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은 괴로움과 같이 다닌다
나는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상대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동료나 협조관계에 놓여 있는 상대방이 무엇을 잘해주면 감사한 마음 표현하고 나도 그만큼 더 잘해드리려고 하고, 무엇을 잘 못해주면 그냥 그게 저 사람의 역량인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만다. 딱히 호들갑 떨면서 칭찬하지도 않고, 타박하지도 않는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친구의 민감할 수 있는 사생활은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서로 간의 신뢰가 두터워진다.
하지만 연인관계에서는 다르다. 나에게는 연인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크게 두 번이 있었는데 나는 이 과정을 건강하게 극복해내지 못했다. 첫 번째는 일방적이고 차가웠으며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이혼이었고, 두 번째는 이 이혼 경력으로 인한 주변의 반대로 하게 된 이별이었다.
결혼은 20대 중후반을 모두 함께 한, 6년을 만났던 사람과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과 행복을 꿈꾸며 떠난 신혼여행에서 상대방은 "결혼한 것 후회해"라고 말했다. 1년 간 붙잡아 보고 설득해보았지만 한없이 냉랭한 태도로 일관한 상대와 결국은 이혼하게 됐다. 그 다음에 만난 사람과는 잘 지내다가 결국 그 사람의 부모님이 나의 이혼경력에 반대하셨고, 그 사람은 그 반대를 거스를 수 없다 하여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나는 결혼하자마자 이혼하고 있다는 불안함에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법원에서 이혼 절차를 마무리했을 때는 드디어 고통 받지 않겠구나 하는 후련한 마음이 가득했다. 극과 극을 달려 활활 탄 재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음 연애를 시작하면서 전 연애(결혼)에서 받았던 고통을 이것으로 보상받는구나 하는 기대로 가득 찼고, 그 뒤의 이별에는 또다시 감정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역시 극과 극이었다. 기대가 컸고, 그 기대가 채워지니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 그 좋았던 만큼 이별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쉽게 놓지 못했고 오래도록 붙잡고 있다가 겨우 놓았다.
이로부터 수 년이 지난 지금, 나를 되돌아보고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 보는 지금, 또 다시 사랑에 상처 받고 욕심과 집착을 마음 속에서 내보내려고 발버둥치는 지금이 되어서야 과거의 나를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게 됐다. 나를 상담해 준 한 분이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관계에 기대가 큰 성향'이라고 말해줬고, 나는 내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충격적으로 끝난 연애를 보상 받고 싶어 그 다음 연애에 큰 기대를 하게 되고, 이 연애는 보통의 연애와 같이 자연스럽게 끝나는 것이었을 뿐인데 나는 이별에 과도한 상처를 받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법륜스님도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행복은 즐거움이 아니다. 즐거움은 괴로움과 함께 다닌다.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 그 사람의 욕망에 뿌리를 둔다. 그 욕망이 이루어지면 즐거워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워한다. 욕망은 항상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욕망이 있는 한 즐거움과 괴로움은 반복된다.
관계, 특히 연인관계에 대한 상처가 컸던 만큼 그 다음 연인관계에 갖는 기대도 컸고 그렇게 변하는 관계에 또 크게 힘들어해오길 반복한다. 그러나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고, 마음은 본디 변하기 마련이므로 관계 또한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