창인 채로 굳어진 길이 된다. 그때가 되면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도 조금은 정리가 된다. 내 경우에는 그리움과 재회의 희망이라는 감정과 생각이 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재회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희망으로 인해 끌어올렸던 나의 텐션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체험했다. 왜 나는 이런 괴로움을 반복해서 겪은 것일까? 이건 나의 팔자인가, 아니면 내가 자초한 것일까?
그리움이나 재회의 희망은 결국 뿌리가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그렇지만 재회의 희망은 집착과 맞닿아있는 것 같다. '희망'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말에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은 내가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는 욕망과 동의어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욕망은 이루어지면 즐거움이지만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움이다(법륜스님).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괴로움을 겪을 확률이 그만큼 더 높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으로 하여 상대를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재회의 희망(욕망)을 품게 되면, 후자 때문에 괴로워할 상황이 많아지고 이것은 그리워서 내가 괴로운가보다하고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립다는 것은 그냥 감정 그 자체이다. 그리워서 무언가를 한다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욕망의 발현일 수 있겠으나 '그리워서'는 그냥 떠오르는 감정 그 자체이다. 그리우면 그냥 그리워하면 될 뿐, 그립다고 갑자기 찾아간다거나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전화를 계속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운 상대가 시간이 지나도 그립다는 것은 내가 여전히 상대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고,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표현으로 이어지면 그것은 상대의 마음과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뜻이 되기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집착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움과 집착은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같지만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으로 그칠 것이냐 아니면 그 감정을 다루지 못해 이루지 못하는 욕망으로 인한 괴로움의 분출이냐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떠올랐을 때 마음이 아릿하고 슬프고 돌이 얹힌 듯 아프지만 한 두 번의 심호흡 후에는 마음이 차분해진다면 그리움이고, 심호흡 후에도 계속 상대가 다른 이와 함께 있는 상상이나 나와 함께 하면 좋았을텐데라는 상상을 하면서 마음이 괴로워진다면 집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움이 일어날 때 그 그리움을 부정하지는 않되 그리움이 미련이나 집착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리고 싶다. 그저 사랑할 뿐인 마음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