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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과 Mar 31. 2023

없던 일처럼 가끔 우연히 떠올라

생각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까

중학생 때 한창 좋아하던 노래 중 하나가 버스커버스커 밤이었다. 여름 밤에 이른 겨울을 느끼는 건 왠지 나도 몰라. 이 가사가 좋았던 것 같다. 그 서늘한 기분을 알 것만도 같아서. 혼자 베란다에서 창 밖을 보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씩 이 노래가 떠오를 때가 있다. 어떤 날은 유독 서늘해서 아주 추운 밤일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른다. 모를 뿐이다. 다만 그럼에도 그 밤은 지나간다는 사실만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요새는 기분이 묘하다 회사를 수십번도 더 관두고 싶다가 참았다가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두세달 쉬고 싶기도 하다. 아니면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든지. 회사 일 너무 지겹다. 지겹고 재미가 없다. 무엇이든 그냥 하면 되는데 나이키처럼 살기가 쉽지 않다. Just do it. 그게 잘 안 돼.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금요일이고 회식을 한다고 한다. 중요한 건 뭐가 되었든 참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어차피 회사에 대한 애정 같은 건 없어졌다. 그다지 아쉬울 것도 없다. 원래 돈 버는 게 쉬운 게 없다고 했다.


좀 쉬웠으면 더 나았으려나? 그건 잘 모르겠다. 친구들과 결혼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혹은 결혼의 무용함에 대해서 상상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살아있는 한은 계속 살아야만 한다. 세상은 무척 복잡해보이다가도 무척, 단순하게 느껴진다. 너무 시시하지만은 않은 나날들. 즐겁거나 슬프거나 둘 중 하나만 하는 날이 드물다. 사실 하루의 감정이 하나로 정리되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 곧 4월이 온다. 4월이 되면 시간은 또 우리를 금방 여름으로 데려갈 것이다. 더운 거리를 정처없이 걷고 싶다. 고궁을, 박물관을, 오래된 언덕을. 다들 쪄 죽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발바닥의 온기를 느끼는 여름의 거리. 


언젠가부터 여름을 싫어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물론 더운 건 여전히 괴롭지만.


책방에 가고 싶다. 오랜만에 종이의 냄새와 질감을 느끼고 싶다. 사진을 찍는 취미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나는 뭐든 금방 질려해서 문제다. 꾸준히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취미가 될 수 있다. 돈이 많았으면 뜨개질을 잔뜩 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한다. 하다보면 시간은 잘만 간다. 나는 목도리 뜨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목도리는 여름에 할 수 없어서 슬프다. 그래도 여름에 직접 뜬 목도리를 선물받으면 겨울이 기다려질 것 같다. 한 여름의 바닷가에서 뜨개질을 하고 싶다. 어쩌면 행복할 것이다.


너무 서울에 오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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