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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과 Mar 28. 2023

사랑해, 하고 우는 새

잘 살자

누군가의 부고를 듣는 일은 생각보다 더 무너지는 일이다. 일단 첫번째로 믿을 수 없거니와 받아들이기도 전에 밀려오는 충격과 슬픔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최근에 트위터에서는 숨겨진 재능에 대한 트윗이 엄청나게 리트윗을 타면서 각자의 재능들을 자랑하는 플로우가 있었다. 19년도 겨울에 죽은 내 친구도 재능이 많은 애였다. 나는 그 애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았고, 그래서 걔가 더 소중했는데 나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그 애는 죽었다. 영영 떠났다는 전화를 받고 말 그대로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따로 찍어놓은 사진이 없어서 셀카로 만든 영정사진을 봤을 때에도, 그 애의 오빠가 그 애 대신 나를 안아줬을 때도 믿기지 않았다. 믿으면 정말로, 정말로 이별인 것 같았다.


꿈에 한 번만 나오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정말 그 애가 꿈에 나왔다. 꿈에서 나는 왜 그랬느냐고 몇번이고 되물었고 그 애는 웃으면서 고개만 저었다. 그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꿈에 나온 적이 없다. 인사를 하러 온 것처럼. 경황이 없어서 빈소가 어디인지 물어보지 못했는데 지금도 선뜻 연락드려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어쩌면 또 다시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내 나름대로 한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오늘 S의 에세이를 읽다가 눈물이 날 뻔 했다. 사람들은 결국엔 다 죽고,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을 견뎌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늘 사람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남는다. 아직은. 아직까지는.


잘 살자라는 말을 꽤 오랫동안 카카오톡 상태메세지로 올려두었다. 잘 살자라고 말하면 정말로 잘 살 수 있을지도 몰라서.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내 평생의 과업 중 하나가 잘 살아있는 거여서. 죽지 않고 사는 게 인생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서. 어쩔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욕심있게 살기 어려운 것 같다. 뭘 해도 잘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말 그대로 잘 살아있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돈을 조금 못 벌어도 남들보다 조금 못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내가 착하고 세상물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잘 살아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서라는 걸 생각한다. 생각을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때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물론 오래 가지는 않지만. 그런 게 사람이니까. 나는 나를 괴롭히면서 나를 미워했지만 동시에 나를 좋아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사랑 얘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으면, 애정하는 마음이 없으면 견딜 수 없다.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면 본질을 사랑하면 된다. 나의 재능은 사랑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사랑해보려고 노력하는 일. 그게 재능이 아니라면 지금보다 더 예전에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다행이다. 잘 살기 위한 재능이 있어서. 그냥 잘 살아있을 수 있어서.


낯간지러운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됐다. 나이를 먹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시간이 쌓아올린 가면이 해가 지날 수록 두터워진다. 그것에 너무 속지 않으면서 적당히 숨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들 잘 살고 덜 울고 조금만 솔직해지고 가끔보다 자주 웃었으면 좋겠다.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글 같은 거 안 쓰고 더 사랑했을 거 같다. 어릴 때는 위악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진 않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 그냥 나는 나로 살아있으면 된다. 살아있으면 되는 것이다.


사랑해, 하고 우는 새가 지나갔다. 새가 사랑을 아나? 하긴 새라고 사랑을 모를 것도 없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이 알 것이다. 그러니까 새도 사랑한다고 우는데 나는 울어도 엉엉 소리밖에 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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